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복지와 경제 민주화 담론은 완전히 길을 잘못 들었다. 비용과 책임은 뒤로한 채 누구에게 얼마나 더 주느냐를 놓고 다투고 있다."
송호근(56) 서울대 교수가 우리 사회에 시비를 거는 책을 냈다. '이분법 사회를 넘어서'(다산북스). 고질적인 소통 장애 문제와 함께 대선 최대 이슈인 복지와 경제 민주화를 집중 거론했다. 지난 3일 인터뷰 중간 중간 "이렇게 말하면 비난이 쏟아지겠지만"이라고 하면서도 민감한 현안에 대한 의견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복지 담론이 길을 잘못 들었다고 했는데.
"좌파는 보편적 복지, 우파는 선별적 복지를 말한다. 하지만 출발점이 틀렸다. 과거엔 복지가 기피 대상이었다. 빈곤과 무능력의 표시라 여겼으니까. 이젠 권리로 인식한다. 맞는 흐름이다. 하지만 복지에는 책임과 비용 부담이 따른다. 둘째, 우리 복지제도는 처음부터 경쟁력 있는 사람을 보호하는 데서 출발해서 없는 사람으로 가는 역진적 구조로 설계됐다. 복지 재정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지금 담론은 핵심인 재정 문제는 밀려나고 '없는 사람에게 어떻게 주느냐'로 논의되고 있다. 셋째, 1950~60년대 복지국가 개념이 생겨났을 때 그것은 기업 경쟁력,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 수단이었다. 복지를 경제성장 엔진으로 연결하지 않은 무상복지론은 위험하다."
―'일자리 정치'를 열쇠로 꼽았다.
"우리 복지제도, 특히 사회보험은 일자리를 전제로 한다. 고용 없으면 복지도 없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수혜 프로그램 다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난개발이다. 국민은 기대감에 들뜨고 동원된다. 이래선 곤란하다. 정치권은 '복지=기업경쟁력 강화=고용 안정' 등식을 실현하는 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 고용창출 주역은 정부가 아닌 기업이다. 일자리 만들기는 대자본 성장정책과 맞물릴 수밖에 없다. 독일과 스웨덴의 경우 자본에 자유를 보장하되 일자리 창출과 세금(복지비용)을 부담시키는 '경쟁적 복지체제'로 위기를 돌파했다."
―재벌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경제 민주화의 핵심이 거대자본의 과잉 권력을 통제하는 것이다. 재벌은 해체할 게 아니라 활용해야 한다. 경제성장의 견인차이자 일자리 창출의 주역이 되게 해야 한다. 대기업은 대외 경쟁력을 높여 세계화 충격을 흡수하는 방화벽을 쌓고 안으로는 노사 타협과 복지를 통해 생산성 향상을 꾀하는 완충기 역할을 해야 한다. 경제 민주화는 이처럼 성장동력을 키워가는 과정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세계화나 신자유주의를 숙명이라고 했는데.
"세계화는 시장개방 촉진→양극화→분배구조 악화를 낳는다. 세계화의 여파를 어떻게 상쇄할지가 복지정책에 달렸다. 오늘날 신자유주의는 '공공의 적'이지만, 신자유주의는 숙명이다. 우리가 세계 흐름을 좌우할 수 없는 한. 나는 신자유주의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고립돼서 살 수 없다.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가 문제다. 신자유주의 비판론자들 이야기에는 공감하지만, 모든 잘못을 몰아 비판할 때는 '그러면 피해갈 능력이 있느냐' 반문하고 싶다."
―소통의 장애물로 진영 논리를 꼽았다.
"좌와 우가 이념적 정통성 우위를 다투는 한 소통은 요원하다. 좌의 이념적 자원은 민주화, 우는 산업화인데 둘 다 성공했다. 그래서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격돌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화는 정치―사회―경제 민주화가 이어져야 한다. 이념적 정통성을 깔고 공론장에 나오면 대화가 안 된다. 그럴 경우엔 결국 심판자는 포퓰리즘이 된다. 현실에 맞는 이야기는 좌우 진영을 떠나 건설적인 합의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
―주요 대선 후보들은 어떤가.
"대선 후보들은 물론, 정치권 전반에 국민이 원하는 바를 거슬러 이야기하는 사람이 안 보인다. 복지도 국민 정서에 얼마나 더 열렬히 호소하느냐에만 집중하고 있다. 누구나 주겠다고만 하지 그것이 안고 있는 문제를 어떻게 풀겠다고 자기 논리를 펴 보이는 사람은 없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당장 대선이 문제인데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라며 덧붙였다. "올해 대선의 키워드는 의심이다. 강한 주장일수록 의심하라. 강한 목소리가 당신과 자녀의 미래를 망칠지 모른다."
책에 추천사를 올린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는 "추천인처럼, 저자보다 왼편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저자와 대화하고 논쟁하길 희망한다"고 썼다.
☞송호근 교수
좌우 진영 모두가 경청하는 사회학자. 서울대 사회학과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국가와 노동시장'을 주제로 박사를 땄다. '세계화와 복지국가'(2001) 등을 썼다. 이번 책은 도발적이면서도 진솔하다. 고교시절 학생회장 선거에서 '이웃 여학교와 교류 증진을 위해 구름다리를 놓겠다'는 공약으로 당선됐지만 대입 낙방의 응징을 당했다는 사연도 털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