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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권모(42·인천 서구)씨는 몇 년 전부터 남편의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금주 방법을 알아봐 주고 "당신도 할 수 있다"며 용기를 북돋아 줬다. 그런데 최근 남편이 알코올 중독 탈출 프로그램에 열심히 참여하자 돌변했다. 갑자기 마음이 허전하고 불안해졌다. 그래서 "살면서 술은 한 번씩 마실 수 있는 것"이라며 남편이 알코올 중독 탈출 프로그램에 못 가도록 등록 해지를 시켰다. 그녀는 심리상담소에서 '동반의존증' 진단을 받았다.

유모(25·서울 마포구)씨는 얼마 전 남자친구와 헤어지자마자 새 남자친구를 만났다. 유씨는 새 남자친구에 금방 빠졌다. 연락이 안 오면 불안해서 자리에 앉아 있지도 못했다. 언제라도 만날 수 있도록 다른 약속은 아예 잡지 않았다. 남자친구가 함부로 대하고 심지어 때려도, 그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며 복종했다. 전 남자친구와 사귈 때도 똑같았다. 유씨같은 증상을 '관계중독'이라고 한다.

보통 중독이라고 하면 알코올, 도박 등을 떠올리지만 권씨, 유씨같은 사례도 중독 증상이라고 볼 수 있다. 서울중독심리연구소 김형근 소장은 "우리연구소를 찾는 중독 환자의 30% 정도는 관계중독과 동반의존증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기선완 교수에 따르면 중독에는 3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다. 통제가 안 되고, 내성이나 금단 증상이 생기고, 모든 면에서 부정적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관계중독은 ▷관계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 다른 대상이 나타나지 않는 한 끊을 수 없다 ▷관계를 맺지 않으면 불안해 견딜 수 없다 ▷중독된 관계 속에서의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관계를 맺은 상대에게 항상 버림받는다는 특징이 있다.

동반의존증의 특징은 ▷남의 일에 간섭하면서 고통·스트레스를 받지만 돕는 것을 그만둘 수 없다 ▷남에게 도움을 주지 않으면 우울해 견딜 수 없다 ▷정작 상대방은 좋아하지도 않고, 좋은 방향으로 변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증상은 어렸을 때 받은 상처로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긴다. 이런 사람이 '사랑받을 수 있다면 나는 쓸모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하면 관계중독이 될 수 있다. 또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면 나는 쓸모있는 사람'으로 생각이 발전하면 동반의존증이 된다. 김형근 소장은 "어렸을 때 부모와 떨어져 살았거나 가정에서 사랑을 받지 못하고 학대·무시를 당한 경험이 있다면 이런 증상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관계중독과 동반의존증이 심해지면 우울증, 편집증세, 폭식 습관, 또 다른 중독이 생길 수도 있다. 드물지만 자살하는 일도 생긴다.

증상이 있는 사람은 심리상담이나 인지행동 치료 등이 필요한데, 보통 6개월~2년 정도 받으면 낫는다. 증상이 심하거나 급성으로 나타나면 항우울제 등을 쓰기도 한다.

학계에서는 관계중독과 동반의존증을 정신질환인 중독으로 보기 어렵다고도 한다. 연구로 입증된 게 거의 없다는 것이다. 세브란스병원 남궁기 교수는 "사람끼리 관계를 맺는 일종의 유형일 뿐, 학계에서 정설로 인정된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Posted by 돈오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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