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이해승, 친일 맞지만 재산환수 不可"
뉴시스 | 2010/12/26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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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에 귀족신분인 '후작'의 작위를 받은 고(故) 이해승이 친일행위를 한 것은 맞지만, 그의 토지를 환수할 수는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부장판사 성지용)는 이해승의 손자 A씨가 "조부를 친일행위자로 지정한 것을 취소해달라"며 행정안전부장관을 상대로 낸 친일반민족행위자 지정처분 취소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26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해승은 1939년부터 1942년까지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평의원과 같은 일제 통치기구의 간부 역할을 맡아 수행했다"며 "국방헌금 모금을 주도해 일제에 전달하는 등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수차례 적극 협력하면서 친일행위를 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후작 지위 자체는 '한일합병의 공'으로 받았다기 보다, 일제가 합병 직후 조선왕실의 종친을 회유·포섭하는 차원에서 수여한 작위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며 "후작이란 신분만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본 것은 부당하다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인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같은 법원 행정7부(부장판사 이광범)는 A씨가 "이해승이 취득한 서울 은평구 일대 3000㎡의 토지를 친일재산으로 볼 수 없다"며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낸 친일재산확인결정 처분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해승이 '한일합병의 공'으로 후작 작위를 받았는지 여부가 관건인데, 그같은 공로를 세운 대가로 부여됐다고 볼만한 아무런 증거가 없다"며 "합병 이후 친일행각에 대해 역사적·도덕적 비난을 받을 수 있지만, 작위만 가지고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판단해 토지를 환수한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이해승은 철종의 생부인 전계대원군의 5대손으로 한일합병 이후 1910년 10월 일본으로부터 조선 귀족 중 최고의 지위인 후작 작위와 함께 은사공채 16만8000원, 한국병합기념장 등을 받았다.
1939년부터는 조동총독부가 관변기구와 민간단체를 망라해 조직한 전시통제기구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평의원을 지냈고, 1940년부터 1942년까지는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이 확대 개편된 '국민총력조선연맹'의 평의원을 지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이를 근거로 지난해 이씨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해 후손에게 통지했고, 이씨의 손자인 A씨는 "조부가 일제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한편 지난 11월 대법원 1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이해승의 손자가 "300억원대 토지의 국가귀속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를 상대로 낸 국가귀속결정처분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