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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 미국으로 떠날 때만 해도 우리가 이렇게 조국과 미국 내 한인 사회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고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 거주하는 파독 광부 출신 사업가 박형만(74)씨와 윤병인(73)씨는 지난 10일 LA 주재 총영사관에서 '미국 내 한인 사회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한국 정부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16일 LA에서 만난 두 사람은 "해외 진출이 드물던 1960년대에 남들보다 먼저 외국에 나갔기 때문에 봉사할 기회도 먼저 얻게 됐을 뿐"이라며 "좋은 일을 할 수 있어 오히려 감사한다"고 말했다.

◇'막장 정신'으로 성공… "재산 절반 사회 환원"

박형만씨는 충남 공주에서 5남5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가난 때문에 대학을 2년 만에 중퇴한 뒤 서울 은평구의 한 공장에 미화원으로 취직한 그는 새로운 기회를 갈망하다 27세이던 1964년 7월 파독 광부가 되어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박씨는 "5개월 뒤 독일 함보른 광산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국가가 부족하고 내가 부족해서 여러분이 고생한다'고 말한 연설을 들었다"며 "그날 많이 울면서 '정말 잘살아보겠다'는 각오를 다졌다"고 했다. 오전 7시부터 오후 2시까지 힘든 광산 일을 마치고 오후 3시에 다시 인근 축사로 출근해 오후 11시까지 일했다. 계약된 3년 기간이 끝났을 때 그는 2만4000마르크를 모았다. 서울에서 아파트 3채를 살 수 있는 큰돈이었다. "그걸 당시 남편을 잃고 고생하던 누나에게 대부분 보냈습니다. 또다시 돈을 벌기 위해 미국 LA로 건너갔습니다. 막장일을 하고 나니 어딜 가도 겁날 게 없었습니다."

 

공장에서 기계를 청소하며 시간당 1.45달러를 버는 것으로 미국 생활을 시작했다. 종이컵 공장으로 옮겨선 하루 12시간씩 연장 근무를 해 주당 200달러를 벌었다. 독일서 만나 결혼한 부인 이숙희씨도 간호사로 취직해 월 1200달러를 벌어 왔다. 적지 않은 수입이었지만 월세 65달러짜리 집에 살면서 2년여 만에 3만달러를 모아 주류(酒類) 상회를 열었고 이어 주유소를 냈다. 박씨는 현재 건물 24채를 가진 자산 1억달러대의 부동산 임대업자가 됐다. 악착같이 돈을 모으는 그에게 미국인들이 '한국 유대인(Korean Jewish)'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그렇게 번 돈으로 그는 어려운 사람을 돕기 시작했다. 1997년부터 지금까지 고향인 공주의 저소득층 417명에게 총 2억4255만원을 기부했다. 자선사업을 더 크게 하기 위해 자신과 부인의 이름을 딴 '만희복지재단' 설립도 추진 중이다. 그는 "재산의 절반인 5000만달러를 출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청소해서 모은 돈, 교포사회에 써

윤병인씨는 1965년 개인사업을 접고 독일로 간 직후 막장 천장에서 떨어진 돌에 손이 깔리는 사고를 당했다. 6개월간 병원 치료를 받은 그는 더 이상 광산 일을 할 수 없었다. 수중에는 돈도 없었다. 빈손으로 귀국할 수 없다며 떠올린 것이 미국행이었다.

 

1966년 LA로 건너간 윤씨는 하루 4시간만 자고 오전 5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일했다. 오전에는 정육점에서 고기를 썰고 오후에는 선반 공장에서 기계를 깎았다. 1년2개월 만에 9000달러를 모아 주유소를 샀다. 돈은 벌 만큼 벌었다고 생각한 윤씨는 1974년 귀국했지만 사기를 당해 모은 돈의 70%가 넘는 2만달러 이상을 날렸다. 2년 만에 다시 미국행 비행기를 탔고 남은 돈으로 항공기 청소 용역사업을 시작했다.

"고객이 어떤 무리한 요구를 해도 군말 없이 한다는 원칙을 세웠어요. 직원들이 청소를 끝낸 항공기는 반드시 제가 직접 마지막 점검을 했습니다." 사업은 나날이 번창했다. 36개 항공사가 LA국제공항, 샌프란시스코공항, 새너제이공항에서 윤씨에게 일을 맡겼다. 연매출이 1800만달러까지 올랐다.

재기에 성공한 윤씨는 LA 지역 한인 사회를 위해 뛰고 있다. 2007년 LA 사우스베이 한인상공회의소를 만든 것도 그 때문이다. 이 무렵 사우스베이 지역에 진출하기 시작한 한인 소상인들은 한·미 간 사업 관행과 문화 차이 등으로 시 당국으로부터 제재를 받는 사례가 많았다. 그들이 윤씨를 찾아가 "우리의 창구가 돼 달라"며 도움을 청한 것이 계기가 됐다. 사무실 월세와 운영비에 들어가는 월 3000달러도 그의 주머니에서 나간다.

그는 "소상인들 사정이 그리 넉넉할 것 같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작년엔 두 사람과 재미 서독동우회장 김창수씨가 각각 1만달러(약 1060만원)씩 3만달러를 내 현지에 한인 노인회관도 만들었다. 독일 또는 한국에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또는 흉상 건립도 추진하고 있다. LA 지역 교민들이 뜻을 함께해 지금까지 1만달러 가까이 모았다. 두 사람은 "오늘의 우리와 대한민국이 있게 한 역사의 출발점을 기리려는 취지"라고 말했다.

Posted by 돈오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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