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모른척 할 것인가

탈출구 찾는 노인으 性

우리 사회의 폐쇄성이 음성적으로 노인의 문란함을 부추기고 노인의 건강을 해치며 노인 범죄를 양산한다. 나이와 함께 갇혀버린 성 때문에 노인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되는 딜레마 속에 방치되고 있다.

박은경 〈자유기고가〉


    해는 유엔이 정한 「세계 노인의 해」다. 때맞춰 정부를 비롯한 각 기관과 관련 단체마다 노인복지에 관한 새로운 구상과 정책을 속속 마련하고 시행중이다. 노인에 대한 경로연금 지급, 노인 의료비 부담 경감, 복지시설 확충….

그러나 수많은 복지 프로그램 중 노인의 「성(性)」과 관련한 내용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이는 「동방예의지국」의 근엄주의와 엄숙주의가 아직도 잔존하고 있는 우리나라 기성사회의 분위기가 노인의 성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터부시하고 외면하는 실정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취재중 찾은 관련 기관 어디에서도 노인의 성을 다룬 통계나 실태파악 자료는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노인문제 상담기관에서조차 성문제만큼은 관심 밖의 일이었다.

「밥 먹고 걸어다닐 힘만 있으면 성욕과 성능력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의학계는 지적하고 있는데도 성문제는 우리나라 노인의 삶에서 철저히 무시되거나 방치되고 있다. 실제로 노인의 성욕에 대해 사람들은 대개 『노인이 무슨…』 『주책이다』 『노망났다』 『낯 부끄럽다』 『정신이상자다』라는 반응을 서슴지 않는 실정이다. 그러나 입에 올리기조차 꺼려온 이 「노인의 성」이 지금 우리 사회 일각에서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얼마 전 「신동아」 편집실로 A4 용지 3장 분량의 편지가 전달됐다. 지방 보건소를 돌며 4년 가까이 근무하고 있는 20대 후반의 김용우씨(남·가명)가 「노인 성문제」에 관해 보고 듣고 생각한 내용을 담은 글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현재 쭚쭚보건소에 근무중인 김용우입니다. 청소년의 비뚤어진 성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이 시대 젊은이의 한 사람으로 기성세대이신 어른들께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김씨의 글은 자신이 직접 임상에서 목격한 노인의 어린이 상대 성추행 사건과 시골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부 노인들의 문란한 성생활 단면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었다.

먼저 김씨를 만나 그가 직접 보고 겪은 노인의 성 실상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는 서울 모 의대부속병원에서 4주 동안 실습기간을 거치면서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 3명의 성추행 피해 실태를 생생하게 목격했다. 그 중 하나가 동네 노인 두 명에 의해 차례로 강간당한 초등학교 3학년 여자 어린이의 사례.

『실습생 대기실에 있는데 산부인과 분만실에서 환자 처치를 부탁하는 간호사의 긴급호출이 들어왔다. 달려가며 읽은 응급기록에는 「초등 3학년 강간」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그때 내가 만난 여자아이는 심한 공포에 떨면서 「외상후 장애증후군」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아래를 대충 가린 옷을 걷어내고 상처난 아이의 몸을 보았을 때 김씨는 자신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고 한다. 어떤 ×××가….

『9세 정도면 질의 직경이 작고 얕으며 신축성이 거의 없어 성인의 새끼손가락 정도로도 상당한 통증을 느끼게 된다. 당시 아이를 상대로 두 명의 노인이 과격한 성행위를 했던 모양인지 질은 모두 파열되어 있었고 꿰매기조차 난감한 상황이었다』

또 다른 초등 4학년 여자아이가 엄마 등에 업혀 왔을 당시 아이는 패닉 상태에 빠져 현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같은 동네에 사는 60대 노인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아이는 집에서 사라진 지 이틀 만에 부모에 의해 산에서 발견됐다. 『누구네 할아버지가 사탕을 사주며 아이를 산속으로 끌고 갔다』는 소문을 듣고 근처 산을 샅샅이 뒤지던 부모는 방치된 공사장 자재창고 근처에서 아이를 발견하자 경악했다고 한다. 얼이 반쯤 빠진 상태에서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아이는 아랫도리가 몽땅 벗겨진 채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던 것.

『검사 결과 아이의 질은 100% 파열됐고 직장과 질이 뒤범벅된 처참한 지경이었다. 병원에 업혀 온 아이 팔에는 끈으로 묶였던 상처까지 나 있었다. 더구나 윤활액까지 미리 준비한 걸로 봐서 아이를 성추행한 노인은 아마 용의주도한 상습범이었을 것이다』


면 전체에 성병 약 투여할 판

그 후 시골 보건소에 근무하면서 김씨는 우리나라 노인 성실태의 심각성을 더욱 더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성폭행 사건으로 보건소를 찾아왔던 6세 여아는 요도 파열이 된 상태였다. 노인 성추행범 중에는 어린아이의 요도나 항문만 골라 삽입하는 경우도 있다』

같은 마을에서 약 2년 전 발생했던 사건은 김씨를 더욱 경악하게 했다. 어느날 동네 모범생으로 소문난 중학교 3학년 남학생이 『소변 볼 때 따끔거리고 아프다』며 보건소를 찾아왔다. 검사 결과 임질로 판단되어 성관계를 추궁했더니 같은 동네 중학교 2학년 여학생과 관계를 맺었다고 털어놓았다. 설마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이 임질에 걸렸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는 김씨.

『나중에 여학생을 추궁한 끝에 같은 학교 남학생 여러 명과 성관계를 가진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그 여학생에게 처음 병을 옮긴 사람은 다름아닌 같은 마을에 사는 60대 중반의 노인이었다』

그 여학생은 하교길에 일손이 필요하다며 도움을 청해온 이웃 노인을 따라 순순히 그의 집으로 갔다고 한다. 『고생했으니 방에 있는 과자나 먹고 가라』는 꾐에 멋모르고 따라 들어갔다 할머니가 집을 비운 사이 안방에서 성폭행을 당했던 것이다.

상황의 심각성을 느낀 김씨는 고민 끝에 여학생에게 임질을 옮긴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그러나 『무슨 소리냐. 그런 일 절대 없다』고 펄쩍 뛰며 빗자루를 휘두르는 통에 쫓겨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할머니 한 명이 보건소로 찾아왔다. 남편과 성관계를 하는데 남편 몸(성기)에서 고름이 나온다고 했다. 할아버지를 보내라고 해서 성폭행 당했던 여학생과의 관계를 캐물었더니 그제서야 순순히 시인했다. 할머니 몰래 치료를 해주었는데 며칠 뒤 또 다른 할아버지가 같은 증세로 보건소를 찾아오는 일이 벌어졌다』

김씨는 마을 지도를 꺼내놓고 임질 관련 환자 집을 표시해 나갔다.

『그 결과 한동네 할머니, 할아버지 거의가 얽히고 설킨 성관계를 맺고 있었다. 임질 환자를 상대로 약을 투여하다보면 「면」 단위 전체에 투여하게 될 판이었다』

임질 때문에 보건소를 찾았다 맞닥뜨린 두 할머니는 그 곳에서 한쪽 할머니 남편의 외도 사실이 발각되어 심한 다툼을 벌였다고 한다.

『임질 치료시 보건소 기록에 이름을 남기고 약을 타가야 하기 때문에 보건소 치료를 극도로 꺼리는 노인들이 많다. 더구나 동네에 소문날까 두려워 병을 방치한 채 계속 성관계를 맺기 때문에 위생이나 건강상 문제가 생기고 있다』

주민 수가 적고 이웃끼리 왕래가 빈번한 시골마을에서는 유아를 비롯한 8세 미만 어린이 성추행 사건이 가끔 발생한다.

『어린아이들은 상황판단을 못할 뿐만 아니라 어른이 적당히 협박하거나 구슬리면 입을 열지 않기 때문에 노인들의 안전한 성추행 대상이다. 어린아이들은 과자를 사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유혹하기도 쉽다』

더구나 시골은 도시에 비해 보수성이 강하기 때문에 아직도 어른 말이라면 당연히 순종해야 하는 것으로 아는 아이들이 많다고 김씨는 말한다. 이러한 분위기도 아이들을 성추행 피해자로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그는 지적한다.

같은 동네 남녀 노인들 사이의 화간과 어린이 성추행 외에도 티켓다방 종업원을 상대로 성욕을 푸는 노인들이 적지 않다.

『이 근처 읍내만 해도 다방이 수십개에 이른다. 거의 티켓다방이라고 보면 된다. 단골손님 중에는 노인이 적지 않다. 이들은 돈 주고 여성을 살 수 있을 만큼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갖춘 사람들이다』

시골보건소에 있다 보면 웃지 못할 상황도 종종 겪게 된다고 김씨는 말한다.

『동네에서 경제력을 행사하는 유지 노인 중 어떤 이는 친해지면 종종 보건소를 찾아와 정력 좋아지는 약을 구해달라고 스스럼없이 말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60대 중반의 한 노인이 겨우 18세 여자를 세 번째 첩으로 얻었다며 정력제 타령을 늘어놓아 황당했다』


고독은 영혼을 갉아먹는다

비단 시골뿐 아니라 도심에서도 어린이나 10대 청소년을 상대로 한 노인 성추행 사건이 심심찮게 물의를 빚는다.

97년 전남 함평에서 발생한 「여고생 보복출산 사건」은 동네 남자 세 명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해 임신했던 이모양(당시 16세)이 범인을 밝히고자 아이를 출산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결국 아이 아버지는 한 동네에 사는 정모씨(당시 63세)로 밝혀졌고 성폭행 사실을 끝내 발뺌하던 정씨는 강간죄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최근 2~3년 사이 언론에 오르내린 노인 관련 성추행 사건만도 여럿 있다. 아파트 경비원이었던 67세 김모씨가 친구집에 놀러왔던 여중생을 아파트 지하실로 유인해 성폭행한 사건, 이웃에 사는 초등학생을 여관에서 세 차례 성폭행했던 65세 안모씨, 자신의 집에서 혼자 자취하던 여중생을 70대 주인과 아들이 번갈아 성폭행해 낙태수술을 받게 한 사건, 16세 의붓딸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65세 아버지 이모씨, 손녀 친구인 6세 소녀를 유인해 성추행한 72세 노인 임모씨 사건 등등.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노년의 성욕을 「주책」이나 「정신이상」쯤으로 치부하고 외면하는 사이, 한편에서 이 땅의 아이들은 억눌린 성에 희생자가 되어 육체적·정신적으로 씻지 못할 상처를 입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전부 이상 성격의 노인이 저지른 비극일까. 의학계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그렇지 않다는 반응이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신승철 박사의 견해에 따르면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고독감과 소외감에 시달리게 된다고 한다. 더구나 배우자와 사별한 독거(獨居)노인이 늘면서 외로움을 타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정신의학적으로 사람은 고립되고 고독감을 느낄수록 더욱 강한 성충동에 지배를 받게 된다는 것이 신 박사의 지적이다. 이러한 현상은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그는 말한다.

『우리나라 사람의 평균 자살률은 인구 1만명당 15명꼴이다. 이에 비해 60대 이상 노인 자살률은 60명꼴로 추산된다. 노인 자살률이 평균에 비해 4배나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겪는 외로움과 소외감의 크다는 의미이다. 이는 결국 성범죄 위험률을 높여주는 셈이다』

노인문제 상담기관인 「한국 노인의 전화」는 최근 97년 한 해 동안 접수된 상담사례 3515건을 분석한 통계 자료를 발표했다. 그 결과 「고독과 소외감」을 호소한 노인은 6.9%인 243명이나 됐다. 강병만 사무국장은 『우리나라는 정서적·사회적으로 유독 노인의 성문제를 금기시 하기 때문에 당사자들조차 외부에 노출하길 극구 꺼린다. 실제로는 훨씬 많은 수의 노인이 성적 고독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강 국장은 또 『홀로 된 노부모가 밖에서 이성친구를 사귄다고 하면 자식들마저 무조건 부도덕하다고 생각하며 펄쩍 뛰는 경우가 흔하다. 심지어 노부모가 한방을 쓰는 것조차 못마땅해하는 자식들도 있다. 그러나 상담전화를 통해 외로움을 호소하는 노인들이 흔히 하는 얘기는 「혼자 방문 열고 들어갈 때 외로움이 엄습해 견디기 힘들다」는 하소연이다. 노인 입장에서 노년의 성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국노인의 전화에서는 매월 두 차례 「알찬 노후를 생각하는 모임」을 통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만남의 장을 갖는다. 현재 등록 회원수는 150명에 달하며 모임 때마다 평균 40명 정도가 참석한다. 『노래와 율동을 할 때 되도록이면 남녀 노인들이 자연스레 스킨십을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짜고 있다. 이러한 방식이 닫혀있는 성욕을 조금이나마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강 국장은 전한다.

모임에서 만난 남녀 노인 중에는 부부 아닌 부부로 맺어지는 커플이 적지 않다. 물론 이들은 성관계를 갖기도 하지만 결혼까지는 쉽지 않다고 강 국장은 안타까워한다. 살면 얼마나 산다고 뒤늦게 결혼이냐고 자식들이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사랑과 성은 노인에게 자연스럽다

홀로 된 부모의 재혼을 고려할 때 성문제를 염두에 두거나 배려하는 사람은 실제로 거의 없는 듯하다. 한양대 생활과학연구소 서병숙 교수가 최근 전국에 거주하는 기혼남녀 277명을 대상으로 「노인 재혼에 관한 기혼자녀의 시각」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응답자 중 아버지의 재혼에 찬성한 사람은 35%인 반면, 어머니의 재혼에 대해서는 14.8%만 찬성했다. 『자녀 입장에서 새로운 부모를 만나야 하는 어색함, 노인의 봉양 문제, 주변 시선과 이목 등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고 서 교수는 지적한다. 부모의 재혼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재혼이 가져다줄 긍정적 면으로 「노부모의 삶에 활기와 의욕을 주며 서로 의지할 수 있어 자녀로부터 독립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을 꼽았지만 여전히 노부모의 성문제는 배제되어 있다.

신승철 박사는 『사람은 누구나 노인이 된다. 노인이 되면 당연히 성욕이 없어지겠거니 하는 인식을 바꾸는 데서 노인 성문제가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신과 전문의 이나미 박사 역시 『실제 임상에서 환자들을 보면 성욕과 나이가 꼭 반비례하는 것만은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새해 벽두부터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황혼 이혼」 역시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60대 이상 노인의 늦바람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곽배희 부소장에 따르면 『아내 쪽에서 이혼을 요구해 상담소를 찾아오는 노부부 중에는 경제적으로 능력 있는 60~70대 남성이 부인 몰래 외도를 일삼아 트러블을 일으키는 예가 종종 있다』고 한다. 이중에는 사창가를 드나드는 노인도 있다고 곽 소장은 귀띔한다.

미국 텔레비전과 신문, 잡지의 건강 의학프로그램 상담자이자 박사인 미리엄 스토퍼드(Miriam Stoppard)가 쓴 『함께 배우는 성』(서울대 정신과 홍강의 교수 번역)은 「젊은 시절과 마찬가지로 노인도 상대의 매력에 이끌려 사랑을 하게 되며 성욕을 느끼고 성적 만족을 얻는다」고 밝힌다. 「오히려 성관계에서의 기본 능력은 나이가 들수록 강해지며 결코 약해지지 않는다」고까지 역설하고 있다.

인간의 생리적 성은 노화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해 발기 횟수가 줄어들거나 질 분비물이 적어져 질염 등에 자주 감염될 수 있지만 성애나 사랑의 감정은 육체적 노화와 별상관이 없다는 것이 의학계의 일반적 상식이다. 때문에 미국의 많은 노인들은 활동적인 짝을 찾아 노년기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각종 지면에 구애광고를 싣기도 한다. 이를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권장하는 사회 분위기다. 반면 우리 사회는 노인은 사랑이나 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이들의 자연스러운 감정이 억압되고 뒤틀려 나타나고 있다.

96년 아산사회복지사업재단이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신경정신과 전문의 정동철 박사는 「노년의 성과 성윤리」라는 주제 발표 때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최근 노년층에서도 성적 대상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고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청소년이나 중장년층과 구별되는 노년층만을 위한 성윤리 확립이 절실하다』

국내 한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남자노인의 89.4%, 여자노인의 30.9%가 정상적인 성기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또 다른 통계에서는 66~70세 노년층의 62.2% 가량이 월 1~5회 성관계를 갖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 박사는 『배우자가 없는 노인의 경우 서로 개성을 존중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자유로운 성생활을 용인하는 것도 검토해볼 시기가 됐다』고 강조한다.


『윤락녀에 용돈을 탕진하고 있다』

몸과 마음은 늙었어도 성욕과 성능력 만큼은 사라지지 않은 노인들. 이들을 왜곡되게 바라보는 시선이 어린이 성추행이나 노인 사이의 불륜과 화간 등 또 다른 음지 성문화를 잉태하는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출구를 찾지 못한 노인 성욕이 빚어낸 비뚤어진 음지문화는 사회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꽃뱀」을 따라 여관에 들었던 70, 80대 노인 두 명이 샤워 도중 금품을 몽땅 털린 사건이 있었는가 하면, 68세 된 부산의 한 지역 유지가 10대 여학생들을 상대로 이른바 「원조교제」 행위를 일삼다 윤락행위방지법 위반혐의로 구속된 사건도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원조교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1, 2년 전이다. 그러나 20대 중반의 남성 회사원이 들려준 얘기에 따르면 노인의 원조교제는 약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교 재학 때 일이다. 당시 돈 주고 학생들을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있으니까 절대 따라가지 말라고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단단히 주의를 줬다. 실제로 교문 앞이나 아이들이 많이 모이는 학교 근처 오락실까지 기웃대는 노인들이 있었다. 직접적인 성적 대상으로 학생들을 사는 노인도 있었지만 여학생과 남학생을 한꺼번에 사서 여관방이나 자신의 집에서 성관계를 하도록 시켜놓고 이를 지켜보는 걸로 만족하는 사람도 있었다. 탑골공원 주변에나 종로통에서도 이런 노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탑골공원을 비롯해 노인들의 쉼터가 되다시피 한 대도시 공원이나 인근 야산 등지에서 심심찮게 벌어지는 노인들의 매매춘 행위 역시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사회 깊숙이 뿌리내린 일그러진 풍경 중 하나다. 중랑구에 사는 한 시민이 『60대 중반의 아버지가 집 근처 공원에 나타나는 윤락녀에게 용돈을 탕진하고 있다. 왜 단속이 안 이루어지는지 모르겠다』며 한 언론사를 상대로 불만을 토로한 것은 최근 일이다.

종로구에 위치한 탑골공원은 한겨울에도 1000여명의 노인들로 늘 북적대는 「노인천국」이다. 술 취한 노인의 고함소리와 노랫소리, 시국을 향해 목청을 돋우는 떠들썩함이 가시지 않는 곳이지만 한켠에선 공공연하게 매춘거래가 이루어지는 대표적 장소로 떠오른 지 오래다. 매춘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눈맞은 할머니와 할아버지 중에는 인근 여관을 이용해 그동안 억눌렀던 욕구를 해결하기도 한다.

얼마 전 한 지방신문에는 「노인을 상대로 한 매매춘 극성」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30대 후반에서 60대에 이르는 매춘여성들이 지방도시 공원과 유원지 인근 야산 등에서 노인들의 쌈짓돈을 노리고 접근한다는 것. 특히 노인들이 바둑이나 장기를 두며 삼삼오오 모여 있는 공원 입구에는 어김없이 매춘여성들이 나타난다고 한다. 지난해까지 이런 매춘여성들은 10여명에 불과했으나 IMF 이후 2~3배 늘어난 것 같으며, 이들은 아예 인근 여관과 여인숙에 기거하며 노인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형편이라고 한다.

이 기사는 또 일부 지역에 이른바 「방석아줌마」로 통하는 들병이들이 다시 등장했다고 알렸다. 7~8년 전 행정기관의 단속으로 사라졌던 매춘여성들이 IMF 이후인 지난해 말부터 모여들고 있다는 것. 30대 후반에서 50대 여성인 이들은 노인과 실직자를 상대로 술판을 벌인 뒤 몇 만원을 받고 몸을 파는 2차에 나선다. 사정이 이렇자 이 지역 보건소와 개인의원에는 예전에 없던 노인 성병환자가 발생해 올 들어서만 3~4명씩 찾아왔다고 한다. 일정한 거처도 없이 공원과 야산을 떠돌며 노인을 유혹하는 이런 부류의 매춘여성들은 정기 성병검진 대상에 올라 있지도 않아 골칫거리인 셈이다.

『5년 전 내가 대학생일 때 우리 대학병원에서 탑골공원 노인들을 상대로 매독검사를 실시한 적이 있었다. 그 결과 매독에 감염된 적이 있는 노인이 전체의 80%가 넘었고 감염 상태에 있는 노인도 60%를 넘어섰다. 당시 병원에서 이 자료를 공식논문에 발표하려다 사회적 파장을 우려해 비밀에 부친 사실이 있다』

취재 도중 한 의사로부터 전해 들은 이와같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조사에 참여했다는 병원 관계자를 만나려고 했지만 『그런 조사를 한 적이 없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는 바람에 더이상 사실확인은 이뤄지지 않았다.


性폭행 발생 세계 최고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노인도 성적 절정기를 거친 사람들이고 그 쾌감을 익히 아는데 어떻게 죽을 때까지 수년씩 절제하겠는가. 노인은 성욕이 없다거나 당연히 절제해야 한다는 사회 통념 때문에 음지로 파고드는 성이 결국 아이들을 희생자로 삼고 있는 셈이다. 노년의 성문제를 방치하면 할수록 앞으로 더 큰 사회문제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우리 사회나 기성세대는 왜 노인도 성욕을 지닌 평범한 한 인간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존재한다고 이나미 박사는 설명한다.

『시대가 바뀌어 젊은층에서는 광범하게 성개방 풍조가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중장년층 의식에는 아직도 유교주의 문화가 잔존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자기 부모만큼은 성생활같이 「더러운 행위」는 일절 하지 않는 도덕적 존재로 남아있기를 원하는 어린 시절의 미숙한 감정이 성인이 돼서도 의식에 그대로 투사되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노인 대하기는 또 하나의 차별이자 억압이 될 수 있다.

노년은 죽음과 훨씬 근접해 있다는 점에서 성의 열락이 더욱 절실한 시기가 될 수 있다. 또 식생활과 의학의 발달로 70, 80대에도 건강을 유지하는 노인은 많은 데 비해 마땅히 할일은 없으니까 성욕을 추구하게 된다. 결국 일도 없이 성욕은 늘지만 해소하긴 쉽지 않은 문화가 이들을 이중의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셈이다』

음지에 괸 물은 썩기 마련이고 사회가 이를 외면하면서 비정상적 출구를 향한 노인 성문화가 결국 「어린이 성폭행」이라는 극단적 범죄행위로까지 뻗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최근 발표한 98년도 상담결과 분석 자료를 보면 전체 2085건의 성폭력 상담사례 중 유아와 어린이 피해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511건으로 24.5%를 차지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가 하면 국제 통계상 나타난 우리나라의 인구 비례 강간 발생건수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 외국의 성폭행 피해 신고율이 대체로 30% 정도인 데 비해 신고율이 불과 2%에 불과한 우리 실정을 감안한다면 실제로는 세계 최고의 성폭행 발생국가라고 봐야 옳다는 주장도 있다.

성폭행 사건은 당사자는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커다란 후유증을 남기기 마련이다. 관능미로 뭇 남성을 뇌쇄시켰던 미국 여배우 마릴린 먼로는 8살 때 의부에게 성폭행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스타가 된 후에도 당시의 정신적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밤마다 환각증세와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여러 남성들을 상대하고 수면제 없이는 단 하루도 잠을 잘 수 없었던 그녀는 결국 약물중독 상태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다.

전문가에 따르면 성폭행은 나이가 든 사람에게, 상습적으로, 여러 명에게, 또 잘 아는 사람에게 당할수록 충격과 후유증이 더 크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어린 나이에 당한 경우 성장 후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린다고 한다.


노인의 性이 출구를 찾지 못할 때

『4~6세 정도 유아는 노인이 몸을 만지는 행위에 대해 「좀 이상하다」는 느낌은 가질 수 있지만 잘잘못에 대한 판단능력은 없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몸을 남이 함부로 만지는 것에 대해 침해당하는 느낌을 갖는다. 이러한 무의식이 잠재해 있다 성에 눈뜨는 나이, 순결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사춘기가 되면 엄청난 혼란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어릴 때 받은 충격이 제때 해소되지 않을 경우 거의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평생을 살게 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들은 성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나이에 일방적으로 이용당한 것에 대한 분노로 남자를 향해 무한한 적개심을 품는가 하면 남자를 성적으로, 혹은 동물로 각인하고 남성혐오증을 갖거나 성기피증을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남자만 보면 긴장하고 특정 신체부위로 먼저 눈길이 가면서 심한 두려움과 공포감에 사로잡힌다고 한다. 이외에도 대인공포증, 노이로제, 경계성 장애, 우울증 등의 성격장애를 경험하게 된다. 극단적으로 음란한 삶에 빠져들게 되는 것도 성폭행 후유증의 하나다.

『이는 오히려 성에 과민하게 몰두하는 현상인데 윤락녀 중에는 어릴 적 성폭행 당한 경험이 있는 경우가 많다. 될 대로 대라는 식으로 자신의 삶을 내팽개치는 것이다』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빗나간 노인의 성욕이 초래하는 문제는 비단 피해 당사자인 아이에 그치지 않는다고 신승철 박사는 강조한다.

『한번은 친할아버지에게 성폭행 당한 초등생 문제로 그 부모가 찾아온 적이 있었다. 자식 입장에서 아버지를 고소할 수도 없고 아이가 받은 정신적 충격을 그대로 두고 보자니 화가 치밀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답답함을 호소해왔다』

성폭행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가족 안에서 발생한 비극적 사건 외에 어린 시절 당한 성폭행으로 혼자 고민하다 결국 가출해버린 소녀도 있었다. 17세의 조수민양(가명)은 7살 때 옆집 친구에게 놀러갔다 친구 할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불러서 친구와 함께 방에 들어갔다. 그런데 나만 남게 하고 친구에게 돈을 쥐어주며 과자를 사오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치마 속으로 손을 넣어 속옷을 벗긴 후 마구 주물렀다. 나중에 손가락을 넣을 땐 너무 아팠다』

당시에는 영문도 모른 채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감을 느꼈다는 수민양.

『중학생이 돼서야 그 때 내가 당한 일이 엄청난 것임을 깨달았다. 심한 죄책감에 시달렸고 더러워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기가 무서웠다. 지금까지 가족들도 모른다』.

동네에선 유식하고 점잖은 사람으로 소문난 할아버지를 마주칠 때마다 『할아버지를 죽이고 나도 죽고 싶었다』는 수민이는 결국 가출이라는 탈선의 길을 선택했다.


性이 빠진 노인복지는 공허하다

국제적 기준은 65세 이상 노령 인구비율이 7%를 상회하는 국가를 「노령화 사회」로 분류하고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도 내년에 노령화 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더구나 합법적인 성 상대인 배우자를 잃고 혼자 살며 소외감과 고독감에 시달리는 노인 역시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한편에선 노인전문병원이 들어서고 노인을 상대로한 실버타운이 속속 건설되고 있다. 굳이 삶의 질을 들이대지 않더라도 「성」이 빠진 노인복지의 구호는 공허한 메아리로만 들린다.

지난해 환갑을 넘긴 이춘자 할머니는 1년 넘게 정붙이고 다니던 노인대학을 최근 그만둬야 했다.

『그 곳에서 만난 칠십 가까운 노인과 연애질했다고 아들이 펄펄 뛰었다. 이후로 집 밖에 나가지도 못하게 한다. 자식들이 독수공방하는 노인네 외로움을 어찌 알겠는가』

남편을 여읜 지 5년이 넘은 이씨 할머니는 하루빨리 남편 곁에 나란히 묻히는 게 소원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예순일곱 살의 강대식 할아버지는 두 달 전 집을 나와 독립했다. 모 이벤트회사에서 주선하는 노인미팅에 참석하려다 아들 부부가 눈치채는 바람에 참석은커녕 싸움만 크게 하고 그 길로 분가했다고 한다.

『이런 저런 눈치 안 봐도 되니까 한집에 살 때보다 한결 마음이 편하다. 아무리 늙은이라지만 지들 인생만 있는 게 아닌데…』

이유없이 짜증을 부리면서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대고 가족을 못살게 구는 노인이 있다면 성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있다. 성욕이 제대로 발산되지 않아서 오는 화풀이거나 오랫동안 성욕을 억제받는 환경에 놓인 노인들의 우울증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성욕 해소를 위한 노인 대상 성교육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신승철박사는 강조한다.

『일본만 해도 젊은이들 못지않게 노인의 성이 개방적이다. 상대를 골라 성행위를 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보고 즐기는 문화도 마련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폐쇄성이 음성적으로 문란함을 부추기고 성폭행 등 범죄를 양산하는 것이다. 고상하지 않으면 저질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버려야 노인이 성으로부터 소외되지 않고 긍정적이고 자유롭게 발산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최근 중국에서 100세 노인이 구혼광고를 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아내와 사별하니 고독하군요. 젊고 아름답지 않아도 좋습니다. 남자의 절반은 여자, 여자의 절반은 남자라는 이치를 이해하는 사람이면 족합니다』.

현업작가인 1900년생 할아버지의 구혼광고가 지면을 통해 나가자 여성들의 전화가 쇄도했다고 신화통신은 전했다.

인구 400명인 핀란드의 쿠데마자르비라는 마을에서는 오는 8월7일 하루동안 성의 「해방구」를 마련한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유엔이 제정한 「세계 노인의 해」를 기념해 45세 이상 남녀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섹스 잔치」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 초원 곳곳에 헛간을 지어 사랑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줄 계획이라는 축제준비위원회측은 분위기가 잡히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 비아그라 같은 비상약품과 이를 처방할 의사도 둘 예정이라고 한다. 관계자는 『이 잔치는 섹스는 행복한 것이며 공개적으로 논의될 수 있는 것이라는 진실을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우리나라도 각종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노년층의 로맨스를 심심찮게 다루고 있다. 두어 세대 전만 해도 헛기침이나 하던 노인들이 길거리에서 포옹하고 자식 앞에서 내 사랑을 찾겠다 선언해도 그리 낯설지 않은 분위기다. 그러나 이것이 외국처럼 현실로까지 이어지지 않는 데 문제가 있다』고 이나미 박사는 말한다.

인간의 성능력과 관련해 얼마 전 장안을 떠돌던 우스갯 소리가 있었다. 20대 사랑은 장작불, 40대 사랑은 연탄불, 60대 사랑은 화롯불. 꺼질듯 말듯 겨우 불씨만 살아있는 화롯불로 우스갯소리 속에 박제돼버린 것으로 치부된 노인의 성. 버림받은 그 작은 불씨가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성폭행」 「매춘」 「성병」 「가정파괴」와 같은 화재를 일으키며 타오르고 있다.

신동아 9903월호

Posted by 돈오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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