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아이들의 멘토.

돈오돈오 2012. 12. 14. 10:45

http://m.chosun.com/article.html?contid=2012121302970

여섯 살 진석이(가명)는 주말엔 엄마 배 위에서만 잠을 잔다. 캄보디아 엄마는 주 중엔 공장에서 악착같이 일하며 돈을 모은다. 아들을 잘 키우기 위해서라지만, 그 아들은 주말에만 만날 수 있는 엄마 앞에서 다시 '아기'가 되는 것이다. 얼굴빛이 유난히 흰 요한(5)이는 또래보다 체격도 훌쩍 크지만 말을 잘 못한다. 러시아 엄마를 따라 러시아와 한국을 오가다 보니, 두 나라 말을 모두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운영 햇수로 올해 10년째를 맞은 서울 성북동 베들레헴 어린이집엔 진석이나 요한이처럼 저마다 사연을 가진 아이 20여명이 생활한다. 베트남·중국·태국·필리핀·러시아·몽골·캄보디아·우즈베키스탄 등 다양한 국적의 엄마나 부모를 둔 아이들이다. 이곳을 맡은 지 4년이 된 원장 우영숙(57·살레시오 수녀회) 마르타 수녀는 "대부분 가정 폭력 등의 문제로 이혼했거나 혼자가 된 이주 결혼 여성의 아이"라고 했다.

일자리 찾아주고 월세방 잡아주고

12일 오후, 마르타 수녀가 어린이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이들이 "수녀님~!" 하고 부르며 달려와 와락 안겼다. 20여명 중 다섯명은 주말에만 엄마집으로 가고, 나머지 아이들은 '출퇴근'을 한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이곳은 민간 재원으로 초등학교 입학 전의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돌보는 몇 안 되는 전문기관 중 하나다. 일반 교육과정뿐 아니라, 언어·심리·미술 치료 등을 통해 아이들이 한국 사회와 학교에 적응하도록 보살핀다. 아이들은 늘 사랑이 고프다. 어른만 보면 "엄마"라고 부르는 아이도 있다.

이 어린이집은 필리핀 출신 미켈라 산티아고 수녀(80)가 2003년 보문동 연립주택에서 동남아 출신 여성들의 아기 8명을 돌봐주며 시작됐다. 살레시오 수녀회 소속인 산티아고 수녀는 1957년 한국에 온 뒤 6·25전쟁 고아, 근로 여성, 동남아 이주 근로자를 돌보며 평생을 보냈다. 노(老)수녀가 은퇴한 뒤, 후원자들 도움으로 성북동으로 이사한 베들레헴 어린이집은 2005년 정식인가를 받았다.

마르타 수녀는 아이뿐 아니라, 아이 엄마들도 돌본다. 일자리와 월세방을 알아봐 주는 것도 수녀님 몫이다. 수녀는 "방금도 위내시경 검사를 받는 한 아이 엄마 보호자로 병원에 다녀왔다"며 웃었다.

"동대문 봉제공장에 일자리를 알아봐 줬던 캄보디아 엄마인데, 약속시각에 한참 늦더라고요. 지하철을 거꾸로 탔다네요. 한국서 10년을 산 사람도 그러니, 매일이 맘 졸일 일로 한가득이죠." 마르타 수녀는 가능하면 엄마들이 자기 힘으로 일해서, 어린이집 근처에 월세방을 얻도록 한다. "아이들이 엄마와 같이 살아야 해요. 교육은 우리가 최선을 다하지만, 엄마의 사랑은 대신할 수 없잖아요."

"영특한 아이들, 필요한 건 멘토"

마르타 수녀는 어린이집을 졸업한 뒤 학교에 진학하는 아이들이 걱정이다. 가톨릭여성연합회의 도움으로 인근에 전셋집을 마련해 방과후 학교 성격의 '마고네 집'을 열었지만 늘 마음이 쓰인다. "아이들이 크면서 한국말도 못하고 가난한 엄마를 미워하고 무시하는 경우가 많아요. 엄마가 한국어에 서툴러 공부를 봐 주지 못하니 학업에 흥미를 쉽게 잃죠. 정말 영특한 아이가 많은데…."

바깥이 어둑어둑해졌다. 공장에서 퇴근한 엄마들이 한 명씩 와서는 아이들을 데려갔다. 마르타 수녀와 교사들은 "요즘은 이런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을 조금 더 많이 보살필 수 있기를, 이 아이들을 중학교까지만이라도 후원하며 버팀목이 돼 줄 '멘토'가 많이 나타나길 기도한다"고 했다.

 

 

서울 성북동 베들레헴 어린이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