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춥고 배고팠던 때였다. 먹고 살기 위해 중동 건설 현장으로 떠나거나, 광부나 간호사로 원치 않는 이민을 가야하던 시절이었다.
24살의 꿈 많던 청년은 바다를 선택했다. 항해사로 참치잡이 원양선에 올랐다. 그때는 참치잡이가 천직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4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그 청년은 참치를 가공하는 대표적인 식품회사 사조씨푸드의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결국 그때 오른 참치선은 그의 일생을 관통한 '천직'이 됐다.
김정수 사조씨푸드 대표이사는 그렇게 인생을 살았다. 1974년 사조그룹에 입사한 후 쭉 한우물만 팠다. '사조'라는 이름과 같이 일한 지가 언 40년 세월이다. 그는 항해사로 입사해 CEO에 오른 입지전적의 인물이다.
김 대표는 인생을 배 위에서, 바다에서 배웠다고 했다. 그리고 원양업에서도, 회사 경영에서도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사조씨푸드 상장을 앞둔 그는 "모든 답은 현장에 그리고 사람에게 있다"며 "운이라는 것은 겸손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려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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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 리스크, 노 리턴...바다에서 인생을 배우다
김 대표는 광주고를 나와 부산수산대학교(현 부경대학교)에 진학했다. 원양선을 타면 돈을 빨리 벌수 있다는 학교 선생님의 말씀에 정한 결정이었다. 8남매의 장남이었던 그는 집안을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1974년 봄, 난생 처음 원양선에 올랐다.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사조산업에 평사원(항해사)으로 입사했다. 동기 50명 중 14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만선'의 꿈을 안고 참치선을 탔다. 김 대표도 그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얼마 못가 대부분 트롤(trawler)선으로 갈아탔다. 한번 바다로 나가면 8개월씩 걸리는 항해를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물로 고기를 잡는 트롤선은 70일 만에, 낚시로 참치를 잡는 참치선은 6~8개월에 한 번씩 귀항했다.
승부를 걸었다. 몸이 좀 힘들더라도 참치선을 계속 타면 희소가치가 있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승부수가 통했던 걸까. 배를 탄 지 3년 만에 항해사에서 선장으로 승진했다. 그의 나이 겨우 27살이었다.
그가 조업한 곳은 주로 인도양이었다. 새벽 3시에 기상해서 6시간 동안 약 18km 정도 거리에 꽁치, 오징어 등을 꿴 낚시 3000개를 바다에 뿌리고, 다시 14시간 정도 낚싯줄을 감는 생활을 매일 했다. 낚시 3000개에 올라오는 게 보통 참치 40~50마리, 2~3톤 물량이었다. 최고 많이 잡았을 때 기록은 23톤이다.
인도양에서 잡히는 참치는 주로 눈다랑어, 황다랑어다. 눈다랑어는 커봐야 150kg, 황다랑어는 보통 50~60kg 정도 한다. 똑같은 눈다랑어라도 태평양에서 잡히느냐 인도양에서 잡히느냐, 또 산란기에 잡히느냐 아니냐에 따라 맛이 다르다고 한다
배를 타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태풍을 만났을 때였다. 그가 조업하던 참치 어장은 주로 북위 10도, 남위10도 부근이었는데 바람도 크게 일지 않고 태풍도 없었다. 태풍을 만나는 곳은 참치를 잡기 위해 이동하는 동남아 바다에서였다.
당시는 항법이 발달하지 않아 태양과 별의 위치를 보고 각도를 내서 항해를 해야 했다. 필리핀 해협 부근에서 태풍을 만났는데, 4일이나 갔다. 태풍이 몰아치면 잠자리가 머릴 박듯이 선수를 천천히 움직여야 하는데 바로 앞에 암초가 있어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황천항해 (荒天航海)였다.
김 대표는 "선장이 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난 태풍이었다"며 "바로 옆에 큰 고래 같은 게 떠 있어서 보니 우리 배보다 훨씬 더 큰 배도 속수무책으로 파도에 떠 밀리고 있더라"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바다와 파도에 목숨을 맡기는 것 외엔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는 이 경험을 통해 어려운 순간에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웠다. 전화위복이라고 했던가. 태풍을 보내고 나간 참치잡이 배는 만선이었다. 노 리스크, 노 리턴(no risk, no return). 그가 바다에서 몸소 체험한 인생 법칙이었다.
◇ 사조그룹과 함께 한 40년...항해사가 CEO가 되다
과거 참치원양업 등 수산업으로 분류되는 회사만 200여개가 넘었다. 현재는 대부분 도산하고 사조, 동원, 신라, 한성 등 5개 정도가 살아남은 상태다.
그 중 참치업종에서 사조와 동원은 국내 양대 산맥으로 서로 라이벌 관계다. 김 대표가 입사할 당시만 하더라도 사조는 배가 5척뿐인 작은 회사였다. 김 대표가 사조와 인연을 맺게 된 이유는 '새 배'를 타고 싶어서였다. 당시 사조산업은 회사에 돈이 생기면 새 배를 사서 선단을 늘려 나갔다. 지금 사조그룹이 소유한 배는 대형선 기준 80척에 이른다.
그는 "참치잡이 하는 회사가 큰돈을 벌 기회가 적었다"며 "사조가 근검절약해서 배를 사모으던 내공으로 지금은 북극 가서 명태잡이도 하고 남극에서 메로잡이도 한다"고 했다.
그는 항해사로 3년, 선장으로 3년 일하고 부산지사에서 다시 3년을 근무했다. 그리고 다시 선장 직함을 달고 바다로 나가 3년을 더 배를 탔다. 바다에서 보낸 시간만 10년 가까이 된다. 이후에는 줄곧 본사에서 근무했다.
김 대표는 2001년 사조산업의 이사직을 단 것을 시작으로 그룹 임원으로 승승장구했다. 그는 현장직에서 CEO로 오른 것에 대해 회사에 감사하다고 했다. "하숙집도 그렇고 배우자감도 그렇고 한번 정하면 바꾸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인 그에게 "사조그룹에서 일하며 오랫동안 같은 업종에 몸담을 수 있었던 게 행복하다"는 것.
배에서 선장으로 일하든 회사의 임원으로 일하든 사람을 다룬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자신이 선장으로 일할 때 중도하차한 선원이 한명도 없었다는 게 인터뷰 중 유일하게 자랑으로 한 말이었다. "사람을 얻으면 현장을 얻고, 현장을 얻으면 문제의 답은 저절로 구해진다."
사조그룹이 벤치마켓으로 삼고 있는 회사는 일본의 마루하 수산회사로 조업부터 가공, 유통까지 모두 담당한다. 매출액이 14조~15조원에 이른다. 사조씨푸드는 그간 주업이었던 횟감용 참치에서 명태, 오징어 등 일반 수산물로 영억을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그는 "국민소득이 올라가면 회나 수산물에 대한 기대수준도 올라간다"며 "손질이 어려운 수산물도 가정대체식(HMR)으로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는 업종에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참치회에 관한 그의 팁 한가지. 참치 부위 중에서 으뜸으로 치는 뱃살(오도로)은 기름기가 많은 부위라 고추냉이가 들어간 양조간장에 찍어먹는 게 좋다. 기름장이나 김에 싸 먹는 것은 부드러운 것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특성에 맞게 응용된 것이지, 참치회는 간장을 곁들이는 게 좋다.
Posted by 돈오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