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1-)곡례상편(曲禮上篇) <14> 太上貴德(태상귀덕)아주 옛날에는 덕(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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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라는 무엇인가?라는 막연한 이야기보다.. 지금 이 상황에서 이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 예인가? 라는 질문이 더 현실적으로 와닿는다.
몇 일 전, 직장에서 이름도 얼굴도 잘 모르지만, 같은 직장의 다른 부서, 나랑은 이제 교류가 없는 곳에 있는 누군가가 결혼을 한다고 해서, 같은 동료들이 돈을 거두어서 내자고 했다. 나는 난색을 표명했다. 잘 모르고 친하지도 않는데, 형식적으로 그리하는 것은 예에 맞지 않는다는 게 내 소신이다. 이전까지도 줄곧 나만 그렇게 해왔지만. 어느 순간 .. 다들 돈만 조금 내면 된다는 식으로 흐름이 만들어져서.. 혼자만 .. 모난 돌이 되는 모양새가 되었다.. 물론 다들 돈만 내고 할일을 다했다고 여기지만, 그 사람을 진정으로 축하해주는 맘이 있다면 가서 축하한다는 말을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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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직장에 있고, 가끔 지나가면서 얼굴만 보고 인사만 한다고 교류가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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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직급이 높으니, 선심을 베풀어야 한다? 그래도 입사한지 오래된 직원인데? 그냥 묻어가면 안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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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예라는 것은 친소의 구별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예기>(1-)곡례상편(曲禮上篇)(1-60)<7><예는 夫禮者(부례자) 所以定親疏(=仁)(소이정친소)무릇 예라고 하는 것은, 친한 것과 소원한 것을 정하고, 決嫌疑(=知)(결혐의) 別同異(별동이)의심스러운 것을 규명하며, 같고 다른 것을 구별하고, 明是非(=義)也(명시비야)옳고 그른 것을 밝히는 것이다. <예기>(726-)제통편(祭統篇) <13> 제사에는 열 가지 의리인 십륜(十倫)이 있다. 夫祭有十倫焉(부제유십륜언) 무릇 제사에는 열 가지 의리인 십륜(十倫)이 있다. 見事鬼神之道(=敬)焉(견사귀신지도언) 귀신(鬼神)을 섬기는 도 見君臣之義(=忠信)焉(견군신지의언) 군신(君臣)의 의리(義理)를 보여 주며, 見父子之倫(=孝親)焉(견부자지륜언) 부자(父子)의 천륜(天倫)을 보여 주며, 見貴賤之等焉(견귀천지등언) 귀천(貴賤)의 등급(等級)을 보여 주며, 親疎之殺焉(친소지살언) 친소(親疎)의 감쇄(減殺)를 보여 주며, <16> 작록과 포상을 베풀 때에도 태묘(太廟)에서 거행하였다. 夫祭有昭穆(부제유소목) 무릇 제사에는 소목(昭穆)이 있다. 昭穆者(소목자) 소목(昭穆)이라는 것은, 所以別父子遠近(소이별부자원근) 부자(父子)·원근(遠近)으로써, 長幼親疏之序而無亂也(장유친소지서이무란야) 또한 장유·친소로써 차례를 분별하여 어지럽지 않게 하는 것이다. 是故(시고) 有事於太廟(유사어태묘) 그렇기 때문에, 태묘(太廟)에 제사가 있을 때에는, 則群昭群穆咸在(즉군소군목함재) 군소(群昭)와 군목(群穆)이 모두 있어서, 而不失其倫(이불실기륜) 그 인륜(人倫)의 질서를 잃지 않게 되는 것이다. 此之謂親疏之殺也(차지위친소지쇄야) 이것을 일러 친소(親疏)의 쇄(殺)라고 한다. <예기>(986-) 삼년문편(三年問篇)(1-7) <1> 삼년의 상(喪)이란 무엇인가? 三年之喪何也(삼년지상하야) 삼년의 상이란 무엇인가? 曰(왈) 말하건대, 稱情而立文(칭정이립문) 정(情)에 맞도록 예(禮)(=정확히는 ‘꾸밈’또는 틀,형식)를 만들어 세우고, (**참고.. 仁은 表라고 하였고, 예의 꾸밈을 文이라 하였다.) 因以飾群(인이식군) 이로 인하여 別親疏貴賤之節(별친소귀천지절) 친소(親疏)와 귀천(貴賤)의 절도를 분별하여, 而弗可損益也(이불가손익야) 그래서 더하고 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故曰無易之道也(고왈무역지도야) 그러므로 말하기를 이는 바꿀 수 없는 도라고 한 것이다.
성인은 이것을 가지고도 아직 부족하게 생각하여!!!!!, 궁실을 짓고, 設爲宗祧(설위종조) 以別親疏遠邇(이별친소원이) 종조(宗祧)를 만들어, 이로써 친소와 원근을 분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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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예기의 전반에서 친소의 감쇄란 말이 자주 등장한다. 예기 도입부인 곡례상편에 예의 정의를 함에서, '친소 감쇄를 구별하는 것이 예'라 한 것은, 이러한 구별이 예의 근간이며, 어떻게 행동하고 대처하는지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친함이 있고, 친함이 없는 것은 분명히 구별되고, 거기에 쏟는 애정도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달라야만 한다. 밖에서 모르는 생판 남에게 더없이 친절한 척 굴면서, 집에 와서 가족들에겐 도리어 신경질을 내거나 화를 내고 박하게 구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이 있을까? 예기, 곡상례편 <3> 賢者狎而敬之(현자압이경지) 현명한 사람은 아주 가깝게 지내면서도 공경한다, 고 하였다. 되새겨볼 말이다.
이러한 예의 기준은, 내가 처한 사소해보이는 상황에서도 분명하게 적용된다. 예라는 오가는 것이다. 그리고 친함과 소원함의 구별이 분명하여야 한다. 내가 얼굴만 알고 있지만 교류가 없고, 친함이 없는 이에게는 .. 그렇게 억지로 예를 갖출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남들이 한다고, 부화뇌동하는 행동은 도리어 지나친 것이니, 하지 않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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