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산부인과 병동의 미혼 여성들

서 경 산부인과 의사 | 2011/12/27 22:19

최근 한 산부인과에 미혼 여성 7명이 입원했다. 모두 응급실로 급히 왔다가 병실로 올라왔다. 이 중 19세인 대학 1년생은 임신인 줄도 모르고 진통이 시작되어 만삭의 아기를 분만했다. 산모도 그 어머니도 임신한 줄을 몰랐다고 한다. 담당의사는 입원실에서 우는 모녀(母女)를 보고 생각이 복잡해졌다. 그래도 분만이 임신중절하는 것보다 신체적 후유증이 적다고 애써 위로했다. 20대 미혼(未婚) 환자 둘은 자궁외임신이다. 임신한 나팔관을 제거하는 응급수술을 시행하였다. 요즈음은 복강경 수술이 보편화하여 배를 여는 개복(開腹) 수술 때처럼 큰 흉터를 남기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으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자궁외임신의 많은 경우는 골반염을 앓아 나팔관이 망가진 후유증으로 생긴다. 남은 한쪽의 나팔관 상태에 따라 나중에 임신이 될 수도 있고, 불임이 될 수도 있다. 최악은 그쪽에 다시 자궁외임신이 생기는 경우다.

10대 미혼여성 2명과 30대 미혼여성 1명은 골반염이다. 우리나라에서 골반염은 클라미디아라는 미생물에 의한 성병이 가장 흔한 원인이다. 골반염의 문제는 대개 증상이 없거나 아랫배가 약간 불편한 정도의 증상만 보이기 때문에 환자가 심각성을 모르고 병원을 늦게 찾아오는 것에 있다. 이런 경우에 이미 나팔관 등이 망가져서 자궁외임신·불임·만성골반통으로 연결되게 된다. 또한 골반염은 여성이 치료되더라도 상대 남성이 치료되지 않는 한 반복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들의 문제는 모두 미혼여성의 성생활과 관련된 것이다. 생식보건의 핵심과제들이다. 우리나라의 생식보건 정책은 주로 저출산 대책의 관점에서 논의되고 있다. 피임 보급은 이미 국가 보건정책의 관심 밖이고 피임에 관한 일체의 비용은 본인의 몫이다. 여성이 불임시술을 받으려면 보험 적용도 안 되고 비싼 수술비를 부담해야 한다. 한때는 출산을 많이 하는 것이 공공의 적(敵)으로 간주될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피임정책의 필요성을 말하면 저출산 대책의 관점에서 공공의 적이다.

인공 임신중절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저출산 대책의 차원에서 초기 인공 임신중절 허용 주장은 밀려나고 생명존중론자들의 무조건 인공임신 중절 금지 정책이 환영받고 있다. 한국의 모자보건법은 사회경제적 이유는 물론 무뇌아나 염색체 이상 같은 치명적인 기형아라도 엄마로부터 유전되는 기형이 아닌 한, 임신의 어떤 시기라도 임신중절이 허용되지 않는다. 최근에는 불법 인공 임신중절 단속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임신중절 비용이 많이 증가하여 돈 없는 젊은 여성이 인공 임신중절을 받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이들의 상당수는 출산하여 아이를 버리고 있다.

대한민국은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의 '준(準)선진국'이다. 그러나 이런 경제수준에 걸맞게 국민의 의식 수준이 성숙해 있는지 의문이다. 한국의 보건정책에서 급속히 증가하는 젊은 세대의 성 문제를 인식하고 이들에게 보다 적극적인 성교육, 피임기구 보급 및 임신에 대한 상담 및 초기 임신의 인공 임신중절 대책을 언제 본격적으로 논의할 것인지 갑갑할 따름이다. 성(性)의 문제는 적당히 덮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기성세대, 임신은 본인이 책임질 문제라고 생각하는 원론주의자, 무조건 임신중절은 안 된다고 생각하는 생명옹호론자들에게 묻고 싶다. 젊은 세대들의 미성숙한 성 문제와 그로 인한 후유증은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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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돈오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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