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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고봉중·고등학교(서울소년원)는 19세 미만 청소년이 보호 처분을 받고 격리 생활을 하는 전국 11개 소년원 중 하나다. 280여명이 짧게는 6개월부터 길게는 2년까지 격리 생활을 하고 있다. 이 소년범들에게 '가족'은 무엇일까. 기자는 소년원 측에 인터뷰 주선을 요청했고, 그중 10명이 인터뷰에 응했다. 모두 사회에 가족이 있는 아이들이었고, 가족이 없는 아이들은 인터뷰를 원치 않았다.

소년원 관계자는 "소년범 대부분이 결손가족 등 화목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랐다"며 "아이들이 가족에 대해 너무 안 좋은 말만 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이들의 말은 예상과 달랐다. 대부분 아이가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한 사람인 줄 알았어요. 여기 와서 보니 아니더라고요. 그래도 나는 돌아갈 가족이 있으니까요"라고 했다. 인터뷰에 응한 아이들은 소년원에서 가족조차 없는 더 불행한 아이들을 만났고, 잊고 있던 가족을 다시 떠올리고 있었다.

가족은 '날 때리는 사람들'이었다는 문용(가명·18)이는 처음 소년원 처분을 받고는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고 했다. "사고 칠 때마다 아빠랑 형들이 날 죽일 듯이 때렸어요. 서로 욕하고 미워하는데 안 보게 돼서 잘됐다 싶었지요." 그런데 목포에 사는 아버지, 형들이 매주 한 명씩 번갈아 면회를 왔다. 한 번만 오고 말 줄 알았는데 계속 왔다. 문용이는 "형한테 왜 오냐고 물어봤는데 '네가 막 보고 싶어서 오는 거 아니다. 그래도 동생이라 걱정이 되니까 오는 거다'라고 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고 말했다.

"한번은 엄마 살아계실 때 기억이 나더라고요. 5년 전에 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셨어요. 돌아가시기 1주일 전쯤 둘이 산책을 나갔는데 엄마가 그랬어요. '우리 문용이, 계속 사고 쳐서 형이랑 아빠한테 맞으면 어쩌지? 엄마 죽으면 이제 말려줄 사람도 없을 텐데'라고요. 돌이켜보니 나는 우리 엄마 죽을 때까지 걱정만 하게 만들었더라고요. 남은 가족한테도 그랬고요." 문용이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문제아들의 집합소인 소년원에도 '모범생'이 있다. 그렇게 달라진 모범 소년범의 변화 뒤엔 대개 가족이 있었다. 소년원에서 제과·제빵기능사에다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딴 윤석(가명·18)이가 그런 경우다. 상습폭행·금품갈취로 2년형을 받은 윤석이는 두 살 때 부모가 이혼했고, 열두 살 때까지 함께 살던 엄마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다시 만난 아빠는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쓰지 못하는 기초생활수급자였다. 윤석이는 "없는 것만도 못한 집구석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가출을 밥 먹듯 하던 윤석이는 술 취한 아저씨들을 골라 폭행하고 돈을 뺏다 소년원에 왔다.

윤석이를 바꿔놓은 것은 아빠와 여동생이 꼬박꼬박 보내 준 편지였다. "편지가 올 때마다 자기도 보여달라는 애들이 많았어요. 당연히 안 보여줬지요. 나중에 알았는데 걔들은 편지 보내줄 가족이 없더라고요." 윤석이는 "나는 걔들보다 훨씬 나은 환경에서 살았는데 똑같이 사고 쳐서 여기 들어와 있다고 생각하니 창피했고, 아빠랑 동생한테도 미안했다"고 말했다. 없는 것만도 못했던 집구석은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가족이었다. 이후 윤석이는 자격증 공부에 매달렸다. "경찰서에서 만난 아빠가 '내가 너를 혼낼 자격이 없는 것 같다'고 했어요. 그땐 대꾸도 안 했어요,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게 지금도 마음에 걸려요." 윤석이는 "미안하다는 말은 쑥스러워서 못하겠다. 여기서 나가면 가장(家長) 역할을 톡톡히 해서 갚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년원에서 측량사 자격증을 딴 홍중(가명·19)이는 차량 상습절도로 소년원에 왔다. 홍중이는 "좋은 차를 몰고 다니면 사람들이 다 내가 잘사는 줄 알았다. 그게 좋았다"라고 말했다. 홍중이가 세 살 때 이혼한 부모는 남매를 보육원에 맡기고 각자 새살림을 차렸다. 홍중이가 중학교 때 아빠와 엄마를 차례로 찾았지만, 둘 다 '미안하다'는 말뿐 함께 살자고 하지 않았다. 누나를 남겨두고 혼자 보육원을 뛰쳐나온 홍중이는 그때부터 차를 훔치고 돌아다녔다.

경찰에게 붙잡혀 들어온 소년원, 편지를 나눠주는 시간에도 홍중이 것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홍중이에게도 편지가 왔다. 누나였다. 그 후 누나는 한 주도 거르지 않고 편지를 보냈다. 퇴소가 한 달도 안 남은 홍중이의 편지 모음 봉투는 누나 편지로 가득 찼다.

"누나가 편지에 제일 많이 쓰는 말이 '우리가 이해하자. 너랑 나랑 잘살면 된다'예요. 아직 엄마, 아빠는 이해 안 되고 용서도 안 돼요. 그런데 우리 누나, 하나 남은 가족인 나까지 속썩이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앞으로는 누나한테 든든한 동생이 되고 싶어요."

 

 

 

Posted by 돈오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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