요즘.. 국제 결혼한 후에..
아이까지 가진뒤에 본국으로 간뒤에..
아이를 담보로 돈을 갈취하는 사례가 있다고 합니다..
위 사진은 글 내용과 무관함.
사랑없이 성사된 결혼..
그 결혼의 비극적인 결말의 한가지를 목격하면서..
행복하고 바람직한 결혼을 위해서 무엇이 중요한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회사원 장모(41)씨는 2006년 결혼정보업체 소개로 만난 중국인 여성 전모(28)씨와 국제결혼을 했다.
전씨와 사이에 아들(5)도 얻었다. 결혼 3년 만인 2009년 "친정에 가고 싶다"는 전씨의 바람대로 장씨는 아들과 함께 중국에 갔다. 전씨는 "아들이랑 며칠만 더 있다 갈 것이니 먼저 한국에 가 있으라"고 했다. 그것이 불행의 시작이 될 줄, 장씨는 꿈에도 몰랐다. 며칠 뒤 아들은 중국에 둔 채 혼자 돌아온 전씨는 장씨에게 "2000만원을 내놓고, 한국 체류자격을 딸 수 있게 해달라. 아니면 아들을 돌려주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분을 삭이지 못한 장씨는 법원에 이혼소송을 내 지난해 1심에서 아이의 양육권도 얻고, 위자료 1000만원도 받으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하지만 '맘대로 해보라'는 전씨 앞에 법원 판결은 있으나 마나였다. 2년 넘게 아들을 못 만난 장씨는 결국 '항복'했다. 장씨는 2심 재판부에 "여자(전씨)가 해달라는 대로 해달라"고 사정했다. 재판부는 장씨 뜻대로 "이혼은 남편 책임이니, 부인에게 2500만원을 주라"고 조정했다. 장씨 잘못이 없는 게 명백하지만, '아들을 만나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는 장씨의 딱한 사정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고 재판부는 말했다. 이렇게 한 뒤에야 전씨는 중국에 있던 아들을 장씨에게 보내줬다.
법원에 따르면 이처럼 외국인 신부가 자녀를 빼돌려 이혼을 요구하거나, 돈을 뜯어가는 사례가 최근 적지 않게 생기고 있다. 서울가정법원 관계자는 "국제결혼 가정에서 자녀 양육권이 문제가 된 분쟁이 작년에만 40건 정도 되는 것 같다"며 "국제결혼이 늘면서 이를 악용하는 사례도 늘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10년 기준 한국 남성과 외국인 여성의 국제결혼은 2만6000건을 넘었다. 같은 해 8000쌍 가까운 한국 남성 외국 여성 부부가 이혼했다.
문제는 피해를 당한 남편들이 취할 수 있는 조치가 별로 없다는 데 있다. 수사기관에 호소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자녀를 영영 되찾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2년 전 베트남 여성 E씨(24)와 결혼한 이모(44)씨도 지난해 E씨가 베트남으로 보낸 아이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한국에 체류 중인 E씨는 전화로 "3000만원을 내놓고 이혼해달라. 그러면 아이를 베트남에서 데려오겠다"며 협박하고 있다고 이씨는 말했다. 그는 "국제결혼을 할 때 섰던 신원보증을 철회해 E씨가 강제출국이라도 당하게 하고 싶지만, 아이를 영원히 만날 수 없을까 겁이나 그러지도 못한다"고 했다. 서울가정법원의 한 판사는 "국제결혼을 하는 외국인 여성의 국적이 대부분 중국, 베트남, 필리핀인데 이런 나라들은 국제결혼 자녀를 미끼로 한 사기행위를 막기 위한 국제협약에도 가입하고 있지 않다"며 "무분별한 국제결혼 제도 자체를 되짚어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12월 27일 삼성서울병원 본관 1층 에서 'JYP엔터테인먼트 송년특집 자원봉사음악회'가 열렸습니다.
원더걸스의 선예가 읽은 주현규(8) 어린이의 엄마가 전한 사연입니다. "살려주세요. 아파서 죽겠어요. 너는 목청을 내어 소리를 질렀지. 12월 6일 응급 수술을 하게 됐어. 수술실 앞에서 나는 무척 떨렸지. 꼭 죽을 것만 같은 어린 네 목숨. 네가 죽음 앞에서 떨고 있을 때 엄마가 대신할 수 없어서 미안했단다."
소희가 읽은 '선천성 단백질 대사 이상증'이라는 희귀병을 안고 태어난 임준섭(16)군의 어머니의 사연.. "앞으로 살아남기 힘들다는 의사선생님 말씀에 엄마 아빠는 너무도 미안했어"
아이가 있는 부모로써.. 눈물을 흘리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부모로써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 그들이 참으로 안타깝고, 봉사하는 그들에게 감사하는 아침입니다.
"살려주세요. 아파서 죽겠어요. 너는 목청을 내어 소리를 질렀지. 12월 6일 응급 수술을 하게 됐어. 수술실 앞에서 나는 무척 떨렸지. 꼭 죽을 것만 같은 어린 네 목숨. 네가 죽음 앞에서 떨고 있을 때 엄마가 대신할 수 없어서 미안했단다."
원더걸스의 선예가 주현규(8) 어린이의 엄마가 전한 사연을 읽으며 울먹였다. 27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본관 1층 로비, 올해로 10년째를 맞은 'JYP엔터테인먼트 송년특집 자원봉사음악회'가 1000여명의 환자와 가족, 팬들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부모님이 이 병원에서 심장 수술을 받고 완쾌한 뒤 박진영씨가 2002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소속 가수들과 재능기부 차원에서 펼친 병원 콘서트가 어느덧 10년이 됐다. 초기에 참여했던 GOD는 해체했고, 간판스타였던 비는 소속사를 옮기고 나서 군대로 떠났지만, 빈자리는 또 다른 가수들이 채웠다. 이날 콘서트엔 원더걸스를 비롯해 2PM, 미쓰에이, 임정희, 산이, JOO 등 JYP엔터테인먼트의 가수들이 차례로 나와 히트곡을 불렀다.
노래 두세 곡에 팀당 수천만원씩이 드는 톱 가수들이지만 이날은 모두 무료로 봉사했다. 박진영씨는 스케줄이 겹쳐 참석을 못했다.
평소 방송에서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평상복 차림으로 환자들 앞에 선 가수들은 다른 때보다 더 정열적으로 노래했다. 콘서트는 노래와 사연 소개 및 선물 증정의 순서로 진행됐다. 가수들은 앞자리 환자석에 앉은 사연의 주인공들에게 직접 다가가 음악 CD와 꽃다발, 선물을 안겨 줬다.
가슴 아픈 사연에 가수들도 눈물을 흘렸다. 16년 전 이 병원에서 '선천성 단백질 대사 이상증'이라는 희귀병을 안고 태어난 임준섭(16)군의 어머니가 "앞으로 살아남기 힘들다는 의사선생님 말씀에 엄마 아빠는 너무도 미안했어"라고 쓴 글에 소희는 말을 잇지 못했다.
11살 동현이에게 어머니가 보내는 "병으로부터 독립하자. 그래서 예쁜 여자친구도 만나고, 대학생활도 해보고, 지난 2년간 못했던 일들 하나씩 해보자"는 다짐은 랩퍼 산이가 씩씩하게 읽었다.
한류를 이끄는 톱 가수들은 눈물바다를 콘서트장과 같은 분위기로 만들어냈다.
"Please be my baby, Please be my baby 너만 생각하면 미치겠어. 니가 너무너무 갖고 싶어서…"
원더걸스가 지난달 발표한 신곡 'Be My Baby'가 흐르자 환자들은 마치 콘서트장의 팬클럽처럼 가사를 연호했다.
오랜만에 잊지 못할 시간을 가진 환자들은 병마를 잊고 즐거워했다. 척추측만증 수술을 받다 하반신이 마비된 뒤 회복 중인 초등학교 6학년 김희연(12)양은 좋아하는 아이돌인 수지가 있는 '미쓰에이'가 나오자 손동작을 따라 하며 신나는 시간을 보냈다. 희연이의 얼굴은 환했다.
희연이의 어머니 이혜선(40)씨는 "밸리댄스가 취미였을 만큼 활달한 아이가 4개월째 할머니들만 계시는 병실에 있다 보니 많이 답답해 하는 것 같았다"며 "두 달 전부터 아이가 이날을 기다렸는데 이런 공연이 자주 있으면 또래 환자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편과 함께 공연을 본 박정연(30)씨도 모처럼 걱정을 잊은 듯했다. 박씨는 "오늘 좋아하는 2PM의 닉쿤을 보니 어떤 수술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생긴다"고 했다. 그는 "닉쿤 얼굴이 정말 작더라"며 웃었다.
가수들은 공연에 앞서 본관 8층에 있는 소아 병동을 찾아 어린 환자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후 5시쯤 시작한 공연은 원더걸스가 후속곡 '걸스걸스'를 부르고 난 뒤 6시 20분쯤 막을 내렸다. 아직 어린 아이돌 가수들. 그들은 사랑이 뭔지 아는 듯했다.
"자살한 애 영웅 만들 일 있습니까. 다른 애들이 멋있게 보고 뛰어내리면 어떡하려고 책상에 꽃을 놓아 둡니까."
모 신문사에서 학대에 견디다 못해 자기 집에서 자살을 선택한 중학생이 다니던 학교(대수 수성구의 모 학교)에 가서 교감과의 인터뷰에서 그 교감이 한 말씀입니다.
다른 선생들도 한마디씩 했습니다. "불 질러놓고 불구경 하러 왔나" "지금은 여론이 안 좋아 가만히 있지만 사태가 진정되면 잘못된 부분을 다 바로잡을 것"
시비를 떠나서라도.. 죽은 이에 대한 추모와 애도는 인간으로서 상식인데도.. 교감이란 **은 꽃을 들고 오는 시민들도 돌려보냅니다..
인간에 대한 존경심과. .측은함이 전혀 없는 **들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니.. 참으로 그 학교가 금년에만도 2명이 자살하고 3명이 사법처리될 위험에 있다는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
잘못을 저지른 학생들을 엄하게 처벌하고 그 사실과 이유, 무엇이 잘못되고 무엇이 올바른 것인가를 모두에게 주지시키고 알렸다면.. 다른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그 학교의 선생들은 모두 교사로서의 자격이 의심스럽습니다. 결과적으론 그 선생들이 이번의 가해자 학생들과 자살한 학생을 만들어 낸것이나 다름없는 셈입니다..
그 학교의 교장,교감이나 교사 모두를 학생 2명이 자살한 이유를 물어서 모조리 교직에서 퇴출시키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공부 가르치는 것 이외에 인성교육이나 생활지도에 대한 책임감, 사명감이 없다면.. 그냥 학원강사나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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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한 애 영웅 만들 일 있습니까. 다른 애들이 멋있게 보고 뛰어내리면 어떡하려고 책상에 꽃을 놓아 둡니까."
같은 반 친구들의 괴롭힘을 못 견뎌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모(14)군이 다녔던 대구 수성구 모 중학교 교감은 "김군 책상에 꽃이라도 하나 놓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이 교감은 "하루 항의 전화가 수십통씩 걸려 오고, 청와대니 교육청에서 수시로 보고하라고 해 업무가 마비됐다"며 "최근엔 김군 책상에 놓아 달라며 꽃을 갖고 오는 시민들까지 있어 다른 아이들이 동요할까 봐 돌려 보내고 있다"고 했다.
김군이 숨진 지 꼭 일주일이 지난 27일 이 학교 교무실 분위기는 험악했다. 기자가 들어가 교감과 인터뷰하자 한 교사는 욕설을 하면서 "불 질러놓고 불구경 하러 왔나"하고 고함을 질렀다. 잠시 후엔 "남의 눈에 눈물 내면 자기 눈에는 피눈물 나는 법이지"하며 혼잣말을 했다. 다른 교사는 "자기 자식도 당해봐야 알지"하면서 교무실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교사들이 이처럼 격앙된 이유는 뭘까?
교감은 언론보도 스크랩을 보여주며 "사건 하나로 일주일이나 시달렸다"며 "지금은 여론이 안 좋아 가만히 있지만 사태가 진정되면 잘못된 부분을 다 바로잡을 것"이라 했다. 김군이 수개월 동안 공포의 폭력에 시달리다가 결국 죽음을 선택할 동안 사태의 윤곽조차 파악하지 못했던 학교다. 갈수록 포악해지는 학교 폭력 실상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데도 "(가해 학생들이) 평범하다"고만 하는 교사들이다. 올 들어 이 학교에서 학생 2명이 자살했고, 현재까지 3명이 사법처리될 처지에 놓였다. 이번 사태를 보는 국민은 분노와 슬픔에 힘겨워하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가해 학생들을 강력히 처벌하라"며 10만명 서명운동이 시작돼 현재 1만4000여명이 서명했다. 숨진 김군을 애도하는 글도 끊이지 않고 있다. 국민들은 학생들의 고통보다는 "우리는 할 만큼 했다"는 입장을 앞세우는 학교와 교사들에 대해서도 분노하고 있다는 걸 학교와 교사들이 알아야 할 것이다.
"조문이란 죽음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애도하는 표현인데 김정일에게 그런 용어를 쓸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대통령 부인(이희호 여사)이 조문(弔問) 간다는 소릴 듣고 속이 뒤집혀서 병원에 다녀왔어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그분은 천안함, 연평도 사건 때 유가족 손 한 번 잡아준 적 없고, 애도한다는 말 한마디 건넨 적 없습니다."
故서정우 하사 母 김오복씨
최근 밤새 뒤척인다는 어머니
자식같은 병사엔 무관심하더니 악당 죽음엔 조문이 도리라 해
北 도발로 상처입은 국민 먼저 보살피는게 정치 아닌가
"조문이란 죽음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애도하는 표현인데 김정일에게 그런 용어를 쓸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작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아들 고(故) 서정우 하사를 잃은 어머니 김오복(51)씨는 25일 본지 인터뷰에서 "조문이란 말이 나올 때부터 마음이 불편했다"며 "외국 정상이 사망하면 당연히 예의상 조문해야겠지만 김정일은 우리에게 온갖 만행을 저지른 장본인이다. 유가족을 떠나 국민 입장에서 조문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 남구에 사는 김씨는 고등학교 영어 교사다. 김씨는 "아들이 죽어 감정에만 치우쳤다고 (나를) 판단하지 말라"며 "상식 있는 국민이라면 모두 이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19일 저녁 아들의 미니홈피에 편지를 남겼다.
"하늘에 있는 아들과 대화하고 싶었어요. 김정일이 조금만 빨리 죽었다면 아들도 살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더라고요. 김정일 사망 소식을 접한 아들 영혼이 기뻐할 것 같아 처음으로 인터넷에 글을 올렸습니다."
김씨는 "아들이 이승에서 못 이룬 꿈 저승에서 꼭 이루길 바란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 20~21일 퇴근한 김씨는 두꺼운 (아들 빈소) 조문 방명록 8권을 일일이 뒤졌다고 했다. 명단을 확인하는 데 5시간이 걸렸다. 일부 야당 정치인 중 작년 연평도 포격 후 조문이나 애도를 표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유독 "김정일 조문이 도리"라고 주장한 게 화가 나서라고 했다.
김씨는 "도리라는 말이 뭔지 사전을 찾았더니 '사람이 어떤 입장에서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른 길'이라고 나오더라"며 "자식 같은 병사들이 무참히 희생당할 땐 무관심하게 침묵으로 일관했던 사람들이 그 '악당'의 죽음엔 안타까워하는 게 사람 도리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21일 두 번째로 이런 내용을 아들 미니홈피에 남겼다.
김씨는 최근 뒤척이며 밤을 새우는 날이 많다고 했다. 지난 23일 오전 5시쯤엔 신문을 읽다가 박근혜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 홈페이지에 감사 편지를 쓰기도 했다.
"박 위원장의 '희생자 사과 없는 상태에서 정부와 국회 차원의 조문은 안 된다'는 말에 무척 감사했어요. 지난달 연평도 포격 희생자 1주기 추모식에는 정치인들 참석이 저조했어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때문에 정치권이 떠들썩해서였던가 봐요. 그런데도 박근혜 위원장은 현장에서 폭우를 맞으며 끝까지 자리를 지켰어요. 아들 잃은 어머니 입장에서 어떻게든 감사를 전하고 싶었어요."
김씨는 "(박근혜 위원장에게 글을 올리자) '한나라당이 시켜서 글을 올렸느냐'고 묻는 네티즌이 있어 황당했다"며 "이렇게 못 믿을 사회가 됐나 싶어 씁쓸했다"고 했다.
고 서정우 하사는 중·고교 시절 눈 내린 성탄절 아침이면 창문을 열고 "와! 화이트 크리스마스다" 하고 외쳤다고 한다. 크리스마스라 아들이 더 보고 싶다는 김씨는 "지난 24일 아들이 안장된 국립현충원에 가 그냥 하염없이 울고 왔다"고 했다.
김씨는 이 말만은 꼭 남겨달라고 부탁했다. "남북 대화 당연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북한의 도발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국민을 먼저 보살피는 게 정치의 우선이 아닐까요."
故민평기 상사 母 윤청자씨
"천안함 유족들,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
"대통령 부인(이희호 여사)이 조문(弔問) 간다는 소릴 듣고 속이 뒤집혀서 병원에 다녀왔어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그분은 천안함, 연평도 사건 때 유가족 손 한 번 잡아준 적 없고, 애도한다는 말 한마디 건넨 적 없습니다."
지난해 3월 천안함 폭침으로 숨진 고(故)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68)씨는 25일 "내 자식을 죽인 김정일은 내겐 원수"라며 이렇게 말했다. 차가운 서해 바닷속에서 숨져간 아들을 잊을 수 없는 어머니에게 김정일은 원수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 원수가 죽어서 만세를 불렀다고 했다.
그는 "저 원수가 언제 죽나 했는데, 드디어 죽어서 속이 조금 후련해지나 했더니 많이 배우고 높은 자리에 있는 분들이 조문을 간다고 하네요"라며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라고 했다.
윤씨는 작년 6월 아들의 사망 보상금 1억원과 성금을 합친 돈 1억898만8000원을 "적은 돈이지만 무기 구입에 사용해 우리 영토·영해에 한 발짝이라도 침범하는 자들을 응징하는 데 써달라"며 국가에 내놓았다. 해군은 윤씨의 성금을 받아 초계함 기관총을 구입했다.
윤씨는 "천안함의 생때같은 아들 46명이 죽었을 때는 김정일 소행인지 확실치 않다고 헛소리를 하더니, 이제는 조문까지 하겠다는 거냐"면서 "천안함 희생자 가족들을 더 이상 아프게 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는 "지난 24일에도 대전현충원에 천안함 46용사 가족 50여명이 모였다"면서 "한 유족이 '김정일이 죽었으니까 샴페인이라도 마시자'고 해서 현충원에서 샴페인을 마셨다"고 했다.
충남 부여에 사는 윤씨의 남편 민병성(72)씨는 아들이 희생되고 나서 홧김에 술로 날을 지새우다 암에 걸렸다. 그동안 수술을 두 차례나 하고 항암 치료를 계속하고 있지만 병세는 호전될 기미가 없다고 했다. 윤씨는 "영감님도 김정일 죽었단 소리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더니 조문 소리에 말을 잃고 한숨만 푹푹 내쉰다"고 말했다.
요전에 모 피자 광고에 왠 노인이 등장했습니다. 지저분한 외모에.. 왠지 험상굳고, 기분 좋지 않은 얼굴... '어디서 저런 모델을 주워다가 쓰는 걸까?'
.. 그 사람이 바로 신성일이었다..는 사실은 좀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누가 말했습니다. 누가 말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링컨이 말했다고도 합니다.
"나이 40 이되면 자기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뭐.. 솔직히 외모를 가지고 뭐라고 한다는 것도 웃기긴 하지만.. 이분은 정말 대단합니다.
최대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전달하려 했다. 사실 사는 게 힘겹더라도 최소한 감방보다 낫다. 의자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것만도 큰 행복이다.
-중략-
2006년 봄 의정부교도소 독방(1.31평)에 들어갔다. 교도소장이 벽에 3단 책꽂이를 달아주었다. 황석영의 『장길산』, 이문열의 『삼국지』 등을 미친 듯이 읽었다. 매일 아침 108배, 『반야심경』 260자 쓰기, 냉수 마찰로 건강을 지켰다. 원예반에서 국화도 길렀다.
밖에서 구명운동이 벌어졌다. 열린우리당 의원 대부분이 서명해주었고, 동부이촌동 주민, 해외동포도 힘을 모았다. 특히 엄앵란의 노고가 대단했다. 구속 2년 만인 2007년 2월 21일 특별사면을 받고 출감했다. 교도소 정문을 나서자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한마디 해달라고 했다.
“공짜밥 잘 먹었소. 법무부 장관 고맙소.”
-중앙일보
5년 감옥살이 할 것을.. 부인의 공덕으로 일찍 나왔는데. 그래서 편하게 살게 되었는데...
그는 늘그막에 책한권 써서.. 그의 부인의 가슴에 큰 대 못을 박았습니다.. 뭐 워낙에 회자되는 이야기라 길게 쓰지 않겠습니다.
70이 넘었지만..공자님으로 치면 아직도 40대에서 머무르고 있나 봅니다. 종심하기는 커녕.. 나이가 들어도 손가락질 받을 짓만 하고.. 그것도 부끄럼이 없이 당당하게 이야기하니 우습군요.. 만약에 그가 영화배우로 인기를 모으지 못했다면.. 그래서 여자들에게 인기가 없었다면..
아마.. 욕구를 풀기위해..나쁜짓도 서슴치 않는 추한 노인으로 전락했을지도.. 모르겠군요..
청춘은 맨발로 뛸지 모르지만.. 70이 넘어서도 맨발로 뛰렵니까? 남자가 가지 말아야할 길... 당신에게서 배웁니다.
젊은 시절부터 책을 놓지 않았던 신성일. 2005년부터 2년 동안 옥고를 치르면서 독서로 힘든 시간을 버텼다. 또 108배, 냉수마찰로 건강을 지켰다. [중앙포토]
오늘로 연재를 마친다. 지난 6개월 내 얘기를 들어주신 중앙일보 독자들에 감사 드린다. 최대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전달하려 했다. 사실 사는 게 힘겹더라도 최소한 감방보다 낫다. 의자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것만도 큰 행복이다. 2005년 2월 24일 밤 11시 40분 대구지방검찰청에서 구속적부심이 떨어지자 교도관이 내게 수갑을 채웠다. 사진기자 7~8명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너희들, 수갑 찬 것 찍으려고 하지? 이거 찍어봐.”
나는 수갑 찬 두 팔을 번쩍 들어올렸다. 사진기자들이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다. 25일 새벽 대구구치소로 이동했다. 소지품과 양복을 영치시키고, 청색 구치소복으로 갈아입었다. 나는 독방을 요구했다. 병렬 복도를 한참 걸어갔다. 오른쪽 감방 수감자들이 기웃거리는 걸 느꼈다. 복도에 책꽂이가 있었다. 틱낫한 스님의 『화』를 빼어 들고 맨 끝 골방에 이르렀다. 교도관이 말했다.
“이 방이 얼마 전까지 문희갑 시장이 있던 곳입니다.”
엄청나게 추웠다. 구속 첫 날 잠을 자지 못했다. 감방에는 24시간 형광등이 켜져 있다. 교도관이 감시하고, 수인이 자해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다. 스위치도 없고, 형광등이 천장 높이 달려있다.
물품도 마음대로 살 수 없다. 지급 받은 것 이외의 신발·내의·담요 등은 가족이 매점에서 사서 넣어준다. 담요는 100% 화학섬유 제품이라 먼지가 많이 일었다. 감옥을 온통 뿌옇게 만들었다. 교도관들은 복도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같은 기간 서울교도소에 수감됐던 정대철 의원이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컨』을 보내왔다. 『오체투지』도 인상 깊게 읽었다.
‘닭장 버스’로 불리는 호송차를 타고 검사에게 불려갈 때 매우 수치스러웠다. 호송차 창문은 촘촘한 격자 철창으로 덮여 있다. 밖을 구경하기 힘들다. 호송차로 20~30명이 함께 이동한다. 포승줄에 묶이고 수갑을 찬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굴욕이었다. 빨리 교도소에 가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후원금을 받은 것을 두고 검사는 대가성 수의계약으로 결론 내렸다. 구형 8년에 실형 5년이 떨어졌다. 대구구치소 생활 두 달 만에 대구 달성군 화원교도소로 옮겨졌다. 그 곳엔 독방이 없다고 했다. 교도소 측의 배려로 감방 속의 감방이라 할 수 있는 ‘징벌방’에 들어갔다. 화원교도소에선 헤비메탈 같은 뽕짝이 귀가 찢어지게 울려 퍼졌다. 완전히 미칠 것만 같았다. 정상이던 혈압이 185~187까지 올라갔다. 이후 병사(病舍)로 옮겨갔다. 지금까지 혈압약을 먹고 있다.
2006년 봄 의정부교도소 독방(1.31평)에 들어갔다. 교도소장이 벽에 3단 책꽂이를 달아주었다. 황석영의 『장길산』, 이문열의 『삼국지』 등을 미친 듯이 읽었다. 매일 아침 108배, 『반야심경』 260자 쓰기, 냉수 마찰로 건강을 지켰다. 원예반에서 국화도 길렀다.
밖에서 구명운동이 벌어졌다. 열린우리당 의원 대부분이 서명해주었고, 동부이촌동 주민, 해외동포도 힘을 모았다. 특히 엄앵란의 노고가 대단했다. 구속 2년 만인 2007년 2월 21일 특별사면을 받고 출감했다. 교도소 정문을 나서자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한마디 해달라고 했다.
스스로, 자신의 힘든 삶과 어머니까지 이야기 하면서 대중들의 동정과 시선을 받아 냈다.
솔직히 나는 첫무대에서도 어떻게 이 자리까지 나올 수 있었을까하는 의아스러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상당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화제의 중심에 섰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현대판 신데렐라가 될까하는 궁금증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비난이 거세어지자..
결국 그녀를 추천했던 '나가수' 자문위원단장 장기호 교수조차도..
결국 적우를 발탁한 것은 PD 라면서.. 책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ㅅ-;
이번엔 7위를 했지만 간신히 탈락 위기를 모면한 '적우'.. (솔직히 인순이 씨가 떨어져서.. 적우씨가 더 밉네요. )
추천인들에게서도 버림받은 그녀..
다음 무대에서 과연 신데렐라가 될 수 있는 기적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동아닷컴]
'나가수' 자문위원단장 장기호 교수가 최근 일고 있는 가수 ‘적우’ 논란에 대해 “라이브를 들어본 적도 없고, 이렇게 빨리 투입될 줄도 몰랐다”라고 밝혀 파문이 일고 있다.
장 교수는 11일 자정 무렵 자신의 페이스북에 "적우의 비난의 화살, 나에게도 오다"라는 글을 남겼다. 이 글에서 장 교수는 최근 MBC '우리들의일밤-나는가수다‘에 출연 중인 가수 적우에 대한 자신의 속내를 솔직하게 드러냈다.
장 교수는 "적우의 라이브를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고, 단지 인터넷에서 뮤직비디오를 본 것만으로 한 가수를 극찬 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적우가 공력있는 가수라는 소문을 주변에서 자주 들어왔기에, "나도 몰랐던 좋은 가수라면 자문위원입장에서 당연히 추천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장 교수는 “사실 적우가 이렇게 일찍 나가수에 합류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며 “아직도 대중들이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가수들이 얼마든지 있는 상태에서 적우의 기용은 너무 이른 듯하다”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어 “나는 그동안 이승철과 나얼의 출연을 갈망해왔고 그들을 설득하고 있었다”라는 말로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했다.
장 교수는 “적우가 갑자기 기용된 것에 대한 상황은 담당 프로듀서만이 알고 있을 것”이라며 “갑작스런 적우의 기용을 합리화하기 위해 예전에 내가 적우를 언급했던 인터뷰 내용을 과장 되게 보도하여 정당화 하려는 누군가의 의도가 개입되었던 것 같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일부는 내가 출연자들을 결정하는 역할도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출연자 결정은 절대적으로 프로듀서의 결정”이라며 “지금까지 출연자에 대해 나와 한 번도 의논한 적도 없다. 그럴 필요도 없고 프로듀서의 구상에 맞도록 가수들이 섭외되는 걸로 알고 있다”라는 말로 그간 받아온 오해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장 교수는 자문위원단의 역할에 대해서도 “자문위원단은 나가수라는 드라마의 또다른 장치 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자문위원의 기능과는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쇼오락 프로에 자문위원단을 두고 있다는 것이 코미디 아닌가? 대한민국 역사상 음악프로그햄에서 자문위원은 최초의 일이란다”라며 그 특성과 한계를 지적했다.
장 교수는 마지막으로 “그러나 일반 대중들은 모든 상황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왜곡되고 뒤틀어진 정보들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감안할때 나도 나의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라며 그간의 고충과 마음고생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