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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511-33/12369659

돈오돈오 2013. 12. 31. 01:10

 

http://blog.daum.net/511-33/12369659

 

  <팔정도(八正道,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팔리어 ‘아리요 앗땅기꼬 막고(Ariyo aṭṭhaṅgiko maggo)’, 영어 ‘The Noble eightfold Path’라 해서 팔정도는 반드시 ‘성스럽다, 고귀하다, 숭고하다’라는 뜻의 출세간적(出世間的)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팔리어 “Ariyo-성스러운,  aṭṭhaṅgiko-8지, maggo-길”의 합성어이다.-------


     ※출세간(出世間)이란 불교가 지향하는 최종 목적에 해당하는 것으로 범부 중생들이 사는 일체의 세간적 존재 양태를 벗어난 경지를 가리킨다. 즉, 생멸 변화하는 미혹한 세계를 벗어나 해탈 경계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팔정도는 원시불교의 경전인 <아함경(阿含經)>에 제시된 근본교리 가운데 하나로서 사성제(四聖諦) 중의 하나인 도성제(道聖諦)의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하는 것이자, 중도(中道)를 실천하는 방법이 바로 팔정도이다.  

   <초전법륜경(初轉法輪經)>에서 말했듯이, 중도가 곧 팔정도이고, 팔정도를 통해서만 궁극적으로 열반은 성취된다. 그리고 열반은 중도에 대한 이해로서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다.

   이처럼 ‘중도를 지켜라’는 말은 “어느 것에도 치우치지 말라”는 이론적 의미로 보이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팔정도를 실천하라’는 말이 내포돼 있다. 중도는 팔정도의 실천이며, 이는 곧 올바르게 살아가는 실천의 길이다.

   따라서 중생이 고통의 원인인 탐(貪) ‧ 진(瞋) ‧ 치(痴)의 번뇌를 제거하고, 열반 ‧ 해탈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실천 수행해야 하는 여덟 가지 실천 항목 혹은 여덟 가지 길 또는 그 방법을 말한다.

   팔성도(八聖道), 팔정도분(八正道分), 팔지성도(八支聖道), 팔성도지(八聖道支)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며, 모두 여덟 개 항목으로 이루어진 성스러운 도(道)라는 의미이다. 그 여덟 가지 항목은 아래와 같다.

   

   ① 정견(正見) - 올바로 보는 것.

   ② 정사(正思) - 올바로 생각하는 것.

   ③ 정어(正語) - 올바로 말하는 것.

   ④ 정업(正業) - 올바로 행동하는 것.

   ⑤ 정명(正命) - 올바로 목숨을 유지하는 것.

   ⑥ 정정진(正精進) - 올바로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

   ⑦ 정념(正念) - 올바로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

   ⑧ 정정(正定) - 올바로 마음을 안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여덟 가지는 단계적인 것이 아니고 상호관련성 속에서 동시통합적(同時統合的)으로 이루어지며, 불교적 이상세계에 이른 사람의 삶은 이 여덟 가지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볼 때 불교의 교육목표이기도 하다. 따라서 불교를 믿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먼저 이 팔정도에 의해 수행하고 생활하도록 해야 한다.

   팔리어에서 길(道)은 막고(maggo)라는 단수형으로 표시돼 있는데, 이것은 여덟 개의 길이 전체로서 하나를 이루고 있으며, 또한 각각의 길은 나머지 일곱을 포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여덟 개의 길 가운데 어느 하나가 실천되면 다른 일곱 개의 길이 그 하나에 포함돼서 동시에 행해지는 서로 포섭하는 관계(相攝關係)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팔정도의 영어 번역어도 ‘Noble Eightfold Path’라고 해서 길(path)을 복수가 아닌 단수로 표현하고 있으며, 여덟도 단순한 여덟(eight)이 아닌 팔중(八重, eightfold)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팔정도에서 정(正)자에 해당하는 Samma는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아는 알아차림, 혹은 바르다는 뜻이지만,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를 뜻하기도 하며, 이 정(正)에는 세 가지 의미가 포함돼 있다.


   첫째 진실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흐릿한 생각으로 현상을 잘못 보는 망령됨을 떠난 명석하고 여실(如實)함을 뜻한다.

   둘째 전도(顚倒)를 떠나는 일이다. 전도란 관찰과 판단에 임해서 그 순서가 엇바뀌고 진상을 놓치는 일이다. 대(大)와 소(小)를 거꾸로 아는 것, 미(美)와 추(醜)를 잘못 판단하는 것,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을 마치 영원불변한 듯 착각하는 것 등의 4전도가 있다.


     • 상전도(常顚倒)---무상한 존재를 영원한 것인 양 잘못 생각하는 것.

     • 낙전도(樂顚倒)---고(苦)라고 보아야 할 인생을 즐거운 것으로 잘못 생각하는 것.

     • 정전도(淨顚倒)---부정한 인간 존재를 청정한 것인 듯 잘못 생각하는 것.

     • 아전도(我顚倒)---무아인 존재를 자아가 있는 것처럼 잘못 생각하는 것.


   셋째 극단을 떠나는 일이다. 즉, 중도에 설 때 바른 실천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팔정도는 욕락과 고행 등의 극단을 떠난 중도(中道)이며, 올바른 깨침으로 인도하기 위한 가장 합리적이고 올바른 방법이다. 이 팔정도는 중정(中正) ‧ 중도(中道)의 완전한 수행법이므로 정도(正道)라 하고, 8종으로 나누었으므로 지(支), 또는 분(分)이라 한다. 그 하나하나를 보면 다음과 같다.


  (1) 정견(正見, Samma ditthi) = 바로 봄

   정견이란 바른 견해로서 불교의 바른 세계관과 인생관이라 할 수 있고, 사성제(四聖諦)를 바로 아는 지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정견은 팔정도의 기체(基體)로서 나머지 일곱 가지 정도의 기초가 된다. 즉, 정견으로부터 바른 행위가 흘러나오고, 바른 생활태도가 선택되며, 바른 수행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이 계(戒)를 강조하는 정어, 정업, 정명을 앞에 내세우지 않고, 혜(慧)에 해당되는 정견을 가장 먼저 말씀하신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가 우선돼야 하겠기 때문이다. 즉,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려는 자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태도를 가진다면 그 다음 단계로 나아 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2) 정사(正思, Samma sankappa) = 올바른 생각

   정사유(正思惟)라고도 한다. 몸과 말에 의한 행위를 하기 전의 바른 생각, 바른 의사, 바른 결의, 바른 마음가짐 등 바른 의업(意業)을 가리킨다. 즉, 탐욕스러운 생각, 성내는 생각, 남을 해치려는 생각을 가지지 않고, 온화한 마음, 자비스러운 마음, 청정한 마음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일상생활에 있어서 바깥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부딪치는 모든 문제와 갈등의 원인을 내 안에서 찾고, 나의 삶을 바로 세우고, 내 마음을 정화하고, 이기적인 자기중심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주위에 모든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생각하는 것이 정사유이다. 따라서 출가자라면 출가자다운 유화(柔和:부드러운 조화)와 자비와 충정의 마음으로 사유(思惟)하는 일이다.


  (3) 정어(正語, Samma vaca) = 올바른 말  

   바른 어업(語業), 즉 정사유 뒤에 생기는 바른 언어적 행위로서 바른 말을 하는 것이며, 거짓말[妄語], 이간시키는 말[兩說], 나쁜 말, 욕하는 말[惡口], 꾸며대는 말, 속이는 말[綺語]을 하지 않고, 진실하고 남을 사랑하며, 융화시키는 유익한 말,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말, 성실한 말, 필요한 말을 하는 것이다. 당나라시대 무착(無着)스님의 게송에,


     성 안 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面上無瞋供養具),

     부드러운 말 한 마디가 미묘한 향이로다(口裏無瞋吐妙香).


라는 말과 같이 부드러운 말 한 마디가 남을 위하는 공양이요, 사회를 부드럽게 하는 향기가 된다.

 


  (4) 정업(正業, Samma kammanta) = 올바른 행위

   정사유 뒤에 생기는 바른 신체적 행위, 바른 행동이 정업(正業)이다. 원래 업이란 말은 신(身), 구(口), 의(意)의 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모든 행위의 원인이 되며, 그에 따라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란 말이다. 헌데 의업(意業)으로서의 정사(正思)와 구업(口業)으로서의 정어(正語)가 이미 앞에 나왔기 때문에 여기에서의 정업이란 주로 신업(身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바른 행위란 바로 몸의 행동(身業)을 바르게 함을 가리키는 말로서, 살생, 도둑질, 음란한 짓을 하지 말고, 다른 존재들의 생명을 애호하고, 곤궁한 자에게 시여자선(施與慈善:자비로 베풂)하며, 술, 담배, 마약과 같은 중독성 물질을 복용하거나 보관하지 않는 청정한 생활을 하는 것이 바로 정업, 즉 바른 행위이다.

   

  (5) 정명(正命, Samma ajiva) = 올바른 직업

   그릇된 생계수단을 버리고 바른 생계수단으로 살아가기, 바른 직업에 의해 바르게 생활하는 것, 정당한 방법으로 의식주를 구하는 것이다. 도박이나 도둑질, 남을 속이는 일, 바가지를 씌우는 등의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서 생활하면 안 된다. 그리고 출가 수행자의 경우에는 재가 신도의 바른 신앙에서 우러나는 보시를 받아 생활하는 것이다.

   또한 일상생활을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 정명이기도 하다. 수면 ‧ 식사 ‧ 업무 ‧ 운동 ‧ 휴식 등에서 규칙적인 생활을 함으로써 건강이 증진되고, 일의 능률도 향상되며, 경제생활과 가정생활이 건전하게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6) 정정진(正精進, Samma vayama) = 올바른 노력

   정근(正勤)이라고도 하며, 용기를 가지고 바르게 노력하는 것, 이상을 향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이른다. 종교 ‧ 윤리 ‧ 정치 ‧ 경제 ‧ 건강의 모든 면에서 선법(善法)을 더욱 자라게 하고, 악법(惡法)을 멀리 여의려고 부지런히 수행하는 것으로, 바로 사정근(四正勤)을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정근은 아래 네 가지이다.


      • 이미 생긴 선은 더욱 자라도록 노력하고(隨護斷),

      • 아직 생기지 않은 선은 생기도록 노력하며(修斷),

      • 이미 생긴 악은 끊도록 노력하고(斷斷),

      • 아직 생기지 않은 악은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律儀斷).


  (7) 정념(正念, Samma sati) = 올바른 정신

   사념(邪念)을 버린 올바른 마음챙김(mindfulness)과 올바른 알아차림(awareness)으로 현재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물질적 현상이나 정신적 현상을 있는 그대로 직관하는 마음의 행위 혹은 마음의 작용(심소/心所)을 말한다. 즉, 자기 자신이나 주변의 것을 올바르게 알아차려서 탐(貪) ‧ 진(瞋) ‧ 치(痴) 3독심에 휘둘리지 않고, 항상 깨어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이른다. 그것은 곧 바른 의식을 가지고 이상과 목적을 언제나 잊지 않는 일이고, 사념처관(四念處觀)을 확립하는 일이다.


    • 마음은 늘 대상에 따라 변화하고 생멸하는 무상한 것이라는 제법무상(諸行無常)의 진리를 알아차리는 것. - 심념처관(心念處觀).

    • 자아라고 할 실체가 없고, 자아가 없으므로 소유도 없다는 진리를 파악하는 것, 즉 제법무아(諸法無我)의 진리를 알아차리는 것. - 법념처관(法念處觀).

    • 모든 것은 괴롭다는 일체개고(一切皆苦)의 진리를 알아차리는 것, 즉 자녀 ‧ 재물 등이 즐겁다고 느껴지는 것들이 실은 즐거움이 아니라 모든 것은 불완전하며 고통[苦]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 - 수념처관(受念處觀).

    • 이 몸은 부정하다(身不淨)는 것을 알아차리고, 몸에서 일어나는 탐욕을 극복하고 맑은 정신으로 세상을 살아가고는 것. - 신념처관(身念處觀).


  (8) 정정(正定) = 바른 집중(正定, Samma samadhi)

   산란한 생각을 여의고, 마음을 가라앉혀 고요하고 평정되게 바른 정신 집중을 하는 것, 즉 마음을 한 점에 집중해서 정신통일을 하는 삼매(三昧) 혹은 선정(禪定)을 가리킨다. 정(定, samadhi)을 닦는 구체적인 방법이 선(禪, dhyana)이기 때문에 이를 선정(禪定)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이 산란하다는 말은 번뇌가 많다는 말이기도 하므로 정정은 번뇌를 소멸시켜 열반으로 향하는 것을 의미한다.  

   깊은 선정은 일반인으로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일상생활에서도 마음을 안정시키고 정신을 집중하는 것은 바른 지혜를 얻거나 지혜를 적절하게 활용하기 위해 필요하다. 공부를 하든, 운동을 하든, 심지어 들에 나가 일을 해도 정신집중이 안 되고, 마음이 산란하면 능률이 오르지 않고 발전이 없다.

  

 

   이상의 팔정도야말로 실천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깨달음이나 해탈 ‧ 열반의 실현을 위해서 반드시 닦아야할 덕목이다. 그리고 팔정도는 순서대로 실천해야 하다. 정견을 닦아야 정사가 생기고, 정사를 닦아야 정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도 마찬가지이다.

   팔정도의 마지막 목표는 정정(正定)이다. 팔정도의 앞 7항목은 모두 정정을 이루기 위한 준비단계이다. 정정을 닦아야 지혜(prajna)를 얻게 되고, 지혜를 가짐으로써 번뇌를 털어버리고 열반을 성취할 수 있게 된다.

   팔정도는 여덟 가지 항목이지만, 이것은 하나의 성도를 이루는 각 부분이며, 여덟 가지는 일체로서 유기적으로 결합돼 있기 때문에 별개의 것이 아니다. 또한 팔정도를 계(戒) ‧ 정(定) ‧ 혜(慧) 삼학과 관계 지어 보면,


    정견 ‧ 정사유---→ 혜학,

    정어 ‧ 정업 ‧ 정명---→ 계학,

    정정진---→ 삼학에 공통되고,

    정념 ‧ 정정---→ 정학.


   또 팔정도를 정진과 수행의 측면에서 분류를 하면,


    정견---바르게 보는 것,

    정사 ‧ 정어 ‧ 정업---바른 행위,

    정명---바른 생활,

    정정진 ‧ 정념 ‧ 정정---바른 수행으로 분류할 수 있다.

 

   곧 팔정도는 사성제 ‧ 12연기와 함께 불교의 기본적인 근본 교의가 되는 것이고, 중생을 미혹의 세계인 이곳(차안)에서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으로 건네주는 힘을 가지고 있어 배(船)나 뗏목(筏)에 비유되기도 한다.

 

------------------------------------------------성불하십시요    작성자   이덕호(아미산) 

  *이 글을 작성함에 있어서 많은 분의 글을 참조하고 인용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스크랲 해 가시는 분은 출처를 분명히 밝히며 이용해 주세요. 아니면 저적권법에 저촉됩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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