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여러 근원적인 문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체코의 작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생의 여러 근원적인 문제들을 깊이 성찰하게 한다. 생이란 가벼움인가 무거움인가, 인간은 육체인가 영혼인가, 삶은 의미인가 무의미인가, 세상은 우연인가 필연인가, 시간은 직선인가 원형인가 등 온갖 생의 심오한 문제를 때론 한없이 무겁게 때론 한없이 가볍게 터치한다. 소련의 체코 침략을 배경으로 토마스, 테레사, 프란츠, 사비나라는 네 주인공이 파란만장하게 전개하는 생의 초상은 한없이 무거우면서도 한편 한없이 가볍기도 하다. 가장 중요한 줄거리는 타고난 지극히 천박하고 비루한 가정환경을 벗어나기를 꿈꾸고 있었던 순진한 시골처녀 테레사는 그녀가 일하는 식당에 우연히 들린 의사 토마스를 만나면서 몇 가지 우연적인 사건들을 운명으로 판단하고 자기 삶을 그에게 모두 내맡기는 것에서 출발한다. 실상 토마스는 테레사의 기대와는 달리 여자를 우표처럼 수집하는 천하의 바람둥이다. 토마스는 처음에는 무력한 테레사에게 단순한 동정을 느끼지만, 점차 참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테레사와 시골에 피신하여 마침내 진정한 사랑을 완성하고 죽는다. 이 소설은 삶이란 자신이 불가항력적으로 처하게 되는 역사적 상황이나 운명적 인연에 따라 지극한 가벼움에서 지극한 무거움으로 반대로 지극한 무거움에서 지극한 가벼움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을 역설한다.
이 작품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마지막 제 7장이다. 삶의 중심이 없이 끝없이 표류해온 두 남녀가 이제 젊은 날의 열정을 다 삭히고 진정한 삶과 사랑을 체득한다. 비록 가난하고 소외된 곳에서 소박하게 살고 있지만, 어느 날 늙은 여자가 늙은 남자를 위해 곱게 치장을 하고 무도장에서 춤을 추고 호텔방에서 하루를 보내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또 하나 특이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테레사와 토마스가 기르는 강아지 카레닌이다. 작가에 의하면 강아지는 아직 낙원에서 추방되지 않는 지복의 삶을 산다. 인간은 직선적(역사적) 시간관을 지니고 있어서 과거의 기억에 지배당해 삶이 늘 낡고 지루하고 고통스럽다. 반면 강아지는 원형적(순환적) 시간관을 가지고 있어서 하루 해가 밝으면 늘 태초의 아침을 맞이한다. 강아지에게는 모든 사물이 날마다 새롭게 다가오기에 어떤 낡음도 지루함도 고통도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의 서두에서 작가는 니체의 '영원 회귀' 사상을 소개한다. 영원 회귀는 모든 것이 그 언젠가는 이미 앞서 체험했던 그대로 반복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영원히 사라져가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우리 삶은 아무런 무게도 없는 하찮은 것이다. 결국 우리 삶 가운데 벌어지는 온갖 우여곡절은 단 일회적이기에 한없이 가벼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수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민음사)
줄거리
이 소설은 토마스, 데레사, 사비나, 프란츠 네 명을 주인공으로 하여 스토리가 전개된다. 이 안에 사랑, 철학, 역사, 정치 등 소설에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이 있다. 이 책은 모두 7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마다 그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1장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 - 토마스, 2장 육체와 영혼 - 데레사, 3장 이해받지 못한 말들 - 사비나와 프란츠, 4장 영혼과 육체 - 데레사, 5장 가벼움과 무거움 - 토마스, 6장 대장정 - 프란츠, 7장 카레닌의 미소에는 창세기 이야기와 더불어 낙원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인데, ‘카레닌’은 데레사가 키우는 개 이름이다.
시골에 출장 온 의사 토마스는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데레사를 만나, 늘 그랬듯 별 생각 없이 프라하에 오면 연락하라면서 전화번호를 건네준다. 육체의 세계에서 영혼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데레사는 그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한다. 데레사는 토마스에 의해 자신의 영혼이 깨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녀는 토마스가 읽고 있던 ‘안나 카레니나’를 손에 들고는 커다란 트렁크를 끌고 갑자기 토마스는 찾아간다. 그는 깜짝 놀라지만 문을 열고 별 생각 없이 그녀를 집으로 들이게 된다.
이로서 데레사는 영혼의 세계로 발을 들이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토마스는 철저히 육체적이었다. 바람둥이 토마스 때문에 그녀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자신이 토마스에게 다른 여자들 중의 한 사람, 다른 몸과, ‘같은 몸’ 일 뿐이라는 생각에 고통스러워하다가 데레사는 토마스를 떠나게 된다.
데레사에 대한 연민을 버리지 못한 토마스가 그녀 곁으로 돌아와 그 자신 내면의 변화가 시작된다. 결국 데레사는 영혼의 세계로 들어오게 되고, 토마스는 가벼운 세계에서 무거운 세계로 이동하게 되는 듯 했다.
소련의 프라하 침공 후 토마스는 데레사와 함께 취리히로 망명을 한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곳에서도 여전히 가벼운 세계를 버리지 못했다. 데레사는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그를 떠나 프라하로 돌아가 버린다. 그는 홀로 남아서, 데레사에 대한 연민을 버리지 못하고 사랑은 길로 들어선다. 마침내 그는 의사라는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데레사를 따라 프라하로 돌아가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는 노동을 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사비나는 자신을 둘러싼 정치·사회적 무거움으로부터 벗어난 자유를 갈망하는 화가이자, 토마스와 프란츠의 연인이다. 체코 출신 미술가로 정치적으로 휘말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그녀는 이 상황을 좋아하지 않았다. 사실 그녀는 모든 체제를 싫어하는 사람이었지만, 체코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반체제 인사가 된다.
그녀는 키치의 세계에서 비 키치의 세계로 갔다가 다시 키치의 세계로 돌아와 그 세계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사비나는 조금 왔다 갔다 하는 인물이었다. 키치는 독일어인데 영어로는 ‘shallow'로 번역 되어 지며, ’얕은, 얄팍한, 피상적’, 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키치는 보이는 것, 보이는 것만 보는 편협한 시선으로 사비나는 그 세계를 싫어한다. 하지만 데레사와 토마스의 죽음을 보고는 그 순간 키치의 세계를 알게 된다. 미술학교에서 비 사실주의 예술은 사회주의에 대한 체제 전복 기도로 간주되던 시절답게 사실주의 그림을 그릴 것을 강요받는다. 그녀는 데레사에게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면서 ‘앞은 파악할 수 있는 거짓이고, 뒤는 이해할 수 없는 진리였지요.“라고 말한다. 자신의 그림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토마스와 데레사의 죽음과 연결된다. 데레사 곁에서 죽은 토마스의 모습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육체주의 토마스가 아닌 지고지순한 영혼의 사랑을 보게 된다.
마지막 인물은 프란츠이다. 사비나를 사랑하게 된 그는 스위스 명문가에서 태어나 엘리트 코스를 밟은 교수로, 인생에 있어 걸릴게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변화에 갈증을 느끼게 된다. 혁명, 투쟁이라는 단어에 피가 끊게 된다. 그러던 중 사비나가 신처럼 나타난 것이다. 소련의 침공을 받아 공산국가 된 드라마틱한 나라에서 온 이 여자는 아주 쿨하고, 삶의 자국이 자신과는 너무도 달랐다. 사비나는 혁명, 시위, 폭력, 체포, 발포 ,죽음, 사상 등이 거침없이 나왔다. 프란츠는 그런 사비나에 대하여 경외하듯이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전혀 다른 두 사람이기 때문에 서로 대화가 잘 되지 않았다. 소통이라는 것은 단어의 논리적인 의미를 이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단어 밑에 깔리는 의미론적 것이 해석되지 않으면 소통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서로 소통의 난맥상을 겪음에도 불구하고, 프란츠는 사비나와 함께 있고 싶어서 부인과 이혼을 한다. 그런데 사비나에게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말하는 순간, 사비나는 그의 곁을 떠나 버린다.
아내에게 모든 것은 주고 집을 나온 프란츠는, 아내와 딸이 없는 시간에 몰래 집에 가서 자신의 물건을 챙겨 나와 도시의 작은 아파트를 세 얻어 들어 간다. 그리고 새 거처에서 새 테이블을 배달받은 순간, 처음으로 자신이 고른 가구 앞에서 비로소 독립적 인간이 됐음을 깨닫게 된다.
프란츠는 캄보디아 민주화 투쟁의 지지 시위를 하기 위해서 캄보디아로 간다. 민주화 투쟁의 지지시위를 하기 위해서였으나, 사실 투쟁의 현장에 있고 싶었던 것이었다. 대학교수로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릴 수 없음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곳에서 깡패의 칼을 맞고 스위스로 돌아와 치료를 받던 중 숨진다.
지금까지 보아왔듯 네 사람은 각자 자신이 머물고 있던 세계에서 갈망하는 세계로, 혹은 원하지 않았더라도 자연스럽게 또 다른 세계로 이르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장에서는 데레사가 키우던 개 ‘카레닌’을 통하여 진정한 행복과 영원회귀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카레닌에게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은 순수한 행복이었다. 그는 천진난만하게 아직도 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진심으로 이에 즐거워했다.’하면서 행복은 영원회귀에서 온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개는 결코 낙원에서 추방된 적이 없다. 카레닌은 영혼과 육체의 이원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혐오감이 무엇인지도 모른다.’에서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선악과를 먹기 전 인간과 지금의 우리를 생각토록 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이 책은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 책이다. 이 책은 사랑이 담긴 소설책이자 철학서이다. 결코 절대 가벼운 책이 아니다. 내가 읽은 것은 ‘밀란 쿤데라’가 말하고자 하는 것의 일부분 밖에 알아내지 못했다. 처음 읽었을 때, 그리고 그 다음 번 다시 읽었을 때가 달랐다. 내가 찾아가는 것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 외에, 안쪽의 깊은 것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성경도 더 읽어야겠고, 톨스토이, 데카르트, 니체, 베토벤, 스탈린에 대하여 더 공부를 해야겠다. 그리고 다시 정리 해 봐야겠다.
‘슬픔이 형식이고 행복이 내용이었다.’는 테레사와 토마스의 사랑에 대한 마지막 이 구절은 삶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넘어선 아름다움을 조금은 볼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온전한 또는 완전한 이원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