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해야 하는 세상
의사 A씨(43세)는 최근 보건소에 의료기관 개설허가증을 제출했다가 거절당했다. 이유는 그가 강제추행으로 유죄를 받은 이력 때문. 앞으로 10년간 의료기관에 취업도, 개설도 못하는 사실상 의사로서는 사형선고를 받은 셈이다.
지난해 8월 2일부터 아동청소년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의료인의 취업, 개설 제한 관련 규정이 시행됐다는 이야기를 어렴풋이 듣기는 했지만, 자신이 성범죄를 저지른 시기는 법 시행 1년 전이기 때문에 관련이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무엇보다 성범죄에 대해 너무나 안이하게 생각했던 자신이 답답했다. 성범죄는 보통 흉악범들이나 저지르는 강력범죄라고 생각했고 취업·개설 제한 등은 흉폭한 성범죄만 해당되는 줄 알았다.
정식재판을 받지 않고 약식명령을 아무런 고민없이 받아들인 것이 너무나 바보같은 일이었다고 가슴을 쳤다. 평범한 개원의였던 A씨에게 지난 1년 동안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2011년 A씨는 이혼을 결정하고 울적한 마음을 한동안 술로 달랬다. 이혼 후 얼마 간은 결혼생활을 잘해내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밀려왔고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외로움에도 시달렸다. 2011년초쯤 하루종일 환자를 보고난 후 몰려오는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병원 근처 술집인 'OO바'를 찾았다.
OO바에서 A씨는 인기있는 단골로 통했다. A씨는 손님이 없어 어려움을 겪던 OO바 매상의 3분의 1을 올려주는 고마운 손님이었다. 자연스럽게 사장과 종업원들과도 친해졌다. 그때 C씨를 만났다. 형편이 어려워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던 그녀가 A씨는 애처로워 보였다.
그는 자연스럽게 바에 오면 C씨를 찾았고 그녀도 그런 A씨가 싫지는 않는 듯 했다. 두 사람은 곧이어 가게 밖에서도 만나는 사이가 됐다. 밥도 같이 먹었고 고민도 서로 얘기했다. 그러던 어느날 C씨가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그녀의 어려운 사정을 모르지 않았던 A씨는 곧장 180만원을 빌려줬다. 이후 C씨의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고, 그녀는 돈을 갚지 못하자 A씨가 혼자 사는 아파트에서 가사도우미 역할이라도 하겠다고 자청했다. A씨는 반드시 돈을 받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그녀의 마음이 편해진다면 하는 마음으로 제안을 승낙했다.
가끔 집을 방문해 가사일을 했지만 혼자 사는 남자 집에서 해야할 일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던 2011년 10월경 평소 C씨에게 호감이 있던 A씨는 집안 일을 하고 있던 C씨를 뒤에서 껴안고 키스를 하려했다.그녀는 A씨를 뿌리쳤다. 서로 호감이 있다고 생각했던 A씨는 당황했지만 그녀의 거절의사를 받아들였다.
어색해진 둘은 그후 몇 번 다툼이 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날 C씨가 자신을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했다는 사실을 통보받았다. A씨는 당황스러웠다. C씨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은 점은 잘못이지만 강제추행으로 고소한 C씨가 야속했다. 심한 배신감을 느낀 A씨는 C씨와 합의하고 싶은 생각이 싹달아났다.
A씨는 2012년 11월경 약식명령 벌금 300만원을 깨끗하게 받아들였다. 정식재판을 통해 다투고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빨리 벌금을 물고 잊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정식재판을 청구하지 않고 약식명령을 받아들인 결정은 앞길이 창창한 40대 초반인 의사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300만원 벌금만 내면 모든게 해결될 것이라고 여겼던 자신의 안일했던 생각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당시 A씨의 판단은 일면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다. 아동청소년 보호법이 의료인에게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2012년 8월 2일. 강제추행은 그보다 10개월 전인 2011년 10월이다. 법이 시행되기 전에 저지른 행위로 자신을 처벌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치 못했다.
A씨는 기자와 통화에서 "도대체 법이 적용되기 전의 행동을 소급적용하는 경우가 어디있느냐"고 호소했다. 그는 "법적으로 문제삼아 볼 생각이다. 물론 내가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강제추행범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것이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법이 의료인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누려야 하는 죄형법정주의가 왜 나 한테는 적용되지는 않는지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따져 묻고 싶다"고 말했다.
현행 아청법(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56조는 의료인의 취업이 제한되는 성범죄 적용 시기를 2012년 8월 2일 이후 아동·청소년대상 성범죄 또는 성인대상 성범죄로 형 또는 치료감호를 선고받아 확정된 경우로 규정하고 있다. A씨처럼 법적용 이전에 저지른 행위로 소급적용을 받는 경우가 생길 우려가 있는 것이다.
특히 취업·개설 제한 대상자의 경우 지난해 8월 2일부터 적용된 의료인과 가정방문 학습지 교사에 한해서만 형확정을 기준으로 법을 적용받고 있다. 2006년 아청법 시행시기부터 취업·개설제한을 받는 교사나 유치원 교사 등 다른 대상자들은 확정판결이 아닌 법시행 이후 행위 여부를 시점으로 취업제한 규정을 적용받고 있어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에 따라 2012년 8월 2일자로 아동·청소년과 성인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질러 확정판결을 받은 의료인의 취업과 의료기관 개설이 10년간 제한됐다.
하지만 정작 제한 대상자인 의사들은 성범죄하면 흉폭한 강간범이나 강간폭행 등을 떠올리며 나의 일이 아니라고 여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당사자는 별일 아니라고 여겼던 행위가 사실상 의사로서의 생명을 끝낼 수 있는 취업·개설 제한을 받는 성범죄로 판결받은 사례를 살펴봤다.
술집 종업원이라서 만졌다...?
술집 종업원 혹은 유흥업소 종사자 등에 대해서는 허락없이 몸을 만져도 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가진 경우가 많다. A씨의 경우가 그랬다. A씨는 2001년 지인이 경영하는 모식당에서 여자 종업원인 B·C를 불러 노래를 부르고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한 A씨는 노래를 부러던 중 B씨를 뒤에서 껴안고 블루스를 추면서 C씨의 가슴을 만졌다. 이에 격분한 C씨는 A씨를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했고 A씨는 유죄판결을 받았다. 만일 A씨가 의사였고 2012년 8월 2일 이후 A씨의 형이 확정됐다면 A씨는 형 확정일로부터 10년간 의료기관에 취업할 수도 없고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게 된다.
의사 회원인 D씨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가끔 노래방에서 종업원을 불러 블루스를 추기도 하는데 자칫 강제추행으로 판결받을 경우 의사생활을 접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노래방에 가지 않는다"면서 "아청법 시행 이후 술만(?) 마신다"고 말했다.
'러브샷' 강권했다가 낭패
ㄱ씨는 친분이 있는 지인 ㄴ씨가 운영하는 골프장에 갔다가 라운딩이 끝난 후 여 종업원들과 술을 마시러 갔다. 술집에서 이른다 '러브샷'을 제안했고 여 종업원들이 거부의사를 밝혔지만 러브샷을 강권했다.
성적 수취심을 느낀 여종업원은 ㄱ씨를 고소했고 ㄱ씨는 강제추행이 인정돼 2007년 유죄판결을 받았다. 만일 ㄱ씨가 의사였고 2012년 8월 2일 이후 형을 확정받았다면 여종업원 강제추행으로 의료기관 취업과 개설이 10년간 금지된다. ㄱ씨는 술김에 즐겁자고 러브샷을 강권했을 뿐이었지만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의사 회원인 ㄷ씨는 "가끔 골프를 치러가서 여자 캐디들에게 농담삼아 노래방을 가지고 제안하기도 했던 일을 생각하니 남의 일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골프장에 가서 다시는 캐디들에게 농담을 건내지 않겠다"고 말했다.
난 데이트였는데 당신은 아니라네...
40대 의사 A씨는 평소 호감이 있던 B씨와 단둘이 자신의 집에 있게 됐다. A씨는 B씨도 자신과 같이 호감이 있다고 생각하고 뒤에서 껴안고 키스를 시도했다가 거절당했다. A씨는 B씨의 의사를 존중해 곧바로 그만뒀지만 B씨는 A씨를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하고 A씨는 2012년 11월 유죄를 받았다. 40대 의사인 A씨는 이후 취업과 개설 모두 막히면서 막막한 상황에 빠졌다.
서로 합의아래 성매매했을 뿐인데
ㄱ씨는 아청법 시행이후 성매매를 하다 적발된 경우도 성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간주되는지가 궁금해졌다. 일단 성범죄에 포함될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성매매알선 등 행위에의 처벌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성매매를 한 사람도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구류 또는 과료(科料)에 처한다(제21조)'고 규정하고 있다.
성매매를 성범죄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경찰청은 지난 2011년 여성가족부·보건복지부 등 부처 합동으로 전국 아동·청소년 관련 시설 27만곳 종사자 139만명의 성범죄 경력을 조회하면서 성매매를 성범죄의 유형으로 꼽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성매매를 성범죄로 볼 것인지가 애매한 이유는 아청법에서 취업·개설 제한 대상인 성인대상 성범죄에 대한 개념을 정확히 정의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는 성범죄 관련 법률이라 할 수 있는 성폭력방지 및 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형법 관련 조항 등을 통해 성범죄의 개념을 유추해볼 따름이다.
다만 성폭력 방지 및 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형법 관련 조항 등이 상대방의 동의없이 위력·위계를 사용하는 경우로 한정하고 있어 성매매가 아청법에 따른 성범죄로 간주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성가족부측도 "성인대상 성범죄는 상대방의 동의 없이 위력·위계를 사용해 상대방에게 가하는 성폭행 등의 행위를 의미한다"며 "상대방의 승낙 및 동의에 의한 성매수·윤락·간통·공공장소에서의 스킨십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아청법에 따른 10년 제한 규정 문제는 없나?
아청법에 따른 의료인 등의 취업·개설 제한 규정 등은 제정 당시부터 논란이 있었다. 성범죄 등의 정의가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과 의료인 등에 대한 10년 취업·개설 규정이 이중처벌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 등이 제기됐다.
성범죄의 경중에 상관없이 일괄적으로 무조건 취업·개설 10년 금지를 내리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2012년 8월 2일부터 좋건 싫건 의료인 등이 법의 적용을 받게 됐다는 점이다. 법개정의 필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시행된 법에 따라 피해를 입지 않도록 아청법에 따른 취업·개설 제한 규정을 명확히 알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의사회원은 "자칫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행위들이 10년간 의사활동을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며 "나를 포함해 동료 회원들의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성범죄로 형이 확정된 의료인의 의료기관 취업과 개설을 10년간 제한하는 아청법(아동청소년 성보호법)이 2012년 8월 2일자로 의료기관까지 확대·시행된지 1년여가 흘렀다.
보건복지부가 법시행 1년을 맞아 최근 아청법에 따른 의료인 성범죄 이력조회 의무현황을 파악하고 나서면서 아청법과 관련한 취업·개설 제한 대상, 기준 일시 등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아청법 시행에 따른 취업·개설 제한 등과 관련한 주요사안들을 정리해 봤다.
의료기관의 경우 언제부터 취업자 이력조회, 취업 제한 등의 아청법 규제를 받는 것인가?
아청법에 따른 취업, 개설 제한 규정은 2006년부터 시행됐지만 의료기관의 경우는 2012년 8월 2일부터 적용됐다. 의료기관장은 2012년 8월 2일 이후 취업하는 의료인에 대해 이력조회를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성범죄 이력조회 의무 위반을 하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취업이 제한되는 성범죄 적용 시기는 2012년 8월 2일 이후 아동·청소년대상 성범죄 또는 성인대상 성범죄로 형 또는 치료감호를 선고받아 확정된 경우가 해당된다(제56조). 다만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소지에 따라 벌금을 받은 경우는 제외한다. 취업제한 시작일은 형집행 또는 치료감호의 전부 또는 일부가 종료되거나 집행이 유예·면제된 날부터다.
아청법에 따른 의료인의 의료기관 취업·개설 제한 범위에 성인 대상 성범죄도 들어가나?
아청법에 따른 아동·청소년 관련 성범죄 뿐 아니라 2010년 4월 15일부터 성인대상 성범죄도 취업제한 및 개설제한 범위에 들어갔다. 의료기관의 경우 2012년 8월 2일 이후 법이 적용돼 성인대상 성범죄로 인한 취업제한 적용 시기도 2012년 8월 2일 형이 확정된 경우로 보면 된다.
정리하면 아동·청소년 성범죄뿐 아니라 성인을 포함한 모든 성범죄로 2012년 8월 2일 이후 형이 확정된 의료인은 의료기관 취업제한을 받게 된다.
취업자가 아닌 의료기관 개설자의 경우도 성범죄 확정판결에 따른 개설제한을 받나?
취업이 아닌 의료기관 개설의 경우도 2012년 8월 2일부터 확정판결을 받은 의료인에 한해 적용된다. 다만 의료기관 개설자의 경우 성범죄 이력조회 의무를 개설자 자신에게 지운다는 모순이 생겨 시행령 보완이 이뤄졌다.
의료기관 개설자의 성범죄 이력조회 의무는 2013년 6월 19일 시행령이 발효되면서 개설허가권자인 시·군·구장이나 보건소장에게로 넘어갔다.
의료기관 개설을 할때 자신의 성범죄 이력조회 사실을 신고해야 하나?
아청법에 따르면 취업자의 이력조회 의무는 의료기관장에게 있지만 개설자의 이력조회 의무는 의료기관 개설허가권자인 시·군·구장이나 보건소장에게 위임된 것으로 규정됐다.
취업자에 대한 이력조회의 경우는 취업희망자로부터 이력조회 동의서를 받아야 하지만 개설자는 별도의 동의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위임받은 지자체장이 조회를 할 수 있도록 규정됐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개설자의 경우 이력조회 의무가 지자체장에게 있는 만큼 개설자가 특별히 제출해야 할 것은 없다"고 밝혔다.
2012년 8월 2일 이후 아청법 위반으로 형이 확정된 성범죄자가 의료기관에 취업하고 있거나 의료기관을 개설 중인 경우는 어떻게 되나?
보건복지부 장관은 아청법 위반 취업자를 고용한 의료기관장에게 해당 취업자의 해임을 요구하게 된다. 해임요구를 정당한 사유없이 거부하거나 1개월 이내에 따르지 않으면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아청법 위반 의료인이 의료기관을 개설 운영 중인 경우는 역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개설 의료인에게 의료기관 폐쇄를 요구할 수 있다. 개설 의료인이 정당한 사유없이 폐쇄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1개월 동안 폐쇄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보건복지부는 의료기관 개설허가권자인 자자체장에게 의료기관 폐쇄를 요구하게 된다.
결국 성범죄로 확정판결을 받게 된 의료인은 의료기관 취업도 개설도 못하고 심지어 개설·운영 중인 의료기관을 폐업하거나 취업자의 경우 해임통보를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