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음악가의 삶
한 음악가의 삶
누구나 그랬듯, 열여섯 살 이 소녀의 사춘기도 스트레스로 가득했다. 연주 일정은 빡빡했고, 대학수학능력시험(SAT)을 준비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매니저를 찾아가 "연주 없이 꼭 한 달만 쉴 수 있게 해달라"고 하소연했다. 스케줄을 살피던 매니저가 말했다. "지금 일정대로라면 2년 뒤에는 한 달간 쉴 수 있겠네." 소녀는 2년을 기다려서 한 달 쉬었고, 쉬는 동안 원 없이 잠만 잤다. 그때의 휴식이 사실상 마지막이었다. 지금도 그는 한 해 평균 100여회의 공연을 갖는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리는 사라 장(31)이 데뷔 음반을 발표한 지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만 열 살 고사리손으로 4분의 1 크기 미니 바이올린을 잡고 크라이슬러와 사라사테의 소품을 녹음한 것이 지난 1991년. 그는 "함께 작업했던 프로듀서가 회사를 옮기는 바람에 녹음해놓고 음반 출시까지 1년여간 기다려야 했다"고 했다.
이듬해 세계적 음반사 EMI를 통해 발표한 그의 첫 음반 '데뷔'는 빌보드 클래식 차트 상위권에 오르며 '바이올린 신동'의 출현을 알렸다. 사라 장은 "최근엔 싸이 같은 한국 대중음악 스타도 미국 빌보드 차트에 오르고, 유럽에서도 사랑받고 있어 한국계로서 무척 자랑스럽다"고 했다. 사라 장은 레이디 가가와 비욘세 같은 팝스타의 공연도 즐겨본다.
사라 장의 데뷔 음반은 EMI 역사상 최연소 바이올리니스트 녹음 기록. 같은 해 그는 미국서 활동하는 젊은 음악 유망주에게 수여하는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 상'을 받았다. 그는 "당시엔 음악가가 무엇인지 진심으로 이해하기엔 너무 어렸다. 그저 뉴욕에서 베를린과 빈으로 여행하면서 연주하는 것이 재미있었다"고 기억했다.
조숙(早熟)에는 성장통(痛)이 따르게 마련. 그에게 성장통을 안겨준 건 "공장처럼 거대한 세계의 음악 산업"이었다. "바보처럼 연습만 하고 무대 위에서 연주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어요. 하루에도 수백통씩 이메일이 날아오고 지루한 회의가 이어지는 게 너무나 싫고 재미없었죠."
데뷔 음반 발표 20주년을 맞아 그가 녹음한 음반 19장과 DVD 1장을 담은 박스 세트가 출시된다. 12월 1일 광주문화예술회관부터 16일 서울 예술의전당까지 8차례에 걸쳐 전국 리사이틀도 가질 예정. 슬럼프 탈출법에 대한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3년 뒤까지 연주 스케줄이 잡혀 있어 실은 슬럼프에 빠질 겨를도 없어요. 그저 어제의 연주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바랄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