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이란 죽음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애도하는 표현인데 김정일에게 그런 용어를 쓸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대통령 부인(이희호 여사)이 조문(弔問) 간다는 소릴 듣고 속이 뒤집혀서 병원에 다녀왔어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그분은 천안함, 연평도 사건 때 유가족 손 한 번 잡아준 적 없고, 애도한다는 말 한마디 건넨 적 없습니다."
故서정우 하사 母 김오복씨
최근 밤새 뒤척인다는 어머니
자식같은 병사엔 무관심하더니 악당 죽음엔 조문이 도리라 해
北 도발로 상처입은 국민 먼저 보살피는게 정치 아닌가
"조문이란 죽음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애도하는 표현인데 김정일에게 그런 용어를 쓸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작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아들 고(故) 서정우 하사를 잃은 어머니 김오복(51)씨는 25일 본지 인터뷰에서 "조문이란 말이 나올 때부터 마음이 불편했다"며 "외국 정상이 사망하면 당연히 예의상 조문해야겠지만 김정일은 우리에게 온갖 만행을 저지른 장본인이다. 유가족을 떠나 국민 입장에서 조문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 남구에 사는 김씨는 고등학교 영어 교사다. 김씨는 "아들이 죽어 감정에만 치우쳤다고 (나를) 판단하지 말라"며 "상식 있는 국민이라면 모두 이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19일 저녁 아들의 미니홈피에 편지를 남겼다.
"하늘에 있는 아들과 대화하고 싶었어요. 김정일이 조금만 빨리 죽었다면 아들도 살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더라고요. 김정일 사망 소식을 접한 아들 영혼이 기뻐할 것 같아 처음으로 인터넷에 글을 올렸습니다."
김씨는 "아들이 이승에서 못 이룬 꿈 저승에서 꼭 이루길 바란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 20~21일 퇴근한 김씨는 두꺼운 (아들 빈소) 조문 방명록 8권을 일일이 뒤졌다고 했다. 명단을 확인하는 데 5시간이 걸렸다. 일부 야당 정치인 중 작년 연평도 포격 후 조문이나 애도를 표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유독 "김정일 조문이 도리"라고 주장한 게 화가 나서라고 했다.
김씨는 "도리라는 말이 뭔지 사전을 찾았더니 '사람이 어떤 입장에서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른 길'이라고 나오더라"며 "자식 같은 병사들이 무참히 희생당할 땐 무관심하게 침묵으로 일관했던 사람들이 그 '악당'의 죽음엔 안타까워하는 게 사람 도리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21일 두 번째로 이런 내용을 아들 미니홈피에 남겼다.
김씨는 최근 뒤척이며 밤을 새우는 날이 많다고 했다. 지난 23일 오전 5시쯤엔 신문을 읽다가 박근혜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 홈페이지에 감사 편지를 쓰기도 했다.
"박 위원장의 '희생자 사과 없는 상태에서 정부와 국회 차원의 조문은 안 된다'는 말에 무척 감사했어요. 지난달 연평도 포격 희생자 1주기 추모식에는 정치인들 참석이 저조했어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때문에 정치권이 떠들썩해서였던가 봐요. 그런데도 박근혜 위원장은 현장에서 폭우를 맞으며 끝까지 자리를 지켰어요. 아들 잃은 어머니 입장에서 어떻게든 감사를 전하고 싶었어요."
김씨는 "(박근혜 위원장에게 글을 올리자) '한나라당이 시켜서 글을 올렸느냐'고 묻는 네티즌이 있어 황당했다"며 "이렇게 못 믿을 사회가 됐나 싶어 씁쓸했다"고 했다.
고 서정우 하사는 중·고교 시절 눈 내린 성탄절 아침이면 창문을 열고 "와! 화이트 크리스마스다" 하고 외쳤다고 한다. 크리스마스라 아들이 더 보고 싶다는 김씨는 "지난 24일 아들이 안장된 국립현충원에 가 그냥 하염없이 울고 왔다"고 했다.
김씨는 이 말만은 꼭 남겨달라고 부탁했다. "남북 대화 당연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북한의 도발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국민을 먼저 보살피는 게 정치의 우선이 아닐까요."
故민평기 상사 母 윤청자씨
"천안함 유족들,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
"대통령 부인(이희호 여사)이 조문(弔問) 간다는 소릴 듣고 속이 뒤집혀서 병원에 다녀왔어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그분은 천안함, 연평도 사건 때 유가족 손 한 번 잡아준 적 없고, 애도한다는 말 한마디 건넨 적 없습니다."
지난해 3월 천안함 폭침으로 숨진 고(故)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68)씨는 25일 "내 자식을 죽인 김정일은 내겐 원수"라며 이렇게 말했다. 차가운 서해 바닷속에서 숨져간 아들을 잊을 수 없는 어머니에게 김정일은 원수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 원수가 죽어서 만세를 불렀다고 했다.
그는 "저 원수가 언제 죽나 했는데, 드디어 죽어서 속이 조금 후련해지나 했더니 많이 배우고 높은 자리에 있는 분들이 조문을 간다고 하네요"라며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라고 했다.
윤씨는 작년 6월 아들의 사망 보상금 1억원과 성금을 합친 돈 1억898만8000원을 "적은 돈이지만 무기 구입에 사용해 우리 영토·영해에 한 발짝이라도 침범하는 자들을 응징하는 데 써달라"며 국가에 내놓았다. 해군은 윤씨의 성금을 받아 초계함 기관총을 구입했다.
윤씨는 "천안함의 생때같은 아들 46명이 죽었을 때는 김정일 소행인지 확실치 않다고 헛소리를 하더니, 이제는 조문까지 하겠다는 거냐"면서 "천안함 희생자 가족들을 더 이상 아프게 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는 "지난 24일에도 대전현충원에 천안함 46용사 가족 50여명이 모였다"면서 "한 유족이 '김정일이 죽었으니까 샴페인이라도 마시자'고 해서 현충원에서 샴페인을 마셨다"고 했다.
충남 부여에 사는 윤씨의 남편 민병성(72)씨는 아들이 희생되고 나서 홧김에 술로 날을 지새우다 암에 걸렸다. 그동안 수술을 두 차례나 하고 항암 치료를 계속하고 있지만 병세는 호전될 기미가 없다고 했다. 윤씨는 "영감님도 김정일 죽었단 소리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더니 조문 소리에 말을 잃고 한숨만 푹푹 내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