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프리뷰를 읽고 상영관에 들어가기가 꺼려지는 여성관객들을 위해 한 마디 하자면, 이 평은 '업자들의 메마른 감성과 매너리즘이 빚어낸 빈곤한 감상'에 지나지 않으니 전혀 걱정하지 말기를..
이 영화는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잘못 건드린 어설픈 악당들의 비참한 최후도 아니고, '레옹(1994)'의 로리타的 감수성을 재탕해 낸 것도 아니다. "아이를 찾아도, 너희는 다 죽는다." 이 영화는 영웅담이라기보단 발악에 가깝다. 영화는 후반부에 절망적인 상황을 설정해 줌으로써 주인공 태식의 발악을 절정으로 치닫게 할 마지막 커튼을 열어준다. 마지막 반전이 없었더라면, 아니, 그냥 막바지의 감정(혹은 쓸데 없는 대사의) 과잉만 조금 참아냈더라면 훨씬 충격적이고 완성도 높은 이야기로 남았을테지만, 대한민국의 가식적인 관객 정서를 고려한다면 별로 기대할 바가 못 된다. 그 외엔, 백악관에 메일을 보낸달지, 중국어 통역 알바를 쓴달지 하는 소소한 재치들, 현실감 가득한 마약반 형사와 각종 양아치 조연들의 쌍욕들이 제법 만족스럽다.
물론! 우리는 이 영화의 액션에 대해서도 격하게 칭찬해야 한다. 이 영화의 무술팀(홍의정, 이건문, 서정주)이 어떤 이들인지 궁금해질 정도다. 나는 한국 액션영화에서 이렇게 미려한 움직임을 본 적조차 없다. 특히 영화 후반 나이프를 사용하는 원빈의 움직임은 정말 아름답다. 태식은 군더더기 없이 한 명 한 명의 급소에 확실히 치명상을 새겨 넣으면서 자칫 유지해져버렸을지도 모를 '전직 특수요원'이라는 설정을 관객들에게 확실히 납득시킨다. 특히 Thanayong Wongtrakul과 벌이는 마지막 결투는 원빈이라는 배우를 다시 보게 할 정도로 압권이다. 액션만이 아니더라도 이제 원빈은 비로소 대충 아무 배역이나 맡겨도 소화할 수 있는 이미지, 즉 진짜 아저씨가 된 듯 하다.
자 이제 '잔인함'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는 잔인해야 한다. 기껏해야 약이나 팔고, 기껏해야 주먹질로 돈이나 뜯는 양아치 상대라면, 강철중 아저씨처럼 흠씬 두들겨 패거나 급소도 아닌 몸통 어딘가를 잘 보이지도 않게 날카로운 금속제 흉기로 대충 찌르는둥 마는둥 해도 납득이 되겠지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악당들은 '사람고기' 갖고 장사하는 악마들이다. 산채로 각막을 적출하고, 배를 갈라 장기를 꺼내 파는 놈들이 동네 깡패들처럼 깔끔하게 서로 주먹질이나 칼질을 해주기를 바라는 건, 너무 나이브한 바램이다. 주인공 태식도 마찬가지. 전직 특수요원인데, 게다가 '섬멸'씩이나 하는 게 주 업무였던 양반이 제임스 본드 아저씨처럼 헤어스타일 하나 안 망가뜨리고 셔츠에 피 한 방울 안 튀기면서 싸워주기를 바라는 건 좀 소녀적인 취향이다. 요컨데, '아저씨'는 피가 튀어야 말이 되는 이야기인 셈이다.
혹자는 분명히 '테이큰(2008)'과 비교하려 들 것이다. 정말 비슷한 프레임의 이 액션영화는 연배가 상당하신 리암 니슨 아버님께서 아빠 말 안 쳐 듣고 유럽 놀러 갔다가 멍청하게 인신매매단에게 납치당한 딸년을 찾아 데려오겠다고 어림 잡아 50명이 넘는 나쁜 놈들을 꽤나 통괘하게 살해해 주시는 과정을 담고 있다. 분명히, 이 영화는 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라기보다는 거의 훈련된 전직 국가공무원에 의한 원정학살에 가까운 느낌만을 남긴다.
하지만 '아저씨'라는 이야기에 우리는 전혀 다른 감성을 갖고 뛰어들게 된다. 일단 소미는 미국 중산층 가정의 발랑 까진 말만한 틴에이저가 아니고, 약쟁이 술집 작부의 사생아 초딩 여자애다. 얼굴에 땟국물이 줄줄 흐르고 남의 물건을 수시로 탐내는,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저 어두운 뒷동네로 밀어 넘어뜨린 불쌍한 아이다. 물론, 등장하는 악당들도 유럽 전역을 무대로 기업적인 비즈니스를 펼치는 폼 나는 패밀리가 아니다. 깡다구와 악과 비열함 밖에 가진 것 없는 양아치들이다. 살아있는 사람의 몸에서 살덩어리를 잘라내어 팔면서도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건지 아예 둔감해져버린 처연한 싸이코들이다. 이제 주인공을 살펴보자. 대한민국이라는, 거의 허상에 가까운 비계덩어리를 지탱하기 위해 남들 모르는 곳에서 피를 흘려온 수많은 은퇴자들과 마찬가지로, 태식도 가진 것 다 잃어버리고(혹은 빼앗기고) 뒷골목으로 밀려나 스스로 어두운 전당포라는 감옥에 자신을 가두어 놓는다. 한참이나 망설이다가 찬거리로 집어 온 싸구려 소시지처럼 그의 삶은 눅눅하고 맛대가리 없다. 한가롭게 옛날 무용담을 나누며 소일거리로 아이돌 스타 경호 아르바이트나 해주시는 테이큰의 '아버님'과는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마음의 준비를 해 놓아야 정상이다. 이 잔인하고 건조하다 못해 쫙쫙 갈라지는 세계를 깨닫지도 못하고 원빈의 잘 생긴 얼굴만 멍청하게 쳐다보고 있어서는 안 된다.
관객들이 이 영화에서 훨씬 잔인하다고 느껴야 할 장면들은 따로 있다. 한 데 모아 받아놓으면 작은 욕조 하나는 채우고도 남을 다량의 선지가 여기저기서 뿜어져 나오는 다채로운 폭행 장면들이 아니다. 약쟁이 엄마와 이웃, 아니 세상 누구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한 채 한 켠에 방치된 사생아 여자아이의 세수도 못한 얼굴, 지하 창고에 짐승처럼 방치된 아이들이 한 켠에 모아 싸놓은 배설물에 비하면 찢겨나가는 악당들의 살점이나 줄줄 흐르는 피 따위는 전혀 징그럽지도, 잔혹하지도 않다. 고작 악당 몇 마리가 뿜어내는 피 따위로는 우리가 모른 척 살아왔던 세상 한 켠의 더러움을 씻어내기에는 모자라다. 오히려 갈증이 날 지경이다. 이 영화에서 '보이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것들'에 비하면 전혀 잔인하지 않다. 소외되거나 도태된 사람들의 일상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잔인하고 혹독하다. 그에 비하면 잘려나가는 팔다리 따위..
"모른 척 해서 미안하다." 옆에서 영화를 같이 보고 나온 여자친구는 이 대사를 듣고 죄책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 가여운 아이를, 이 더럽고 잔인스러운 세상을 모른 척 하면서 나만 잘 사는 것 같아, 나도 부끄럽고 미안하다. 가뜩이나 미안해 죽겠는데, 대수롭지도 않은 피 몇 방울 튀었다고 꺅꺅거리는 사람들이 조금 미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