⑴ 사회생활에서 일어나는 필연적인 대립·분쟁은 조정되고 통일적인 질서가 유지되어야 한다. 국가라고 하는 공동생활의 틀 속에서 단순히 개개인의 풍습이나 도덕 등의 자율적인 규범만으로 유지되지 않는 질서를 국가권력을 배경으로 법과 그 밖의 방법을 동원하여 유지시키는 작용을 정치라고 보는 견해이다. 물론 이러한 견해도 위로부터의 통치만을 정치로 보지 않고, 아래로부터의 항쟁 및 그 밖의 활동도 정치라고 본다. 다만 여기서는 국가를 중심으로 정치를 파악하는 점이 특색이라 할 수 있다.
⑵ 이에 반하여 정치는 국가만으로 한정되는 인간활동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생활의 제(諸)형태, 이를테면 회사·노동조합·교회·학교·가정 등 어디에서나 발생되는 이해관계의 대립이나 의견의 차이를 조정해 나가는 통제의 작용도 모두 포함한다는 견해가 있다. 미국 정치학자들의 대부분은 이 관계를 거번먼트(government)라 하여 국가는 공적인 거번먼트인 데 대하여 그 밖의 것은 사적인 거번먼트라고 설명하고 있다.
⑶ 정치를 모든 대립을 조정하고 통일적인 질서를 유지시키는 작용으로 보는 점에서는 ⑴·⑵와 같은 입장을 취하면서도 특히 사회적·경제적·이데올로기적 대립의 항쟁관계 속에서 상대방을 복종시키고 스스로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활동을 정치의 본질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것에 따르면 자기편에게는 가장 우호적인 단결과 협력을 제공하고 상대편에게는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곧 정치의 형태이며, 정치는 스스로의 의지에 상대방을 복종시키고 상대방을 통제하며 자신이 필요로 하는 질서를 유지·강화하는 작용이다. 따라서 이 견해는 자연히 국가를 중심으로 정치를 보는 경향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⑷ 한편, 마르크스주의는 정치를 계급적 시각에서 고찰하고 있다. 국가는 특정계급의 이익을 보호하는 권력기관이며, 국가의 통치는 적대적인 여러 계급의 저항을 통제하고 스스로의 권익에 필요한 질서를 유지·강화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피지배계급에 속하는 모든 대중은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수호하기 위하여 부단히 저항하고 적극적으로 요구하며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다양하고도 조직적인 노력을 경주한다. 이러한 지배와 저항을 본질로 하는 것이 바로 정치라고 규정하고 있다.
⑴ 고대국가:정치는 일반적으로 인류사회의 발생과 더불어 생겨났다고 하는 견해가 있으나, 원시사회에 이미 권력적인 지배가 있었는지는 확실하지가 않다. 사회가 빈부의 차이를 나타내기 시작하는 발전단계에 들어서면서부터 사회질서의 유지가 공권력에 의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게 됨으로써 비로소 정치현상이 나타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고대국가가 최초의 정치형태이며 거기에는 노예제도가 존재하였다. 데모크라시(democracy)가 태동된 아테네에서도 노예는 전혀 권리를 갖지 못하고 단지 노동을 통하여서만 사회생활이 가능하였다. 민주주의는 비교적 부유한 자유시민의 전유물이었다. 그래서 노예 및 농민대중의 반란은 고대국가의 정치불안의 요소로 항시 존재하였다. 이를 외부에 대한 정복으로 해소하려는 의도 때문에 전쟁이 끊임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Politica》에서도 정치의 목적은 최고선(最高善)에 있고 인간을 인격적인 존재로 완성시키는 것이라고 하면서도 긍정하였다. 이와 같은 지배계급의 철학과 함께 거대한 부(富)를 축적하여 막강한 권위를 가진 교회의 교의(敎義)가 피치자의 순종을 가져오게 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고대국가의 형태는 아테네의 민주제, 스파르타의 귀족제, 이집트·바빌로니아·페르시아 등의 군주제, 로마의 공화제 등 수많은 형태가 있었으나, 민주제·공화제를 제외하고는 그나마도 대부분의 정치체제가 피치자인 일반대중의 자유로운 정치활동과 권리보장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⑵ 봉건국가:봉건국가에서는 이미 능률성을 상실한 데다가 반란을 자주 일으키는 노예들로 인하여 사회의 발전을 도모할 수 없었으므로 농노제(農奴制)로 옮아 갔다. 그러므로 권력은 소수의 귀족(대지주)에 의하여 행사되었다. 그들은 자신의 영지 내에서 군사·재판·일반행정 등 모든 분야를 장악하고 있었으며, 교회 또한 광대한 교회령(敎會領) 내에서 재판권을 가지고 때에 따라서는 군사력까지도 소유하여 일개의 봉건국가의 성격을 띠었다. 봉건제에서 특이하게 나타나는 신분차별적인 지배체제와 전제정치는 교회와 중세기 신학의 역할로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
⑶ 절대주의국가:봉건제 속에서 상품의 생산과 교환이 발달하여 도시 중심으로 성장한 시민계급이 사회의 유력한 세력이 되었다. 농민대중의 반항은 해를 거듭할수록 치열해져서 봉건국가가 동요하게 되었다. 영주·귀족 상호간의 이기적인 야심과 영토확장을 위한 투쟁은 대중의 희생과 불만을 증대시켰고, 봉건영주의 재정을 궁핍하게 하는 동시에 신흥시민계급의 경제적·사회적 세력을 강화시켜 나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봉건적 권력을 제압하고 중앙집권적인 통일국가를 세우기 위하여 강력한 절대군주가 나타나 시민계급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 대신 그들의 경제활동을 보호하며 관료기구에 그들을 등용하였다. 따라서 절대주의국가는 절대군주의 무제한적 권력과 관료적 전제지배, 상비군의 강화, 상품생산과 교환의 육성 등을 특징으로 하였다. 여기서도 피치자인 대중은 권리를 가지지 못하였다. N.마키아벨리의 《군주론》, J.보댕의 《국가론》, T.홉스의 《사회계약론》 등은 모두 이 절대군주제를 정당화하는 정치사상이었다.
⑷ 근대국가:도시 수공업 및 상업의 발전, 시민계급의 성장, 해외항로의 개발과 식민지 획득 등으로 자본주의경제가 급속하게 발전함에 따라 유럽에서는 16세기에 접어들면서부터 봉건제가 붕괴되기 시작하였다. 근대 민주주의혁명은 부르주아지를 봉건적인 사슬로부터 해방시킨 혁명이었다. 봉건제 내부로부터 성장한 가내수공업(家內手工業)이나 매뉴팩처(manufacture:공장제수공업)는 대규모의 공장생산으로 전환하였다.
자유경쟁원리하에서 모든 상업활동이 전개되었으며, 자유평등의 이데올로기가 보편적인 정치사상이 되었다. J.J.루소나 J.로크의 《사회계약론》은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등장이 시민사회질서에 적응하는 정치체제의 이론이었다. 자본주의사회의 발전은 국민주권주의의 원리에 입각한 근대헌법제정을 가져왔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가의 부(富)의 축적과 노동자의 궁핍,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에 따른 경제공황을 초래하여 자본주의의 약점을 노정(露呈)시켰다.
1848년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선언’이 발표되어 사회주의의 혁명이론 및 그에 따른 정치사상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것이 자본주의를 대체하지는 못하고, 자본주의의 모순을 자체적으로 극복하기 위하여 국가권력의 개입으로 경제의 민주화 ·사회화를 이룩하려는 정책이 자본주의 각국에 널리 채택됨으로써 자본주의 사회는 발전을 거듭해왔다.
현대정치는 근대국가에 있어서의 모순의 해결을 근본적인 과제로 하고 있다. 그것은 첫째, 모든 자본주의국가에 있어서의 독점적인 자본주의 경제조직, 권력체제와 국민대중의 생활권 및 그 밖의 기본권의 관계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둘째, 자본주의의 기초 하에서 선진제국이 전 지구상에 설정한 식민지, 종속국의 독립과 이미 지구의 3분의 1을 점한 사회주의 국가의 대두에 의해서 근본적으로 변화된 국제정치의 장에서 어떻게 국제평화를 달성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의 끊임없는 세계적화야욕과 전쟁의 가능성 속에서 인류를 절멸의 위기 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핵무기의 위협을 전 인류가 느끼고 있는 긴박한 상황이 오늘날 국제관계 속에서 펼쳐지고 있음을 고려할 때 국가 간의 무력적 충돌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조직적이고 제도적인 노력이 창의적 정치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가끔 친구와 의견이 달라 말다툼을 할 때가 있지? 맛있는 케이크를 서로 많이 먹겠다고 싸우기도 하고. 여럿이 함께 살아가다 보면 종종 다툼이 생기게 마련이야. 이럴 때 꼭 필요한 것이 정치야. 정치란 생각의 차이나 다툼을 해결하는 활동을 말해. 정치는 어른들만의 일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거라고.
정치는 정치가가 하는 일이고, 나랑은 관계없다는 생각은 옳지 않아. 정치에 대해 알고 나면 정치가 좋은 세상을 만들고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될 거야.
다툼을 해결하는 활동, 정치 사람들 사이에 서로 생각이 다르거나, 혹은 다툼이 생겼을 때 이것을 해결하는 활동을 ‘정치’라고 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엔 수많은 갈등1)이 생겨나. 갈등이 생겼을 때 서로 자기 의견만 주장하면 사람들 사이도 나빠지고 사회도 어지러워질 거야. 그래서 여러 사람이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정치가 꼭 필요해.
서로 생각이 다르거나 다툼이 생겼을 때, 이것을 해결하려는 활동이 정치다.
좁은 의미의 정치와 넓은 의미의 정치 ‘정치’라는 말을 들었을 때 머릿속에 제일 먼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의 얼굴이 떠오르지? 이 사람들을 ‘정치가2)’라고도 하니까. 그렇다면 정치는 정치가들만 하는 것일까? 정치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어. 정치가들이 나랏일을 한다고 할 때는 정치를 좁은 의미로 사용하는 거야. 정치를 나랏일과 관련된 활동으로만 보기 때문이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하는 일이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어. 하지만 정치가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의미할 때는 꼭 나랏일만을 말하는 건 아니야.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가정에서, 학교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우리 모두가 정치를 하고 있어.
아직 정치가 남의 일처럼 느껴진다고? 정치가 내 주변과 내 생활을 바꾸고 있다는 걸 알면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을 거야. 그럼 정치가 우리 생활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우리 주변에서 한번 찾아볼까?
좁은 의미의 정치와 우리 생활 우선 좁은 의미의 정치는 국가와 지역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활동이야. 예를 들어 쓰레기 처리장3)을 우리 마을에 지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일 같은 것 말이야. 만약 쓰레기 처리장을 우리 마을에 짓기로 결정한다면 우리 마을의 모습이 바뀌게 되겠지. 이밖에도 정치를 통해 쌀을 외국에서 수입할지 말지, 고속 철도를 건설할지 말지 등을 결정해. 만약 쌀을 수입하기로 결정한다면 논농사를 짓는 우리 집의 소득이 줄어들 거야. 만약 고속 철도를 건설하기로 결정한다면 명절 때마다 고향집에 더 빠르게 도착할 수 있겠지. 이처럼 정치는 우리 주변과 우리 생활을 바꿀 수 있어.
정치는 우리 주변과 생활을 바꾼다.
넓은 의미의 정치와 우리 생활 넓은 의미의 정치는 우리 주변에서 훨씬 더 많이 찾아볼 수 있어. 교실 청소를 누가 할 것인가를 정하는 학급 회의도 정치의 한 예야. 학급의 반장이나 회장을 선출하여, 학교 전체 회의에서 학급을 대표하게 하는 것도 정치에 속하지. 그뿐 아니야. 정치는 우리 동네나 우리 집에도 있어. 주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반상회, 가족 여행지를 결정하는 가족 회의도 넓은 의미의 정치라고 할 수 있어.
정치는 생각의 차이나 다툼을 해결한다.
[네이버 지식백과]정치 - 갈등을 해결하고 좋은 사회를 만들어 (초등사회 개념사전, 2010.7.12, (주)북이십일 아울북)
특별 인터뷰 전성은 전 거창고 교장
수백명의 피어보지도 못한 꽃봉오리를 수장시킨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반세기 가까이 경남 거창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한국 사회와 한국 교육이 나아갈 길을 고민하고 다져온 전성은(70) 선생을 만났다. 인터뷰는 10일 오후 거창군 거창읍 가지리의 거고 농장에 있는 전 선생의 작업실에서 이뤄졌다.
전 선생은 경남 거창고의 4대 교장이다. 1956년 거창고를 인수해 일으켜 세운 아버지 전영창(1916~1976) 전 교장의 뒤를 이어 41년간 거창고와 샛별초등학교, 샛별중학교에서 교사와 교장 생활을 했다.
전성은 교장이 학생들한테 가르친 거창고의 ‘직업선택의 십계’는 지금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제1계명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제2계명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등은 성공을 교육의 최우선 목표로 하는 한국 교육계에 큰 울림을 줬다. 그가 메디치 출판사에서 펴낸 ‘교육 3부작’ 시리즈는 한국 학교 교육의 ‘불편한 진실’을 들춰 큰 반향을 일으켰다. 1권 <왜 학교는 불행한가>(2011)와 2권 <왜 교육은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가>(2013)에 이어, 완결편인 <왜 교육정책은 역사를 불행하게 하는가>가 최근 발간됐다.
2003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전 선생을 대통령 자문 교육혁신위원장으로 임명했다. 20년간의 장기 교육계획을 세우고 2년 만에 위원장직을 내려놨다. 노 전 대통령은 훗날 “전 선생님의 말씀대로 교육개혁을 했으면 우리 학생들이 좀 더 행복해졌을텐데 그 방향으로 과감하게 나가지 못했다”라고 고백한 바 있다. 전 선생은 현재 비영리 봉사 단체인 ‘하나를 위한 음악 재단’과 ‘사랑의 빛’ 재단 이사직을 맡고 있다. 국제성서연합회 세계성경번역센터 한국편집인으로, 성경 번역에도 힘을 쏟고 있다.
“얼마 전에 케이비에스(한국방송) 세월호 참사 특집 프로그램을 봤는데, 우리 모두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건 예수님 부처님이 하실 말씀이지 언론이 할 말이 아니에요.”
노무현 정부 때 교육혁신위원장을 지낸 전성은 전 거창고 교장이 무겁게 입을 뗐다. 2006년 현역 은퇴 뒤 ‘교육 3부작’ 집필과 성경 번역에 몰두해 왔으나, 교육계의 큰 어른으로서 보수 언론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모두의 책임론’을 쏟아내는 걸 지켜볼 수 없어서다. 전 선생은 정의와 불의, 참사의 역사적 해석, 종교와 교육, 지방선거 투표 같은 난해한 문제들을 작심한 듯 엮어 ‘권력집단 책임론’으로 뀄다.
“정의롭지 못한 정권이 들어서고, 정의롭지 못한 기업이 판치고, 종교와 교육마저도 성장을 추구하는 상황에서 그 죄, 그 업의 결과가 참사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참사를 슬퍼만 할 게 아니라, 정치·경제·문화·학계·언론 엘리트들이 책임을 회피하지 못하도록 행동할 때라는 조언을 빼놓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사회가 충격과 분노, 자책에 빠져 있는데요.
“나도 그래요. 하지만 우리 모두가 책임져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어요. 성경을 보면 하나님과 돈은 함께 섬길 수 없다고 돼 있어요(마태복음 6장). 하나님이라는 종교적 개념을 사회적으로 표현하면 정의예요. 건강한 사회, 사람이 살 수 있는 평화로운 사회, 서로 공존하는 사회가 되려면 도덕이 하나 필요해요. 그 도덕의 이름이 정의인 거예요. 다른 도덕들도 필요하지만 정의가 무너지면 소용없어요. 어떤 의미에선 정의만이 유일무이한 도덕이에요. 다른 것들은 덕목이라고 하는 게 더 좋아요. 그리고 돈을 추구하면 정의는 무너지게 돼 있어요.”
-이명박 정부 때 시작된 선박 사용 연한 연장이나 ‘언딘’으로 상징되는 구조작업 민영화 등이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한국 사회의 병폐인 물신주의가 한꺼번에 폭발한 현상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요.
“경제성장을 신처럼 떠받드는 한국 사회는 ‘정의 없는 세상’이에요. 정치의 목적은 정의 구현이에요. 경제의 목적은 공정한 분배에 있어요. 문화의 목적은 개인이 삶의 기쁨과 신비를 추구할 수 있는 자유예요. 그런데 부는 특권계층에 몰려 있어요. 나머지 사람들은 먹고사느라, 아파트 하나 장만하느라 젊은 시절을 다 보냅니다. 이건 정의가 아니에요. 경제성장은 정의를 추구하다 부산물로 얻어질 때에만 건전한 건데 인권까지 희생하고 얻어지는 경제성장은 망국의 길이에요.”
-우리 사회에 대형 참사가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좀처럼 극복하지 못하는 건 왜일까요?
“참사를 역사적으로 보는 눈을 길러야 해요. 우리는 멀게는 임진왜란부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고서도 ‘한 사회를 지탱해주는 가치가 정의이고, 정의가 무너지면 망한다’는 걸 깨닫지 못했어요. 그러다 4·19 때 독재정권에 맞서 먼저 피흘린 사람들은 청계천 거지들과 학생들이었고, 애들이 정의를 바로 세우려던 걸 군홧발로 짓밟고 박정희 군사정권을 탄생시킨 게 어른들이었지요. 유신체제 이후 애들이 끈질기게 감옥도 가고 사형 선고도 받고 그러다 문민정권이 들어서나 싶었는데, 4·19를 짓밟은 자의 딸을 다시 대통령으로 만든 게 이 나라 어른 세대예요.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씨랜드 화재 같은 인재는 세월호 침몰과 마찬가지로 ‘정의가 무너진 사회’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참사예요. 참사가 일어났을 때 수사를 통해 원인을 밝혀야죠. 하지만 국민적 차원에서는 참사를 역사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해요. 씨랜드 참사 때, 컨테이너 건물에서 유치원생들이 타 죽었는데도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걸 깨닫지 못했어요. 그 피해를 이번에 다시 아이들이 입은 거예요.”
-결국 정의 없는 사회가 아이들을 죽였다는 뜻인데, 그런 사회를 만든 책임은 누구한테 있는 건가요?
“당연히 경제성장을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으로 정한 정치·경제·학문·종교·언론 엘리트들의 몫이에요. 이 책임을 우리 모두한테로 돌리면, 언뜻 들으면 맞는 말 같지만 권력집단의 잘못을 교묘히 감추게 돼요. 종교적으로 우리 모두 회개하자고 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이런 문제는 개인적·종교적으로 볼 게 아니라 정치·사회·경제적으로 분석해야 해요.”
-세월호의 무리한 증축과 과적처럼 대형 참사의 원인을 ‘기업의 탐욕’에서 찾기도 하는데요.
“나는 반대해요. 청해진해운을 법적으로 처벌하지 말란 얘기가 아니에요. 철저히 밝혀서 처벌받을 사람은 받아야죠. 다만 권력집단의 네트워크가 부의 편중을 추구하다 보니까 이런 결과가 초래됐다는 걸 알아야 해요. 기업의 무한 이윤추구 경쟁이 문제라고 해버리면, 그 가치를 결정하고 또 그걸 막지 않은 ‘네트워크화된 권력집단’에 책임을 안 묻게 돼요. 정작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교묘히 책임을 회피하게 되는 거예요.”
온 국민이 자책감 느끼고 있지만 ‘모두의 책임’이란 말엔 동의못해 ‘기업 탐욕’ 탓으로 돌리는 것 역시 권력집단의 책임 면하게 하는 꼴
경제성장을 신처럼 떠받들게 한 권력집단이 정의없는 사회 만들고 그 사회가 세월호 등 잇단 참사 불러
정의·불의 구분법 가르치는 종교 정책이 미치는 영향 가르치는 교육 두 기둥 바로 서야 ‘정의 사회’ 가능
유족 고통 함께 슬퍼하는 것 넘어 사회문제로 승화시키는 공감 필요 선거로 함께 공감하고 책임 물어야
-정의가 바로 선 사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종교와 교육은 한 사회에 정의를 세우는 두 기둥이에요.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둘 다 제구실을 못하고 있어요. 종교는 한자로 으뜸 종(宗)에 가르칠 교(敎)예요. 정의와 불의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큰 가르침이에요. 종교에서는 불의를 죄라고 해요. 기독교에서는 죄를 지으면 천국에 못 간다, 불교에서는 극락에 못 간다고 해요. 하지만 박정희 시대부터 교회도 절도 성장과 성공을 신으로 섬겼어요. 지금도 성장·성공에 저항하면 대형 교회, 대형 사찰이 못 되지요.”
-다른 한 기둥인 교육의 문제는 무엇인가요?
“제도교육은 유사 이래로 지금껏 권력의 시녀였어요. 권력자와 엘리트들이 힘을 합쳐 한 사회가 추구해야 할 가치가 뭔지를 선언하는 게 학교교육이에요. 일제 때는 충량한 황국신민이 되는 게 학교교육의 목적이었어요. 이승만 정권 때는 반공, 박정희 정권 때부터는 반공과 경제성장이거든요.”
-한국 사회에서 널리 통용되는 교육의 목표들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자아완성, 인격형성, 인재양성 모두 문제가 있어요. 자아완성이란 원래 나와 가족을 넘어 이웃을 사랑하는 ‘사랑의 완성’인데, 한국에서는 박정희 정권 때 자아완성이라는 개념이 들어왔어요. 그걸 성공으로 착각해요. 학교에서 인격과 정신을 교육하면 안 되고 종교에 맡겨야 해요. 역사적으로 학교의 정신교육은 일제 때 가미카제 특공대를 만들었고, 군사독재 땐 국민교육헌장을 가르쳤어요. 인재양성이라는 건 권력이 부려먹을 수 있는 인재를 키워내는 거예요. 1명의 인재가 10만명을 먹여살린다는 건 거짓말이에요. 10만명이 뼈빠지게 1명을 먹여살리는 거예요.”
-교육 목표가 잘못됐다면 현행 교육정책도 문제가 있을 텐데요?
“서울대 갈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대신 고급 노동자가 될 수 없는 조건의 아이들을 책임지는 직업교육이 최우선시돼야 해요. 법대 가고 의대 가는 시험 잘 보는 아이들, 부잣집 아이들은 국가가 걱정 안 해줘도 알아서 잘살아요. 그런데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어요. 아울러 학교에서는 ‘지적 능력’을 길러주는 교육을 해야 해요. 지적 능력이란 학문할 능력을 뜻하는 게 아니에요. 권력집단의 정책이 자신한테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가릴 수 있는 판단 능력이에요.”
-종교와 교육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의는 어떻게 세울 수 있나요?
“연대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어요. 다만 지난 10년 가까이 이른바 진보 진영, 민주화 진영을 지켜보면 연대가 잘 안 보이긴 했어요. 권력집단은 네트워크화가 잘 돼 있고 말 안 해도 서로 다 알아서 해요. 케이비에스가 굳이 말 안 해도 지방선거에 영향을 덜 끼치도록 세월호 참사를 보도해야 한다는 걸 아는 것과 같아요. 그에 맞서 우리는 네트워크화가 아닌 연대를 해야 해요. 예를 들면 월급을 굉장히 많이 받는 정규직 노동자 집단이 있고 그렇지 못한 비정규직 집단이 있다고 쳐요. 한 사회가 생산한 결과물이 균등하게 돌아가는 걸 공공의 이익이라고 할 때, 연봉이 많은 노동자들이 양보하는 게 연대예요. 권력집단은 자기들끼리 권력다툼을 해도 네트워크만큼은 절대로 안 깨요. 그런데 역사적으로 정의를 갈망하는, 정의가 필요한 세력은 그게 잘 안돼요. 물론 그게 잘 안되니까 신이 필요하겠지요.”
-세월호 참사로 전국민의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이 우려될 정도로 많은 이들이 유족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있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이번 참사를 보며 가슴 아파해요. 다들 타인의 고통을 알아요. 그 고통은 도둑놈도 느끼고 살인자도 느끼고 다 느껴요. 하지만 진정한 공감은 개인적으로 느끼는 타인의 고통을 감정적으로 표출하는 게 아니에요. 그걸 사회적 문제로 승화시켜야 해요. 타인의 아픔에 사회적으로 동참하는 것, 그것이 공감이에요. 마음이야 최종 책임자인 박근혜 대통령은 왜 안 아프고, 유족 앞에서 라면을 먹은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왜 안 아프겠어요. 먼저 회개와 자성을 하고 그걸 사회화해야죠.”
-‘공감의 사회화’ 방법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죠.
“민주주의 사회에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 책임을 묻는 방법은 선거예요.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경제를 안다고 해서 유권자들이 엄청 찍어줬잖아요. 그 결과가 이거예요. 경상도는 경상도당, 전라도는 전라도당, 충청도는 충청도당 공천만 받으면 막대기를 갖다놔도 뽑아줘요. 이건 정의가 없는 세상이에요. 무엇이 정의인지 가르치는 종교도 없고, 무엇이 자기한테 유리한지 불리한지 가르쳐주는 교육도 없는 사회예요. 나는 교회에서 설교할 때 표 한번 잘못 찍으면 지옥 간다고 말한 적도 있어요.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이시거든요.”
거창/글·사진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