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와하라 히로타다 닛산자동차 디자이너가 자신이 고안한 큐브 차에 엎드려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어릴 적부터
만화에 빠져 살았고 인생의 70% 이상은 만화에서 배웠어요. 자동차는 18세 때
면허를 따기 전까진 전혀 관심 없었지요. "
만화가를 꿈꾸던 소년은 청년이 돼 자동차 회사에 디자이너로 입사했고,만화가 지망생답게 파격적인 자동차 디자인을 내놨다. 박스카 '큐브'를 디자인한
닛산자동차
글로벌디자인센터의 구와하라 히로타다 디자이너(40)의 이야기다.
구와하라는 26일 닛산 큐브 한국 출시 기념으로 경기 파주 헤이리에서 열린 시승행사에서 기자와 만나 "차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독창적인 디자인을 할 수 있었다"며 "지금도 큐브 외에 로봇 컨셉트카인 '에포로(Eporo)'와 같은
미래 지향적인 선행 디자인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
1994년
닛산자동차의 디자인 파트에 입사한 그는 신혼여행을 사하라 사막으로 다녀온 괴짜다. 큐브는 사내 카페테리아에서 마시던 커피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그는 "카페에 앉아 마시는 커피처럼 편안하고 친구나 가족,애완동물처럼 볼수록 기분 좋은 차를 만들자고 생각했다"며 "차의 앞부분은 선글라스를 낀 불도그를,뒷부분의 살짝 튀어나온 하단부는 '제니퍼 로페즈의 히프'를 생각하며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개성뿐만 아니라 차의 실용성에도 주목했다. 큐브 후면 유리의 비대칭 디자인은 운전자가 뒤를 더 잘 볼 수 있도록 운전자 방향을 더 넓게 만든 것이다. "실내
공간도 넓게 만들었고 컵홀더도 손잡이가 달린
머그컵을 넣을 수 있도록 디자인했지요. "
이렇게 탄생한 2세대 큐브 디자인에 대한 상사들의 초기 반응은 냉담했다. 당시 닛산은 르노와 합병한 후 스포츠카 '370Z'와 같이 칼을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이미지의 디자인을 추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큐브처럼 둔해 보이는 디자인은 환영받지 못했다. 일부 상사는 "이제 장난 좀 그만하고 제대로 된 자동차를 디자인하라"고 핀잔을 줬다. 구와하라는 "이 디자인으로 차를 만들지 않으면 그만두겠다"고 엄포를 놓았고,결국 수석 디자이너인 시로 나카무라의 승인을 얻었다. 2002년 출시된 큐브 2세대
모델은 큰 성공을 거뒀고,큐브는 현재까지 세계적으로 106만대가 팔린 '
밀리언셀러'이자 박스카의 대표적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2008년 출시한 3세대 큐브 모델은 2세대에 비해 크게 바뀌지 않았다. 모서리가 둥글게 변한 정도다. 그는 "차는 탈 때는 물론 세워놓았을 때도 볼수록 애착이 가야 한다"며 "20년이 지나도 질리지 않는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 천천히 변하는 '슬로 디자인(slow design)'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이번이 한국 첫 방문이라는 구와하라는 한국 자동차 중 "기아차의 K5를 보고 놀랐다"며 "굉장히 멋스럽고 절제된 차"라고 평가했다. 국내에서 큐브의 경쟁 상대인 쏘울에 대해서는 "친구보다는 도구에 가까운 자동차라는 느낌을 받았다"며 "큐브와 쏘울은 정체성이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파주=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