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리(이중섭의 별명)와 결혼한 걸 후회하냐고요? 함께하지 못한 것만을 후회하지요"

서귀포=곽아람 기자 | 2012/11/06 03:03

 

"사랑하는 나의 아고리(이중섭의 별명·일어로 '턱이 긴 이씨'라는 뜻). 하루빨리 편지를 써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 설마 병에 걸리시진 않으셨겠죠. 아무 소식이 없다면 여러 나쁜 생각과 상상으로 고통스러울 겁니다."

제주 서귀포시 이중섭 미술관 1층 전시장에는 기별 없는 남편을 애타게 그리는 아내의 편지가 걸려 있다. 2일 전시장 입구에 걸린 이중섭(1916~1956)의 1955년 작 '자화상'<작은 사진> 복사본 앞에 휠체어를 탄 90대 일본 여성이 조용히 자리했다. 수십년간 고된 노동에 시달린 손마디가 울퉁불퉁했다. 57년 전 떨리는 마음으로 그 편지를 썼던 바로 그 손. 이중섭이 "유일한 나의 빛, 나의 별, 나의 태양, 나의 애정의 모든 주인인 나만의 천사"라고 했던 아내 이남덕(91·일본명 야마모토 마사코) 여사다.

"가슴이 아파서 차마 이 그림(자화상)을 쳐다보지 못하겠습니다. 내가 아는 남편은 이렇게 굳은 모습이 아니었어요. 내가 곁에 있었다면 이렇게 슬픈 표정 짓지 않았겠지요."

서귀포는 이 여사와 이중섭의 특별한 추억이 서린 곳. 이중섭 부부와 두 아들은 1951년부터 1년간 서귀포의 1.4평(4.6㎡) 단칸방에 머무르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1952년 이 여사는 생활고를 피해 두 아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갔고, 1956년 이중섭은 서울서 객사했다. 이 여사의 서귀포 방문은 1997년 이중섭 거주지 복원 준공식 참석 이후 15년 만이다. "서귀포는 바닷가서 게 잡고, 산에서 나물 캐 데쳐 먹었던 곳, 단란한 가정의 즐거움을 알게 해준 곳이에요. 다시 오고 싶지만 건강과 나이가 허락할지 모르겠어요."

이 여사는 일본 동경문화학원 재학 시절 같은 과(서양화과) 선배인 이중섭과 사랑에 빠졌다. 1945년 현해탄을 건너와 함경남도 원산에서 이중섭과 결혼했다.

"그의 어디에 반했느냐고요? (웃으면서) 모든 것에. 상냥한 사람이었어요. 때론 화가로서의 신념을 강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그때부터도 천재성이 느껴졌어요. 전람회에서 상을 받아 신문에 대서특필된 적도 있고, 러시아·프랑스에서도 호평받았어요."

삯바느질, 서점 점원 등을 하며 홀로 두 아들을 키운 신산한 세월, 세상 떠난 남편이 역사이자 신화가 되는 사이, 고달픈 현실을 견뎌내는 것은 고스란히 그녀의 몫이었다. 그러나 그는 "남편과의 결혼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후회라면, 남편과 함께 있지 못했던 게 후회겠지요. 남편은 가고 없었지만, 항상 내 곁에서 나와 아이들을 지켜주는 것만 같았어요."

이중섭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부부'(1953). 푸른 날개의 수탉과 붉은 날개의 암탉이 재회의 입맞춤을 하고 있는 그림이다. 이중섭이 일본의 아내를 그리며 그린 이 그림 복사본을 이 여사는 도쿄 집 현관에 걸어두고 있다.

Posted by 돈오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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