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딩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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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IIIIII
이집트, 수메르, 엘람, 바빌로니아, 페니키아, 그리스, 마야, 아스텍 문명 초기의 숫자 표기다. 이 방식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왜 그랬을까? 인간이 이 숫자를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쓰고 있는 표기법(로마자)은 아래와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I II III
IV V VI VII VIII
Ⅸ X XI XII XIII
로마의 숫자를 보면 3단위로 숫자가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3은 Ⅲ이라고 표시하지만 4는 Ⅳ, 9는 Ⅸ라고 표시한다. 이러한 역사적 증거를 토대로 수학자들은 인간이 수를 직접적으로 인지하는 능력이 4를 넘어서지 못한다고 결론내렸다.
이것은 뇌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특징과 한계를 설명해준다. 현대 기억력의 아버지로 불리는 심리학자 헤르만 예빙하우스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학습을 마친 후 20분이 지나면 42퍼센트를 잊어버리고, 1시간 후에는 절반이 넘는 55퍼센트, 1일 후에는 66퍼센트, 2일 후에는 72퍼센트, 6일이 지나면 74퍼센트,31일이 지나면 79퍼센트를 잊어버린다.
아이가 유독 머리가 나빠서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원래 뇌는 잘 잊는다. 그것은 순간 순간마다 새로운 기억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뇌는 기억의 삶과 죽음의 반복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기억이 변한다는 거다.
유년 시절 놀이공원의 사진에다가 일부러 풍선을 든 피에로를 조작해서 넣었다. 그리고 묻는다.
“생각해봐. 정말 그때 피에로가 있었어?”
실험 대상자들 대부분은 그런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고, 그런 경험이 없다고 한 사람도 집에서 생각을 해보고나서 자신이 잘못 기억했으며 그 사진이 맞다고 연락을 했다고 한다.
7~80%의 사람들이 삐에로가 있었다고 대답했고, 그 나머지 사람들도 나중에 전화를 걸어 와 “처음에는 삐에로가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있는 게 맞았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메모리딩 독서놀이를 진행하면서 아이들이 잊어버리거나 기억이 바뀌는 모습은 자주 보게 된다. <엄마 사용법>을 읽은 경희 역시, 메모리딩 노트에 ‘현수엄마는 지금쯤 죽었을 것 같아.’라고 쓰고 엄마에게 “봐봐 책에 나왔잖아.”라고 했지만, 엄마가 죽는 부분을 찾을 수 가 없어서 “아니 안 나온다.”라고 쓰기도 했다.
중요한 정보를 자꾸 잊어버리면 속상하다. 또 그렇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상대방이 다르게 알고 있다면 화가 날 수도 있다. 감정이 상한다는 것은 이미 목적의식을 은연중에 깔고 있다는 말이다. 정말 중요하거나 충격적인 경험이 아닌 정보들은 잊어버리는 게 자연스럽다.
뇌도 사람처럼 움직이는 생물과 같다고 생각하면 뇌의 특성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잊어버리는 것은 다른 것이 태어나면서 죽는 것이고, 변화한다는 것도 강물처럼 뇌의 기억이 흘러가는 것이다.
뇌란 정체돼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수정해 가는 지도와 같다는 말도 있다. 이것은 인간의 본질적인 현상이다. 메모리딩은 메모라는 방식을 통해 기억을 붙들 뿐만 아니라 뇌 자극을 활발히 할 수 있다. 책과 메모가 있으면 메모를 보면서 독서활동을 잘 할 수 있다.
자장면과 작업기억
연구자들에 따르면 기억에는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이 있고 그 사이에 작업기억이 있다고 한다.
예컨대 02-757-8288이라는 자장면집이 있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중국집 전화번호를 모르기 때문에 아이에게 “냉장고에서 중국집 스티커 줘봐”라고 말한다. 그런데 기다리던 자장면은 1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는다. 화가 난 엄마는 아이에게 “냉장고에서 스티커 줘봐”라고 해서 다시 전화를 한다. 이 때 사용되는 기억은 단기기억이다.
그런데 몇 번 자장면을 시켜 먹다 보니 기억에 남는다. 이제는 스티커를 보지 않고도 바로 시켜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이 때 사용되는 기억은 장기기억이다.
엄마는 중국집 전화번호를 기억하기 위해서 다른 말을 만들어 보았다. 8288이라는 중국집 전화번호를 “빨리 배달해서 팔팔 끊는 상태로 먹을 수 있는 집”으로 바꿔서 기억했다. 이 때 사용된 기억은 작업기억이다.
작업기억은 숫자를 뒤집거나 변형시키는 것이다. 아이가 논술문을 쓰거나 수학 문제를 풀거나 할 때, 문제의 방식을 바꾸거나 약간 뒤집거나 살짝 변형시켰을 때 아이는 당황해하며 문제 해결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아이들이 사고해야 하는 문제(수학이나 서술형 논술 등)를 암기해서 푼다. 이런 경우 질문의 방식을“왜 그랬을까요?”에서“왜 그렇지 않았을까요?”로 바꿔버리면 막혀 버린다.
학습능력 중에서 작업기억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 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바뀐 질문에 맞게 사고를 조정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면 작업기억이 어느 정도 채워져 있어야 한다. ***(이해력???)
메모리딩 독서놀이 프로그램은 작업기억을 집중적으로 훈련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한데, 책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단계와 놀이를 두어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게 하였다.
예컨대 어떤 구절이 좋아? 표정이 어떻게 바뀌었어? 하는 질문을 접한 아이는 책의 내용을 떠올리거나 책을 뒤적거리며 작업기억을 활발하게 사용한다. 만약 책이 재미없다고 말한다면 작업기억이 정지한 상태에서 책을 보았기 때문이다.
예2) 코미디 프로의 작업기억 :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앞 코너에서 나왔던 장면이나 유행어가, 코너가 끝난 후에 생각지도 못했던 때 연결이 되면서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청중들이 웃을 수 있는 까닭은 작업기억이 작동했기 때문
작업기억은 일상에서도 자주 활용된다. 예컨대 인기 코미디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를 봐도 앞의 코너(예컨대 ‘아빠와 아들’)이 뒤의 코너(예컨대 ‘감수성’)에 나오는 것도 관객들이나 시청자들이 앞의 부분을 알기 때문에 작업기억을 자극시킨 것이다.
강의를 하거나 발표를 할 때는 준비된 강의안이나 발표문을 기계처럼 읽거나 그대로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단기기억만 활용한 것이다. 내용을 암기해서 강의하더라도 장기기억까지만 활용했다고 할 수 있다. 작업기억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발표(강의)를 하면서 뺄 건 빼고 덧붙일 것은 덧붙이거나 추임새를 넣는 방식으로 피드백에 반응해야 한다.
메모리딩과 앞쪽 뇌(전두엽)
학습능력에서 작업기억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전두엽(앞쪽 뇌) 자극이다. 앞쪽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야 아이의 사고력과 학습능력이 향상된다.
책을 읽을 때는 주로 기억을 담당하는 뒤쪽 뇌(후두엽)으로 정보가 모이는데, 읽었던 내용을 다시 읽거나 이야기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독서의 내용을 끄집어내야만 앞쪽 뇌가 자극된다. 특히 메모리딩의 쓰기 활동이 앞쪽뇌를 자극시킨다. 쓰기라고 하더라도 베껴쓰기나 베껴스기나 다름 없는 제안서, 보고서 등은 앞쪽 뇌에 자극이 별로 안 된다. 글자 몇 개 바꿔서 제출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계획하고 기억하면서 쓰는 전자메일 쓰기, 자서전 쓰기, 일기 쓰기, 논설문 쓰기, 논문 쓰기, 영어로 에세이 쓰기, 유서 써보기 등은 앞쪽 뇌 훈련에 도움이 많이 된다.
가장 큰 자극이 되는 것은 창작을 할 때다. 비평가들이 창작을 하기 어려운 까닭은 창작하는 두뇌는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훈련이기 때문에 작가가 아니더라도 마음을 써서 습작하기 훈련을 하면 앞쪽 뇌 자극이 많이 된다.
메모리딩 독서놀이에서 소개한 마지막 놀이“우리가족 독서신문 놀이”는 앞쪽 뇌를 자극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장치를 두고 있다.
신문 구경하고, 아이템 계획 세우고, 취재하고, 칭찬하기 등은 뇌 중에서도 창작행위에 해당하는 것이고, 창작행위 중에서도 위대한 경험에 해당한다. 위대한 경험을 한 팀의 일원으로서 느끼는 뿌듯함. 이순신 장군의 명랑해전에 참여하는 병사들은 오합지졸일 수 있지만, 위대한 승리를 거둔 병사로서의 자부심이 있다.
뇌는 끊임없이 조정되고 변화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경험을 했느냐이다. 경험을 중심으로 접합부위가 연결되고, 연결되면서 스파크가 일어난다. 경험으로 인한 정보의 자극과 시냅스의 연결이 실질적으로 뇌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생애 첫 10년 동안, 아이의 뇌는 신경접합부가 되기 위해 아동의 초기 경험은 주로 삶의 최초 5년 동안 일어나고, 이때의 경험이 성인이 되어서까지 남아 있게 될 궁극적인 뇌의 배선을 결정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초 5년이 중요하다는 유명한 말은 바로 이런 의미다.
메모리딩 독서놀이 프로그램은 6~9세와 그 가족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만5세 이후지만 뇌가 가장 유연한 시기이기 때문에 부모와 함께 집중적으로 작업기억과 앞쪽 뇌를 자극시키면 아이가 학년이 올라가거나 성인이 되었을 때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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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이 가르쳐준 마음의 기술
사마천은 세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역사서 중 하나인 <사기(史記)>를 썼다. 그 중에서도 백미로 알려진 <사기열전>은 <백이열전>으로부터 시작한다.
백이열전은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 주왕을 정벌했을 때 고죽국의 왕족인 백이와 숙제가 “반역자의 녹은 받고 싶지 않다”고 하고 수양산에서 고사리 따 먹으면서 결국 굶어 죽는다는 슬픈 이야기다. 백이와 대비되는 인물로 도척이 나오는데, 도척은 수천 명을 끌고 다니면서 사람을 쉽게 죽이고 내장을 꺼내 먹을 정도로 잔인한 짓을 일삼은 인물이다.
사마천은 이 대목에서 필생의 질문을 하나 던진다. 백이는 몸을 닦고 수양을 닦아도 단명하고, 도척은 천하의 악질이면서 천수를 누렸을까? 하늘은 있는가, 하늘은 과연 옳은가? 착한 일을 하면 과연 상을 받고 나쁜 일을 하면 벌을 받는가? 그럼 왜 도척은 벌을 안 받았는가.
이것은 사마천 자신의 처지가 반영된 절박한 질문이기도 했다.
당시는 한나라 무제 시절이었는데, 이릉이라는 용맹한 장수가 있었다. 참 불행한 운명을 타고 났다고 할 수밖에 없는 이릉 장군은 한나라 북쪽을 괴롭히던 흉노라는 오랑캐와 싸우다가 적진 깊숙이 들어갔고, 흉노족에게 포위돼 중과부적으로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다.
이를 두고 간신과 호사가 신하들은 이릉을 비난했지만, 사정을 다 알고 있었던 사마천은 이릉의 처지를 간곡히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사마천의 태도에 발끈한 무제는 사마천에게 당시 사형에 버금가는 중형인 궁형(거세형)을 내린다. 사마천이 불명예를 무릅쓰고 목숨을 연명한 까닭은 <사기>를 쓰기 위해서라고 고백했다. <사기열전>의 서두에 던진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사마천이 스스로 마지막 편인 <태사공 자서>에서 답한다. 한 가지 질문을 평생 안고 있었다는 뜻이다.
“옛날 서백(주나라 문왕)은 유리에 갇혔기 때문에 <주역>을 풀이했고, 공자는 진나라와 채나라에서 고난을 겪었기 때문에 <춘추>를 지었으며, 굴원은 쫓겨나는 신세가 되어 <이소>를 지었고, 좌구명은 눈이 멀어 <국어>를 남겼다. 손자는 다리를 잘림으로써 <병법>을 논했고, 여불위는 촉나라로 좌천되어 세상에 <여람(여씨춘추)>를 전했고, 한비는 진나라에 갇혀 <세난>, <고분> 두 편을 남겼다. <시> 300편은 대체로 현인과 성인이 발분하여 지은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마음속에 울분히 맺혀 있는데, 그것을 발산시킬 수 없기 때문에 지나간 일을 서술하여 앞으로 다가올 일을 생각한 것이다.”
- 태사공 자서 (사기열전 마지막 부분)
사마천은 자신의 불행이 착한 자는 복을 받고 악한 자는 벌을 받는 것처럼 단순한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 현실도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게 별로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그저 마음을 다해서 마음을 얻으면 그뿐이다.
체험, 마음의 현장!
2011년의 일이다. 일본에서 처형네 식구가 우리 집에 놀러와 한여름을 보냈는데, 네 살배기 조카 때문에 애간장이 탔다. 조카는 새벽마다 일어나 울었다. 엄마가 달래도 계속 울고, 무슨 수를 써도 울음은 그칠 줄을 몰랐다.
며칠 내내 새벽마다 우는 통에 조카 엄마는 거의 녹초가 되고 말았다. 우리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도 우는 조카가 괴로울 것 같았다. 그날 새벽도 어김없이 우는 조카를 안아주었다. 조카를 안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조카의 마음을 느끼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문득 답답한 마음이 들어서 조카를 안고 창가로 갔다. 창으로 여름 밤공기와 연한 바람이 불었는데, 덕분에 조카의 울음이 조금 잦아드는 듯했다.
그 때 문득 조카가 더워서 더 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부채를 가져다가 열심히 부쳐 주었다. 그때부터 조카는 편안하게 잠들었다. 이 일로 한 동안은 편안한 여름밤을 보낼 수 있었다. 만약 조카의 울음 때문에 시끄럽다는 마음이 강했더라면 아마도 방법을 알아내기 어렵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조카가 되어보기’를 터득하게 되었다.
중소기업청이 주관하는 마이스터고등학생 대상 ‘인성 강의’도 마음의 기술을 써서 효과를 본 사례다. 주로 취업이 확정된 학생들이나 취업을 계획하는 학생들이 직장 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동양고전과 인성을 버무려서 강의하는데, 주제가 주제인 만큼 뭔가 재미난 게 필요했다. 어쩌면 나와 학생들이 평생 한번 만날까말까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강의가 재미 없다면 그 소중한 시간을 버리는 셈이니 여간 아깝지가 않다. 처음에는 연예인 사진과 인기 개그 프로그램의 개인기를 총 동원해서 재미 요소를 담았다. 결과는 참담했다. 강의가 끝나고 함께 식사를 하면서 여론조사를 했더니 학생들은 차갑게 “정말 재미없었고 지루했어요. 잠 참느라 혼났어요!”라는 솔직한 반응을 주었다.
본의 아니게 아이들에게 민폐를 끼쳐서 미안했다. 다음날로 예정된 다른 강의는 처음부터 방식을 뜯어고쳤다.
아이들이 회사에서 겪게 되는 실제 사례를 10가지 찾아서 담았고, 모둠별 대항전 형식의 놀이 방식을 덧붙였다. 1등을 한 모둠에게는 아이스크림 패밀리 사이즈 쿠폰을 걸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하지만 그 강의도 한계에 부딪혔다. 앞서 진행하는 1시간 강의가 너무 지루했기 때문이다. 다시 강의 방식을 뜯어 고쳤다. 아이들이 흥미 있어 하는 팀별 대항전을 먼저 시작하고, 아이들이 선택한 주제에 맞는 내용만 골라서 강의를 했다. 아이들이 만족감을 표시했다. 어떤 친구는 문자메시지로 강의가 재미있었다고 이야기해주기도 했다.
이 강의 사례는 아이디어를 짜내고 피드백을 반영한 노력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것을 이뤄낸 원인이 무엇이었는지가 중요하다. 나는 그 시작이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즉, 평생 한번 만나는 소중한 기회를 잘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 똑똑한 기획이라고 하더라도 그 마음이 간절하지 않으면 중심을 잡기 어렵다. 마음을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진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마음의 기술’이다.
마음 2012
2012년 여름 동안 노원의 어머니들과 함께 6주 동안 메모리딩 독서놀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준비도 돼 있지 않은 상태인 데다가,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이전에 준비했던 자료를 모두 치워버리고 ‘마음의 기술’을 발휘했다.
일단 전체 강의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를 하고 어머니들의 고민을 집중적으로 들었다. 준비된 강의안을 모두 버리기로 결정한 것도 일종의 ‘마음 씀’에서 나왔는데, 엄마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아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엄마들은 자신과 아이를 간단히 소개하고 아이의 독서 스타일이나 단점, 원하는 점 등을 상세히 이야기했다. 이것이 바로 수업의 시작이었다. 즉, “엄마의 마음”에서부터 출발한 것이다. 준비된 메모리딩과 독서놀이 프로그램 외에 강의의 상당 부분은 엄마들의 마음에 맞게 채워졌다. 이 부분에 총력을 기울이다시피 했는데, 그 까닭은 아이들에게 이 마음이 전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엄마들에게 ‘수용’과 ‘경청’을 이야기해도, 실제 상황에서 엄마가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엄마의 말을 듣고, 여기에 최선을 다해서 대답을 해주는 모습을 보여주면 엄마의 몸과 마음에 이런 흔적이 남아서 아이에게 전달된다. 이것은 마음의 신비한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마음 씀’은 큰 효과를 거두었다. 엄마들은 서로 마음을 나누고, 터놓고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의견이 오가는 과정에서 상호 치유가 저절로 이루어졌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끼리 마음이 통하고, 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겪는 문제를 겪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초등학교 3학년 엄마는 크게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전해진 마음은 일상생활에서 실천되었다.
강의를 준비하면서 내가 그렸던 가장 이상적인 장면은 엄마들이 마음의 이야기를 터놓고 하고, 강사인 나는 마치 서기처럼 엄마들의 말을 기록하고 간단한 피드백을 해주는 방식이었다. 바로 내가 생각하는 그림대로 강의가 진행되었다. 이 마음은 아이들에게도 전달되었다. 한 엄마는 아이가 “출근하지 말고 일주일에 한번 하는 그 수업에만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마음은 전파성이 강하다.
마음의 기술을 가족과 아이에게 적용할 수 있는 엄마는 지혜로운 엄마다. 아이가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더 정확히 말하면 ‘아이의 마음’이 공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공부도 하고, 마음이 일도 하고, 마음이 돈도 벌어 오고 아이도 키운다. 그 마음이 무엇일까 고민하면 생각지도 못한 답이 나온다. 아이들은 마음이 맑다. 장난꾸러기도 마음이 맑다. 아이의 맑은 마음을 보기 위해서는 엄마 역시 마음을 맑게, 가지런히 한 상태에서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마음의 기술’을 완벽하게 숙달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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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열정과 기획력
수민이 엄마(박지희 어머니)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자녀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대단하다. 초등학교 1학년 딸 수민이는 책을 즐겨 읽지만 새로운 책을 좋아하고 읽은 책들은 다시 안 보는 스타일이다.
책 골라주는 게 수민 엄마의 큰 고민이다. 날마다 책을 골라 줘야 하는데 날마다 넣어주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학교나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권장도서 시리즈에 의존하게 된다.
예전에 권장도서 목록을 읽혀 주다가 안 좋은 경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추천도서 목록 중에서 전반적인 내용을 살펴보고 별 이상이 없다고 생각하면 골라준다. 깊이 있게 보고 적극적으로 골라주지는 못하지만, 살펴보고 좋았던 것 위주로 선택하거나 검증된 책 중에서 골라서 읽어주는 편이다.
하지만 직접 책을 골라서 선택해주거나 돌봐주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아이의 책을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서 하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에게 골라주는 책의 주제는 퍽 다양하다. 시리즈별로 과학 영역, 사회 영역을 조금 넣어주고, 문학 영역은 이보다 더 많이 넣어 주고 있다. 수민이가 좋아하는 만화책도 하나씩 넣어주고 있는데, 요즘은 판타지 영역도 관심이 있는 것 같아서 그것도 넣어준다.
아이가 새로운 책을 좋아해서 책을 골라주고 2~3일 정도 관심도가 떨어질 것 같으면 책을 바꿔줄 정도로 아이의 독서 현황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수민 엄마의 걱정은 수민이가 좀처럼 표현은 많이 하지 않는 점이다. 학교에서 독서록을 제출하는 독서 프로그램이 있는데 쓰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수현 엄마도 스트레스 덜 주려고 학교에서 부여하는 일주일에 한두 권 정도 과제만 하게 하고 다른 부담은 안 주는 편이다. 독서록에 표현하는 것을 보면 그렇게 잘 하는 것 같지 않기도 하고, 운을 띄워주면 잘 대응하고 상당히 발전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해서 알쏭달쏭하다.
특히 요약 부분에서 많이 어려워한다. 그래도 줄거리 쓰기와 감상 쓰기 훈련을 하면서 조금씩 개선해나가다 보니, 페이지의 내용을 베껴쓰는 수준에서 지금은 책을 전체적으로 훑으면서 중요한 부분을 찾아내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아래는 수민이가 <엄마 사용법>을 읽고 나서 요약한 내용이다.
‘현수엄마가 생명장난감을 가지고 싶었는데 아빠가 사주셨다. 조립하다가 손가락이 찔려서 피가 엄마 가슴에 떨어졌다. 현수엄마는 현수가 생각하는 다정한 엄마가 아니었다. 그런데 아랫집 할머니가 엄마 마음이 생겨서 파란 사냥꾼에게 신고했고 쫓기게 되었고, 할아버지가 도와줘서 엄마가 탈출하고 다정한 엄마로 돌아왔다.’
약간 내용 연결이 안 되고 책의 내용을 옮겨다 놓은 느낌이랄까? 이 시기의 어린이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중학교 고등학교에 올라가도 아이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바로 요약 능력이다. 수민이의 요약능력을 길러주기 위해서 다양한 독서놀이를 시도했다.
놀이로 아이의 감춰진 열정을 깨우다
독서 빙고 게임은 아이들이 가장 재미있어 하는 독서놀이다. 가로 세로 전체 25칸 또는 16칸으로 된 사각형을 그려넣고 빈칸에 책에 나오는 낱말을 써 넣어서 가로 세로 또는 대각선을 채우면 이기는 게임이다.
수민 엄마는 수민이가 25개 낱말을 쓸 수 있을까 걱정을 했다. 수민 엄마도 막상 25개 적으려고 하니까 막막했기 때문이다. 아이한테 ‘우리 빙고게임 할까?’ 하고 제안했더니, 아이가 책을 한번 딱 보고 표를 그려주었더니 “엄마 나 책 보고 해야겠어. 보면 뭐 어때?” 하면서 게임 방식을 스스로 바꾸면서 주도하기 시작했다. 책을 보다가 어느 순간 책을 닫고 했다.
아이가 한 번 더 하자고 해서 이번에는 책에 나온 낱말 25개를 먼저 채우는 사람이 이기는 걸로 하자고 했다. 수민 엄마가 낱말을 쓰다가 생각이 나지 않은 것을 수민이에게 물어봤다. 그런데 수민이가 낱말을 기억해 내는 것이 신기했다.
기억해낼 뿐만 아니라 낱말이 들어 있는 구체적인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개구리가 어디 있었어?’ 하면 수민이는 ‘아빠 넥타이에 개구리 있었잖아!’하고 대답하는 식이었다. 수민 엄마는 “그래~~?” 하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한번 하고 나니까 다음에 또 할 때는 다른 단어를 써 넣는 식으로 재미있어 했다. 다음 날 아침에도 다른 과제를 하기 위해서 놀이를 하자고 제안을 했더니 수민이는 또 “엄마 빙고하자!”고 달려들어서 결국 다른 독서책으로 빙고 게임을 했다.
아이의 독서에 대해서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서 살펴본 수민 엄마를 깜짝 놀라게 한 일이 있었다. “나의 100점 책”이라는 놀이를 하면서 수민이가 어느새 다음 단계의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했기 때문이다. 글밥이 없는 그림책은 점수가 상당히 낮았고, 고득점을 받은 책들은 글밥이 상당했다. 수민 엄마는 “옛날에 많이 좋아했던 책을 이렇게 평가를 해서 놀랐다.”라고 말했다.
엄마, 나 이 책 몇 번째 읽는 거야?
행복은 아주 우연한 기회에 찾아온다. 월요일은 수민이네 학교에는 독서록을 쓰는데, 항상 책을 빌려 오다가 그날은 깜빡 잊고 안 챙겨 왔다. 독서록 검사가 바로 다음날이었다. 하지만 집에서 보는 책으로 써도 상관 없었다.
수민 엄마의 눈빛이 반짝였다. <엄마 사용법>으로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엄마 사용법>을 보여주며 “수현아 오늘 이거 어때?” 하고 웃으며 말했더니, 수민이가 “엄마 나 이 책 몇 번째 읽는 거야?” 하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엎었다 뒤집었다 해서 한 일곱 번 정도 읽은 셈이다.
수민이는 다시 한 번 책을 읽더니 덮고 나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써서 엄마에게 보여줬다. 안 보고 요약을 하고 머리 속에서 줄줄 쓴 거다. 수민이가 쓴 요약문은 아래와 같다.
“현수한테 엄마가 배달됐어. 그런데 엄마는 현수가 생각한 그런 엄마가 아니었어. 엄마는 집안일 말고는 아무것도 몰라서 현수가 가르쳐주기로 했어. 현수가 가르쳐주었는데 엄마가 마음이 생겼어. 그래서 파란사냥꾼이 잡아가려고 했어. 그래도 엄마는 생명장난감을 탈출시켜주는 곳으로 가서 예쁜 엄마로 돌아왔어. 현수는 엄마와 행복하게 지냈어. 끝.”
요약문을 들은 엄마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요약문은 책의 전체 내용을 온전히 담고 있었다. 그리고 비교적 어려운 조건인 140자에도 거의 맞게 썼다. 이제까지의 수민이는 한번도 이런 요약을 해본 적이 없었고, 요약은 커녕 글자 몇 개 없는 그림책도 베끼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독서록을 쓰면서 스트레스 많이 받았었는데 이번에는 책 덮고 요약을 해냈다. 아마도 수민이가 태어나서 일곱 번 이상 읽은 책은 <엄마 사용법>이 처음인 지도 모른다.
엄마는 예리한 관찰자, 끊임없이 고민하는 기획자
수민이가 책에 재미를 붙이고 숨겨진 열정을 찾아내고 어려워하던 요약을 성공적으로 해내는 데 내가 한 역할은 별로 없었다. 수민이가 가장 많은 일을 했고, 그 다음으로 많은 일을 한 것은 수민이 엄마다. 수민이 엄마는 수민이의 상황을 끊임없이 체크하면서 자연스럽게 독서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수민이의 기분을 살피면서 독서활동을 해도 좋을지 쉴지를 판단했기 때문에 수민이가 엄마의 제안에 잘 따르고 독서활동지를 열심히 채워넣을 수 있었다.
아이의 독서수준이 달라지거나 취향이 달라질 때마다 유연하게 대응하며 지속적으로 관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도 훌륭했다.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 주변에는 수민이 엄마 같은 열정적인 분들이 많이 있지만, 이 분들이 제대로 아이와 독서활동을 하도록 도와주는 장치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출판사나 학교에서 제시하는 거라곤 독서록이나 추천 도서목록이 거의 전부다. 각종 독서 프로그램도 유료이거나 틀에 박힌 것이 많았다. 이런 고민을 담아서 새롭게 만든 독서놀이와 메모리딩 프로그램을 가장 훌륭하게 활용한 사람도 수현 엄마다.
간단한 독서 빙고게임만으로도 수민이의 요약 능력이 향상되었고, ‘나의 100점 책’을 통해서 수민 엄마는 수민이가 벌써 다음 단계의 독서 수준을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프로그램은 독서력 향상의 가능성만 제공할 뿐, 그것을 현실화하는 것은 엄마와 아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준 가족이 바로 수민이네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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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살, 6살, 3살 아이를 둔 최은경 어머니는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책을 잘 읽고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모르겠다는 형식이었지만 사실상 아이의 독서 습관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이었다. “잘 읽고 있는지는 모르고 독서량만 많다”는 말에서도 엄마의 이런 마음은 잘 나타난다. 이 밖에도 강의 초기에 최은경 어머니가 아이에 대해서 남긴 이야기를 모아보면 부정적인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일단 요약하는 걸 힘들어했고 두 번째는 아이의 기질인데 자기 생각 드러내는 것을 힘들어해요.
자기 생각을 말하고 더 이상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고 ‘엄마가 이야기해. 모르겠어’라고 했어요.
워낙 내성적이어서 자기 생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경향이 있어요.
자기 생각을 드러내지 못해서 첫 한 줄은 베끼거나 다른 사람 이야기를 따라하는 경향이 있어요.
동생이 이야기를 듣는 것조차 거부반응을 일으키기도 해서 걱정이에요.
처음엔 그냥 읽었고 두 번째는 숙제처럼 여겨졌어요.
책 읽고 나서 자꾸 교훈을 주려고 하는 습관이 있는데, 그걸 고치는 게 힘들었어요.
최은경 어머니가 아이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을 보이는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애인이 배우자로 바뀌면 좋았던 점이 싫었던 점으로 바뀌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오랫동안 아이에 대한 단점 정보가 입력돼 있어서 몸이 바로 반응하게 된다.
내 아이 민준이의 경우도 동생을 잘 괴롭히는 일, 반찬 투정을 잘 하고 편식하는 일, 떼쓰는 일 등을 자주 보다 보니 내 몸이 습관적으로 반응하기도 한다. 문제는 아이 역시 엄마에 대해서 많은 단점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서 몸으로 반응한다는 점이다. 이런 관계가 오래 지속되면 관성에 빠진다. 관계 전환을 위해서는 칭찬이나 놀이 등의 자극이 필요했다.
엄마가 숙제를 해야 하는데, 도와주지 않겠니?
독서프로그램을 시작할 즈음 두려움도 앞섰다. “엄마가 평소에 책 한 번도 안 읽어주다가 하면 의심할텐데, 엄마가 숙제라고 해도 되나요?”라고 질문을 하기도 했다. 아이에게 툭 터놓고 사정을 이야기하고 숙제라고 하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방식은 좋은 생각이다.
엄마는 아이를 교육시켜주고 입혀주고 재워주는 일방적인 관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언젠가는 엄마와 아이가 친구가 되는데, 친구가 되기 전에 조금씩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
엄마는 필요하다면 아이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고,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도 있다. 아이는 엄마를 도와주고 엄마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과정에서 자신도 엄마를 도와줄 수 있고, 엄마를 도와줬다는 뿌듯함은 아이의 자존감이 커지게 만들어준다.
엄마를 도와주는 방식은 “시연”(Rehearsal)이라는 방식과 연결해서 많이 활용했다. 이 방식은 1960년대 미국 메인주의 National Training Laboratories of Bethel은 각기 다른 교수법을 써서 학생들의 암기 효과를 테스트하는 한편 다른 사람을 가르치도록 하기도 했다. 배운 내용을 곧바로 활용해서 다른 사람을 가르친 학생들은 24시간이 지난 후에도 배운 내용의 90퍼센트를 기억해내는 결과를 나타냈다.
국내의 경우도 <꿩 새끼를 몰며 크는 아이들>의 저자인 아버지 황보태조씨는 5남매를 서울대 의대 2명, 경북대 의대, 포항공대, 약대에 보낸 비결을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수학을 잘하지 못했지만 아이들의 수학 코치 노릇을 했다. 아이들의 수학책을 보고 새로운 공식이 나올 때마다 ‘아빠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쉽게 이야기해줄 수 있겠니?’ 하고 몇 번씩 졸랐다. 그러면 아이들은 그것을 나에게 설명하기 위해서 공부하는 과정에서 그 공식을 완전히 소화해내곤 했다.”(177면)
최은경 어머니의 방식을 여러 엄마가 아이에게 적용해서 효과를 많이 보았다. 그리고 ‘모르는 척’하면서 물어보았을 때도 아이들은 효과적으로 반응했다. 책의 내용을 가지고 빙고 게임을 했을 때 아이가 외친 단어가 어디 있었는지 궁금하다며 물어보면 아이는 단어가 나온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회상하기도 하고, 책의 내용을 찾아보기도 한다.
이것은 보고 듣는 뇌와 설명하는 뇌가 다르다는 점에 착안한 방식이었다. 엄마의 숙제를 도와 달라는 최은경 어머니의 전략은 좋은 효과를 거두어서 아이들을 책으로 불러들이는 데 성공했고, 이제까지 책을 안 읽어준 엄마에 대해서 의아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사라지게 만들었다.
칭찬의 힘으로 아이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다
같이 수업을 듣는 수강생 엄마들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독서활동지에 기록된 글에서 경희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고 이야기해주기도 하고, 어른들도 못하는 한줄 요약을 훌륭하게 했다고 칭찬해주기도 했다. 경희 엄마는 “다른 분들이 요약을 잘했다고 칭찬해주는 것을 들으니, 내가 너무 재촉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줄에 잘 뽑았다고 표현하는 식으로 긍정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아이에 대한 인상이 조금씩 긍정적으로 변화한 것이다.
<엄마 사용법>을 읽고 나서 경희 엄마가 경희에게 정성스럽게 쓴 글에 대해서 경희는 단 두줄로 댓글을 달았다.
“원래 생명장난감은 생각이 없는데 현수 엄마는 생각이 생겼잖아. 그런데 파란 사냥꾼은 장난감은 마음이 생기면 안 된다고 했어. 엄마의 이야기도 들어보니까 재미있어.”
경희 엄마는 “이렇게 썼으면 경희도 뭔가 정성스럽게 쓸 줄 알았다.”며 아쉬워했다. 경희가 쓴 구절과 책을 면밀히 검토하고 다음 수업 때 이에 대해서 크게 칭찬해주었다.
“마음이 없는 장난감일지라도 사랑을 불어넣어주면 마음이 생긴다는 게 책의 주제인데, 이것을 잘 표현했네요. 칭찬해주고 싶어요!!”
경희 엄마는 처음에는 이 평가에 대해서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선생님이 잘 봐주신 거 아닐까요?”라고 반문할 정도였다. 나는 처음 경희가 쓴 글을 보았을 때 무슨 뜻인지 몰라서 10번 정도 읽었고, 어떤 마음이 담겨 있었을까 해서 책도 보고 해서 봤다고 설명했다. 마음이 없을지라도 관심과 사랑을 담으면 마음이 생길 수 있다는 주제를 경희가 제대로 포착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고, 다른 수강생 엄마들에게 나의 생각에 대해서 다시 한번 확인했다. 수강생 엄마는 “마음을 잘 잡으신 것 같아요.”라고 동의해주었다.
어른 말로 표현할 때는 문장이 중간에 빠진 것 같지만, 이것이 아이 말의 맛이고 그 마음을 표현한 거고, 옆의 엄마에게 동의를 얻었으니 의미가 있는 말을 덧붙였다. 경희의 독서활동에 대한 적극적인 칭찬과 발견은 경희 엄마에게 큰 영향을 준 강의 후반부에 이렇게 말했다.
“아이에 대해서 칭찬해주고 훨씬 잘 파악됐다고 하고 여러 어머니들이 칭찬해주니까 내가 아이를 바라보는 마음이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대목이 기발하게 보게 되었어요. 짧게 표현하면 표현력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저렇게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며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 것 같아요.”
성찰하는 엄마의 모습
세 번째 강의가 끝나고 네 번째 강의를 할 즈음부터 경희 엄마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숙제에 대한 목적의식을 놓으니 편안해졌다”고 운을 뗀 뒤, 내가 강의에서 가장 듣고 싶었던 답을 해주었다.
“이 수업을 통해서 제가 느낀 것은 아이들을 대하고 대화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사실 관찰이 중요하다는 점이에요. 집중하거나 들여다보지 않는 것은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유용하지 않다는 점을 깨달았어요. 잠깐 보거나 대화를 할 때도 세심하게 정성을 다해서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해서 일상생활에서도 노력하고 있어요.”
경희 엄마는 지금까지는 어떻게 해서든 결과물을 내려고 했는데, 이제는 제법 편안해져서 책을 통한 관찰과 책을 매개가 된 대화를 이해하게 되었다. 일상에서 놀아주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일상에서 실천한 사례를 들려주었다.
경희 엄마는 아이들을 차에 태울 때가 많은데 차에서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9살 6살 두 아이가 논쟁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 사용법>을 읽은 두 아이는 “현수는 어디서 태어난 걸까?”라는 주제로 공방을 벌였다. 경희 엄마는 ‘누구나 엄마한테서 태어나지, 알에서 태어나진 않았을 거다.’라고 운을 떼는 데 머물렀다.
여섯 살 짜리는 “엄마가 현수를 낳고, 갓난아이가 잠을 자는 동안 엄마가 죽었을 거야.”라고 주장했고, 경희는 마지막에 아빠가 데려 온 엄마가 진짜 현수 엄마고, 현수의 꿈에서 벌어진 헤프닝이라고 주장했다. 서로 네가 옳네 내가 옳네 논쟁을 하다가 끝이 안 나니 가위바위보를 하기도 했다. 마지막에는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책에 다시 한 번 물어보자. 그 궁금증을 가지고.”
칭찬놀이 역시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바꿔서 해보았다. 아이들의 학교에서 칭찬릴레이라는 게임을 한다고 한다. 칭찬놀이를 하던 날에 경희 엄마는 짜증을 내는 경희에게 지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앞서 지적하고 칭찬하려니 조금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경희는 짜증을 자주 내는 것만 빼고는 성격이 좋아.”라고 칭찬했다. 경희는 이 말투를 흉내내 “엄마는 요리를 못하는 것만 빼고는 다 좋아.” 이렇게 칭찬했다. 경희는 센스가 있는 똑똑한 친구였다.
경희 엄마의 사례를 보면 엄마가 어떻게 바뀌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경희가 짧은 글로 책을 잘 표현했을 때, 경희엄마는 좀 더 길게 쓸 것을 주문하길 요구했는데, 경희는 더 생각이 안 난다며 방어 행동을 했다.
경희엄마뿐 아니라 대부분의 부모들이 육아를 하면서 이런 경우를 맞게 된다. 이 때 만약 경희의 짧은 문장을 평가해주고 칭찬을 해주었다면 경희의 태도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경희는 또 칭찬을 받을 곳이 있는지 생각하면서 다른 표현을 할 수도 있다. 아이들은 칭찬을 머금으며 자라기 때문이다. 칭찬을 해야 할 상황에서 지적을 받는다면 아이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MBC 인기드라마 <대장금>에서 어린 장금(조정은)이가 난처해하며 했던 명대사처럼 말이다.
“홍시 맛이 나니 홍시 맛이 난다고 했는데, 왜 홍시 맛이 나냐고 물으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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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적인 독서 프로그램인 줄 알았어요
윤정희 어머니는 시민단체 일을 하면서 잦은 야근과 바쁜 일상으로 아이들의 생활을 잘 챙기지 못하는 상황이다. 6학년과 3학년 형제를 두고 있는데, 형은 만화책만 읽는다. <맹꽁이 서당>만 몇 년째 읽어 왔다. 책을 사달라고 했지만, 번번이 사주지 못하고 있어서 만화책만 반복해서 읽는지 모르겠다. 학교에서 100권 읽기를 하고 있어서 스티커 받는 재미로 책읽기에 재미가 붙었다고 한다.
3학년 동생은 한 번 본 책은 절대로 다시 안 읽는 아이로 약간의 고집이 있다. 하지만 책의 내용에 대해서 물으면 곧잘 대답을 잘 한다. 둘째 아이와는 스마트폰에 대해서 갈등이 많았다. 형처럼 절제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압수하거나 냉장고 위에 올려놓는 등 스마트폰을 하지 못하게 하는 과정에서 둘째와 다투는 경우가 많다.
윤정희 어머니는 독서 프로그램에 대해서 약간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과제 제출을 잘 안 하고 소극적이었다. 형식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엄마 사용법>에 대해서 첫째 아이는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엄마 생명 장난감이라는 소재 자체에 대해서 굉장히 기분 나빠 했고, 엄마 장난감은 어떻게 사용하는지, 사면 어떻게 되는지, 엄마 장난감을 산 현수는 도대체 누가 낳았는지 등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질문했다.
인상적으로 고른 구절도 엄마에 대한 부분은 아니었다. 주인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해 지붕 위로 도망가서 살고 있는 고릴라를 인상적으로 보았는데, “같이 놀고 싶어서 친구가 되자는 뜻이잖아”라는 구절은 고릴라가 친구가 되자는 표현을 못해서 불쌍했기 때문에 꼽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엄마 장난감>이 진짜 엄마로 바뀌었다는 이야기의 전개에 대해서도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그것은 장난감이나 가전 제품이지 엄마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아이가 엄마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고 느꼈다. <엄마 사용법>에는 엄마와 관련된 구절이 많이 있는데, 대개 엄마에 관심이 많은 친구는 엄마 관련 구절을 선택했고, 엄마 이외의 다른 것에 관심을 나타낸 친구는 애착이 어느 정도 채워져서 다른 주제로 넘어갔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엄마에 대한 애착이 강한 아이
인터뷰 놀이에서도 아이의 엄마에 대한 애착은 계속 되었는데, 놀이를 하기 전에 주변을 둘러보며 쓰레기를 치우고 깨끗이 정리해서 앉아 있었다고 말했다. 아이가 엄마와 하는 놀이나 작업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인터뷰 놀이에서 엄마에게 질문하는 내용이 있는데, 아이가 쓴 질문은 “엄마는 나 학교 가고 나서 몇 시에 나가?”와 “엄마는 무슨 일을 해?” 였다. 윤정희 어머니는 인터뷰 놀이를 하면서 아이와 일상에 대해서 공유를 안 하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아이와 주고 받는 대화는 필요나 목적에 따른 것이 대부분이었다.
윤정희 어머니가 하는 일에 대해서 상세히 소개를 하자 아이는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모르지만 “아, 그렇구나!” 하면서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프로그램이 한 달 정도 경과하고 나서부터는 윤정희 어머니의 가족에 생활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밤에 엄마가 책을 읽어주는 분위기가 생겼다. 아이들에게 팔베개를 해서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책을 가지고 여러 가지 놀이를 하면서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자연스럽게 생겼다. 큰아이가 뚜렷한 관점을 가지고 만화책을 읽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큰 아이가 쓴 나의 100점 책은 모두 만화책이었지만, 좋은 만화책의 이유와 나쁜 만화책의 이유가 뚜렷했다. 수십번 넘게 보았다는 <맹꽁이 서당>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내용이지만 그래픽이 우리 아이들이 보기에 좋지 않고 편마다 연결이 안 돼 감점시켰다”고 썼다. 엄마는 아이가 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게 되는지 알게 되어서 참 뿌듯하다고 썼고, 아이는 “그치? 나도 재밌었어.”라고 답변했다.
그 다음에는 아이들이 적극성을 띠었다. <엄마 사용법>으로 25칸 빙고게임을 하자, 이번에는 큰 아이가 좋아하는 <공포의 외인구단>을 읽고 25칸 빙고게임을 한 번 더 했다. 그리고 다음날 또 빙고게임을 하자고 제안한 것은 아이들이다. (시험때문에 하지는 못했다.) 아이들은 고집이 센 대신 지적 능력이 상당했다.
첫째는 전문가 못지 않은 비평 능력이 있었고, 둘째는 기억력이 비상할 뿐만 아니라 집중력이 강했다. <엄마 사용법>을 한 번 읽었을 뿐인데, 읽을 때 구석구석 의미를 이해하면서 정독을 했기 때문에 빙고게임에서도 디테일하게 단어를 잘 생각해냈고, 상황을 잘 표현했다.
엄마들의 열정에 마음이 열리다
윤정희 어머니가 마음을 연 것은 다른 어머니에게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른 어머니들은 준비된 프로그램에 맞게 아이들과 재미있게 독서활동을 하고 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이 많았기 때문에 발표 시간에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했다. 이게 윤정희 어머니의 마음을 움직였다. 독서 프로그램을 통해서 감정이 흐르르 수 있다는 점을 스스로 확인한 점도 주효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책은 없듯,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강의도 없다. 이 프로그램은 처음부터 아이와 책으로 놀고 싶고 열정도 있는데, 방법을 몰라서 애를 태우는 엄마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나는 이런 수강생을 “2% 부족한 수강생”이라고 표현한다. 내 강의가 모든 것을 채워줄 수도 없고 채워줘서도 안 된다. 자기 품이 들어가지 않은 모든 행위는 자신이 이룬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사람이기 때문이다. 2% 부족한 엄마들이 강좌에 얼마나 있는지가 전체 수강생의 강의 만족도를 좌우한다.
다행히 수강생 엄마 중에서 열정적인 엄마들이 절반을 넘었다. 소개한 독서놀이 프로그램을 가지고 아이와 재밌게 놀고 나서 그 효과를 상세히 설명한 엄마도 있었고, 아이를 독서놀이에 빠지게 하기 위해서 기회를 주시하고 여러 가지 제안을 하면서 시도를 하는 엄마도 있었고, 독서놀이를 통해서 자신이 이제까지 했던 교육 방법을 반성하는 엄마도 있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수업에 비교적 덜 열정을 보이는 엄마들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윤정희 엄마도 이런 열정적인 엄마들의 독서 활동 이야기를 통해서 큰 자극을 받았다.
독서놀이 강의는 일종의 감기약과 같다. 감기약은 우리 몸에 있는 감기를 없애주지 못한다. 다만 우리 몸이 감기 바이러스를 상대할 수 있도록 특정한 기능을 자극해줄 뿐이다.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에 머무를 때 기대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강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제한돼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수강생과 효과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고, 강의 만족도도 훨씬 좋아질 수 있다. 6주간의 강의를 하면서 엄마들이 효과를 보고 만족을 느낀 것은 출석률로도 확인할 수 있다. 강의 말미에는 수강생들이 줄어드는데, 독서놀이 강의에서는 오히려 중간에 2명의 엄마들이 참여하는 등 오히려 수강생이 늘어났다.
아이들과 책으로 다시 친해지다
아이들과 책으로 놀면서 윤정희 어머니는 지금까지 채워지지 못하는 것들이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서로 놀고 소통하는 과정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런 과정을 늦게라도 하면서 서로 마음이 편안해진 것이다.
무엇보다도 윤정희 어머니가 좋았던 것은 처음에 걱정했던 것이 걱정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만화책을 자주 보기 때문에 뭔가 도움이 될까 했지만, 만화책을 고르는 기준이 뛰어나서 이제는 아이가 어떤 책을 읽더라도 믿음이 생겼다는 점이 기쁘다고 한다.
윤정희 어머니가 아이들의 독서 습관에 대해서 걱정이 많았던 이유는 아이들이 어떤 책을 재미있어 하고, 어떻게 읽고, 읽는 수준은 어떤지 등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잘 몰랐기 때문이다. 독서활동과 각종 놀이를 통해서 서로에 대해서 알게 되고, 궁금한 것을 이야기해주고, 책에 대해서 취향과 기준 등을 알게 되자 걱정은 자랑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윤정희 어머니가 아이에 대해서 자신의 생활에 대해서 성찰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밖에도 자식을 키우는 부모님과 동년배의 친구를 둔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몰랐던 것이나,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된 것이 변화를 이끌어냈다.
엄마가 마음을 열고 아이들에게 다가가면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을 열어줄 준비가 다 돼 있다.
윤정희 엄마와 독서프로그램을 하면서 새삼스럽게 느낀 점은 아이와의 일상을 교감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이다. 아이들과 엄마가 처음으로 마음을 열게 된 계기는 ‘인터뷰 놀이’를 통해서였다. 놀이를 처음 만들 때 인터뷰 놀이와 칭찬놀이를 0단계, 즉 모든 단계보다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단계로 설정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아이의 마음과 엄마의 마음이 만나게 되어 나도 참 행복한 경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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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무서워하는 엄마와 아들
처음 엄마는 초등학교 3학년 남자 아이가 있는데 별로 이쁘지가 않다. 교감하는 게 별로 없다. 5~6세 때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다음부터는 별로 얘기를 나누지 않는다. 아이가 엄마를 무서워한다. 엄마가 집에서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아이의 주장에 대해서 반박을 자주 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어릴 때는 딸을 구박하고 교감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요새는 아들이 싫다고 한다.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인데 아이랑 거의 이야기를 안 한다. 단지 아이는 아빠랑 야구하는 이야기를 조금 할 뿐이다. 그래서 요새 무슨 생각을 하는지 거의 모르고, 우울하면 친구랑 싸웠나 정도 생각한다.
엄마의 고민은 아이의 친구관계와 컴퓨터 습관이다. 컴퓨터 중독 상담 센터를 찾아가 보고 싶은 마음이 조금 있다고 한다. 마땅히 이 외에는 관심을 가지는 부분이 별로 없어서 독서논술도 시켰는데, 아이는 숙제라고 생각하고 잘 안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논술 선생님 말씀이 이해력은 있어서 내용 파악이 잘 된다고 하는데, 옆에서 지켜볼 때는 그런 점을 잘 못느낀다고 한다.
최근에 궁여지책으로 스마트폰을 사줬다. 다른 애들보다 수영이나 영어를 잘하거나 잘 하는게 그다지 없어서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여서 원래 4학년 때 사주기로 약속을 했는데 미리 사줬다. 하지만 누나나 형처럼 조절을 하지 못하고 수시로 엄마 눈 피해서 하는 것 같다.
처음 엄마는 다른 엄마들에 비해 개입의 강도가 가장 강했고, 자의식 또한 강했다. 주 교재인 <엄마 사용법>도 정서에 맞지 않아서 다 못 읽었는데, 그나마도 읽는 내내 공감이 안 돼 괴로웠다고 했다.
엄마들과의 이야기를 통한 상호 치유 효과와 플랫폼 식 강의
처음 엄마의 경우 책을 읽지 않고, 아이 역시 별다른 독후 활동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수용의 부분을 특히 강조했고,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자극을 시키는 방법을 사용했고, 주변 엄마들의 이야기가 크게 도움이 되었다. 특히 6학년 민수의 이야기는 스마트폰과 컴퓨터에 빠진 처음이의 경우와 같기 때문에 경청을 했다.
특히 또래 아이를 기르는 엄마들의 이야기이거나 자신의 아이와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경우 주의 깊게 경청했다. 독서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던 분들이 쓴 책에 나오는 공통적인 이야기는 독서치료사나 독서 강사의 역할을 스스로 이야기를 하게 만드는 것이다.
매주 엄마들에게 과제물을 제출하게 하고 과제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하면 전체 강좌의 50% 이상을 엄마들이 이끌어가게 된다. 여기서 효과적인 질문이나 피드백을 하면 서로 질문을 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수준까지 가게 된다. 상호 치유는 이때 이루어진다.
강사가 아무리 좋은 자료를 준비해서 제시를 한다고 하더라도 강의를 듣는 엄마들이 공감을 하고 표현을 해야만 효과가 있다.
처음 엄마는 다행히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편이고, 의견을 제시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중간 중간에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스스로 치유효과를 보았다.
수강생들의 자기치유와 상호치유가 일어나도록 하려면 상당한 준비가 필요하다. 일본의 IT 전문가인 사사키 도시나오는 자신의 저서 <큐레이션의 시대>에서 플랫폼의 3원칙을 제시했다.
첫째,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 가질 것
둘째, 사용하기에 대단히 편한 인터페이스를 실현시킬 것
셋째, 플랫폼 위의 플레이어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허용력을 가질 것
몽골제국이 유라시아 대부분을 지배한 것도 바로 이런 방식이었다.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유라시아 대륙 대부분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이 첫 번째 원칙에 부합되며, 대형 간접세와 대체 통화를 통해 편리한 통상 시스템을 만든 게 두 번째 원칙에 맞다. 문화나 종교, 언어에 대해 불간섭주의를 관찰하고, 다양한 민족이 독자의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게 한 것이 세 번째 원칙에 해당한다.
나는 엄마들의 고민을 제대로 이해하고 엄마들의 말을 통해 아이들의 생각을 잡아내기 위해서 강좌 내용을 녹음해 녹취록을 정리하는 한편, 여기서 나온 말을 중심으로 욕구를 잡아서 강좌 준비를 탄탄하게 했다. 이것이 첫 번째 플랫폼 방식이다.
아이들의 학습능력에 도움을 주는 메모리딩 프로그램과 아이들이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는 독서놀이를 제공해 가족들이 서로 즐기면서 놀 수 있고,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때문에 강의 시간에 1시간 넘게 독서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이것이 두 번째 플랫폼 방식이다.
엄마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도록 효과적인 질문을 덧붙이고, 다른 엄마들의 토론을 유도함으로써 서로에게 질문하고 토론하는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이것이 세 번째 플랫폼 방식이다.
이런 방식의 수업은 엄마 대상 강의뿐만 아니라 고등학생에게도 효과적으로 적용된다. 중소기업청이 주관하는 마이스터고 대상 “중소기업 이해연수”에서 ‘인성’과 ‘논어’라는 지루한 주제를 가지고 플랫폼 방식을 적용했을 때에도 아이들이 폭발적으로 반응했다.
마이스터고 강의는 플랫폼에 게임 방식을 가미하였는데, 학교 졸업 후 취업을 하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취업 후 회사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각 조에 부여해 토론을 시키고 발표와 투표, 참여 등의 점수를 합산해서 1등에게 상품을 주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각 사례에 맞는 논어의 이야기를 뒷부분에 짧게 보완해서 강의를 하면 강의 메시지도 온전하게 전달될 수 있다. 강의를 통해서 메시지를 전달해야겠다는 강박과 욕구를 벗어버린 대신, 철저히 수강생들의 욕구에 맞춰서 강의를 디자인했고, 수강생 피드백을 통해서 계속 보완한 점이 주효했다.
강의를 통해서 여러 가지 놀이가 만들어지고, 강의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재미 속에 의미를 숨겨둘 때 플랫폼 강의 방식은 완성된다.
‘수용’ 하나만큼은 제대로 배웠어요
처음 엄마를 자극하기 위해서 사용한 것은 플랫폼 방식만은 아니다. ‘소재의 다양성’이 생각을 자극한다. 딱히 독서와 관련이 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주식 투자나 축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거나, 작품 속 이야기를 어릴 적 경험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해준다.
특히 주제와 관련이 없는 엉뚱한 소재의 이야기가 결국 주제와 연결되었을 때 반응이 좋았다. ‘주식투자와 아이 투자의 공통점’이라는 주제를 준비해서 강의를 했을 때, 수강생 엄마 중에서 재테크를 열심히 하는 엄마를 자극해서 재밌는 이야기를 이끌어낸 적이 있었다.
처음 엄마도 그런 다양한 이야기에 이끌려 자신의 이야기를 한 경우였다. <엄마 사용법> 중에서 고릴라가 주인의 애정 표현으로 잘못 이해한 똥 던지기를 통해 주인공과 친해지려고 노력한 점을 어린 시절 여자애들 고무줄 끊는 남자 아이들의 심리와 연결해서 이야기한 내용에 대해서 공감을 표시하기도 하고, 최근 메이저 대회 3관왕을 차지한 스페인 축구팀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학교에서 열린 영어 대회에서 자신의 아들이 속한 3반보다 반 전체가 참여한 2반이 더 좋은 성적을 받은 이야기를 축구 이야기와 연결해서 말했다.
2반은 선생님이 도와줘서 한 명도 소외되는 것 없이 남자 애 전체, 여자 애 전체가 출전했고, 한 애가 두드러지면서 유기적으로 잘 해서 마무리가 썩 잘 됐다고 한다. 박수도 가장 많이 받고 큰 상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처음이가 속한 반은 하고 싶은 애들만 손을 들어 8명이 출전을 했는데, 엄마들이 힘을 합해서 장소도 빌리고 옷을 빌리고 엄마들이 치맛바람을 동원해서 아이들을 만든 방식이었다. 엄마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봤을 때 2반 남자 애 전체 여자 애 전체가 나와서 한 게 보기가 좋았다고 말했다. 아이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하게 하고 선생님이나 부모가 그림자처럼 있는 듯 없는 듯 도움을 주는 방식은 2반의 우승 비결이었는데, 앞서 이야기한 플랫폼 방식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처음 엄마는 이런 훈육 방식을 이해한 듯하다.
특히 처음 엄마는 ‘수용’이란 주제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이 부분을 집에 가서 실천했고 그 결과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예전에는 “그건 아니고 엄마 생각은 이런 것 같아” 하고 아이 생각을 꺾어버렸지만, 강의를 듣고 나서는 들어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평소 같으면 “그건 아니잖아~!” 하면서도 이번에는 되도록 수용 “그래?” 했다. 강의를 할 때마다 “이번에도 뭐 하나는 잡고 가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듣고 있고, 집에 가서 한 가지라도 실천할 수 있는 거 잡고 가려고 나왔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
엄마들과 함께 처음 엄마에게 박수를 많이 쳐주고, 칭찬을 많이 해주었다. 사람이 변화하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모습으로 만드는 것은 굉장히 힘이 드는 일이다. 처음 엄마가 달라진 점은 아이의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실은 아이에 대해서 관심과 사랑이 가득했다는 것을 스스로 이야기를 통해서 확인하게 된 점이다.
처음 엄마를 대할 때마다 욕심이 생기기도 하고, 조금 더 하는 아쉬움도 드는 것은 사실이다. 과제를 받았다면 더 많은 것을 알고 이야기해줄 수도 있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지만, 중요한 것은 본인이 느끼고 실천하는 것이다. “수용 하나만큼은 제대로 배우고 가겠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나서 그 다음 펼쳐질 이야기를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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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변화하는 게 가능할까요?
가장 마음을 많이 기울인 엄마 중의 한 명이 민재 엄마(손미선 씨)이다. 6학년 민수와 1학년 민재 두 아들을 두고 있는데, 첫째 아이와의 갈등이 많이 보였다. 민수 엄마는 엄격한 원칙을 가지고 아이를 교육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부딪힐 일이 많았다. 민수는 컴퓨터 게임을 엄청 좋아하는 아이인데, 엄마는 아이가 컴퓨터 중독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다. 그래서 시에서 제공하는 상담센터에 아이를 보내기도 했다.
최근에는 아이에게 손찌검을 하는 일도 있었다. 친하게 지내는 이웃의 집에서 밥을 먹는데 돈가스 소스가 없어서 아이에게 5천원을 주면서 심부름을 시켰더니 아이가 잔돈으로 게임 카드를 사겠다고 졸랐다. 그런데 많이 있었기 때문에 엄마는 허락을 해주지 않고 돈가스 소스만 사고 잔돈은 거슬러 오라고 말했다.
그런데 거기서 문제가 생겼다. 아이는 대답을 안 하고 가더니, 잔돈으로 게임 카드를 사버린 것이다. 다른 집 부모님들이 있는 상황에서 아이가 엄마 허락을 받지 않고 돈을 쓰고 온 것이다. 엄마는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안 보이고 엄마의 말을 듣지 않았던 것에 화가 났다.”고 말했다. 당장 아이를 데리고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문을 닫고 들어가, 엄마가 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카드를 사왔냐며 야단을 쳤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엄마는 화가 나서 애의 얼굴을 주먹으로 쳤다. 엄마는 그게 마지막이길 바라는 마음에 때렸는데, 아이는 너무 놀라서 뛰쳐나갔다고 한다. 아이는 화를 내면서 “그거 썼는데 뭐 어쨌는데, 그게 그렇게 중요해.”라고 소리쳤다. 그날 저녁식사는 엉망이 되었고, 민수 엄마는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아이가 돈가스 소스 살 돈으로 게임 카드를 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엄마는 “100원이라도 그렇게 쓰면 안 되는 거다 하는 생각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민수 엄마는 민수에 대해서 부정적인 성격의 말을 자주 했는데, 처음에 민수 엄마가 남긴 민수에 대한 말을 모아 보면 아래와 같다.
책 같은 경우도 ‘엄마 나 이 책 사줘, 읽고 싶어’ 라고 이야기를 주로 하는 것이 아니고, 학교 숙제 때문에 읽어야 하는 책만 읽는다.
독서 속도나 이해력이 떨어지는 것 같지 않은데, 글쓰기의 내용과 깊이는 좀 부족한 것 같다.
큰 애는 한 번 읽으면 안 읽어서 책 읽은 양은 정말 많은데, 책의 내용에 대해서 물어보면 무서워한다. ‘물어보지 마, 다 안다니까.’ 내가 큰 애가 책을 읽었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내용을 아냐고 물어보면 다 안다고. 줄거리 이야기해봐 하면 이야기를 못해서 난감한 적이 많다.
아이가 보인 반응과 엄마의 방법에 대해서 차분하게 이야기를 하자 민수 엄마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교육 방침이 오래 전부터 그랬고 지금도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변하는 게 가능한가요?”
전자오락실의 추억
민수 엄마는 강의 과정 속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했기 때문에 강의 방향의 큰 부분을 차지했다. 민수 엄마의 사례가 다른 엄마들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다른 엄마들도 주의깊게 경청했다. 특히 게임 중독이나 스마트폰 중독 문제는 다른 엄마들도 겪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중독의 주제와 관련해서 한 강좌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이야기했다.
나 역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4~5년 정도를 전자오락실 중독에 가까웠다. 아들을 데리러 오락실로 가야하는 엄마가 너무 화가 나서 나를 파이프로 때리기까지 했다. 엄마에 따르면 내가 “잠을 잘 때도 천장에 화면이 보여요.”라고 했단다. 그런데 어떻게 거기서 나왔을까?
첫 번째는 컴퓨터 중독이라는 단어 안에 함정이 담겨 있다. 뭔가가 부족한데 덜컥 하고 컴퓨터가 걸린 거다. 그것에 대한 대체제가 있어야 하는데, 컴퓨터가 걸린 거다. 나는 걸어 나왔다. 내가 왜 빠지고 있지? 어떤 게 나를 빠뜨리는 거지? 항상 어떤 부분에서 잘 나가다가 삐끗하면서 화나게 한다. 일종의 감정 기계다. 사람을 흥분시키는 거다. 그래서 다음 게임을 하도록 하는데, 그 패턴을 파악을 하고나니 그것으로 끝이었다.
파악을 못하고 컴퓨터 게임 중독이라고 했을 때는 답이 안 보인다. 막연하고 추상적이고. 아이한테 컴퓨터 게임 중독자라고 하면 막힌다. 아이는 뭔가 갈구하고 결핍 동기 상태에 있는데, 이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컴퓨터 게임이 나온 거다. 이것은 부분인데 그것을 전체로 보면 당연히 답이 안 나온다.
아이들이 게임이나 컴퓨터, 스마트폰에 몰입하는 까닭은 대부분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다. 아이들이 스마트폰에 빠지는 이유 역시 카카오톡을 하면서 친구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다. 왜 아이들이 집에 있는 성능 좋은 컴퓨터를 놔두고 괜히 PC방에 가서 돈 주고 게임을 할까? 부모들은 이런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
아이에게 직접 물어보면 친구들에게 자기 게임 실력을 자랑하거나, 친구들과 함께 퀘스트를 깨기 위해서라고 답변한다. 게임 과정 속에서 자신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게임을 한다.
민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민수 엄마는 상담센터에서 들은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가 같다고 말했다. 상담센터에서도 역시 민수가 친구를 만나고자 하는 것이지 컴퓨터 자체를 즐기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고 한다.
무엇인가에 중독된 것처럼 매달린다는 것은 나쁘지 않은 현상이다. -100이든 +100이든 100이라는 절대값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마음 속 가득 열정을 품었다는 말도 된다. 열정의 배출구를 찾지 못했을 때 중독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민수가 딱 그런 아이였다.
아이의 재발견
과제물을 통해서, 그리고 엄마의 입을 통해서 직접 접해본 민수는 지적 수준이 굉장히 뛰어날 뿐만 아니라 감정이 풍부한 아이였다. 책에서 감정이 많이 들어간 부분을 잘 찾아낼 뿐만 아니라 감정표현을 잘 하고, 질문도 창의적이었다.
다만 엄마가 아이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과 아이를 바르게 교육해야겠다는 목적 의식 속에 이런 것들이 감춰졌을 뿐이다. 엄마에게는 수용의 자세와 아이 자체로 인정하기, 경청하기, 칭찬하기 등의 방식을 계속 주문하는 한편, 아이가 가지고 있는 장점과 특징을 면밀히 분석했다.
민수는 감정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엄마 사용법>은 생명장난감 회사의 신제품 엄마 장난감에게 마음을 다해 가족으로 만든 이야기인데, 민수는 주인공 소년의 손가락에서 피가 한방울 떨어져 엄마가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 점을 신기해 했다.
그리고 나를 깜짝 놀라게 한 일이 있었는데, 엄마와의 댓글놀이에서 통찰력 있는 말을 쓴 것이다. 엄마는 사랑의 감정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감정으로 아이의 감정을 다치게 하니 차라리 무감정 엄마가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썼다. 이에 대해서 민수는 “하지만 아이도 무감정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옳지 못하다”고 답변했다. 감정이 아이에게 흘러가 아이 역시 무감정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민수의 할아버지도 언젠가 민수가 글재주가 있다는 말을 했지만, 엄마는 아이가 글을 잘 쓴다는 뚜렷한 증거를 보지 못한 상태였다. 민수는 어릴 때는 상추를 보면 “삼겹살이 상추에 숨었어”라고 할 정도로 감수성과 발견의 힘이 뛰어난 아이였다.
민수는 1학년 때 “엄마 난 아무리 엄마가 구박하고 때려도 나는 스스로 치유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아. 나는 자꾸 재생하고 있는 기분이 들어. 나는 스스로 재생해서 괜찮은 것 같아.”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질문놀이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대개 아이들은 책을 자세히 읽으면 알 수 있는 것을 질문하는 경우가 많다. 책에서 해결해주지 않는 문제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눠볼 만한 의미 있는 질문을 하려면 책을 열심히 읽거나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엄마 사용법>에는 현수의 피가 떨어져서 마음이 생긴 엄마 외에 주인집 옥상으로 도망간 고릴라 이야기가 나온다. 고릴라가 어떻게 마음이 생겼는지는 작품에 소개되지 않았다. 민수는 이 점을 짚은 질문을 던졌다.
“정태성의 고릴라는 어떻게 마음이 생겼을까?”
좋은 질문을 찾아내는 것은 어른에게도 뛰어난 능력이다. 즉,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들과 느낌들을 질문을 통해 정리하고 적절한 언어로 표현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아이가 깊은 사고를 할 수 있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민수는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나 다름없었다.
모든 사람의 노력, 그리고 희망
심리치료 상담 사례를 보면 아이가 훔치거나 안 좋은 소리를 하거나, 머리를 쥐어뜯거나, 게임중독에 빠지는 등 이상성향을 보이는 아이들의 사례를 보면 대개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거나, 상처에 대한 반응인 경우가 많다. 그런 아이를 분석하다 보면 아이보다 엄마나 아빠가 마음이 아픈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우선 엄마가 보이는 ‘개입’의 정도를 줄이고, ‘수용’을 늘리는 방향에 힘썼다. 예컨대 민수 엄마가 아이에게 책의 구절을 물어보는 행동에 대해서 아이의 반응을 설명했다. 아이한테 직접적으로 질문이 들어갔을 때 부담을 느낀다. 아이가 부담을 느끼지 않으려면 ‘구나 체’를 많이 이용한다. ‘아, 그렇구나. 하늘은 그렇게 표현되었구나.’라고 말한다.
그리고 질문 역시 아이한테 직접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혼잣말을 하듯이, ‘이 애는 왜 이렇게 울게 된 거지. 궁금하네.’ 하면 아이는 대답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자유를 얻게 된다. 아이는 대답을 하고 싶으면 대답을 한다. 직접 물어보면 아이로 하여금 압박감을 느끼고 신문을 받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저항을 하게 된다. 민수 엄마는 과제를 제출하며 “우리 엄마도 완벽한 제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구나.”라는 표현을 쓰면서 들은 내용을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두 번째로 강조한 부분은 감정놀이, 표정놀이를 권했다. 아이가 책에 대해서 감정 부분에 감수성이 강하기 때문에 두 놀이를 통해서 감정을 자극시켜 주면 독서에 흥미가 생길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엄마를 각별히 사랑하는 아이이기 때문에 엄마에게 감정이 담겨 있는 증표를 선물할 것을 권했다. 예를 들면 엄마가 생각하는 민수의 멋진 점을 그림으로 표현을 한다든가 하면서 선물을 주면서 이를 증표로 삼는 것이다. 아이는 엄마가 나를 생각하는 것 잘 하는 것을 주니까 여기에 크게 의미를 둘 수 있다. 아이 엄마는 강의 후반부에 이렇게 말했다.
“큰 애를 볼 때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내가 항상 보지 않았나 하는 반성이 들고. 가급적이면 그 자체만으로, 어떤 상황이 와도 그 자체만 가지고 가야지 하면서 다짐을 하게 되요. 그런 게 저에겐 굉장히 중요하고, 마음이 편해진 것 같아요.”
엄마는 용돈 9,000원을 줬던 날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아이는 “엄마가 PC방을 싫어하니까 안 갈게.”라고 말했다고 한다. 동네에 문화센터 PC실이 있는데 엄마가 하루 한 시간은 공부하는 것 말고 자유롭게 해도 된다고 허락했더니, 엄마의 허락을 받고 마음이 편해진 아이는 문화센터에서 친구들 만나고 거기에서 큰 행복을 느꼈다고 한다.
조그마한 공간을 열어줬더니 별로 엄마에게 숨기는 거 없이 컴퓨터에 집착 안하고 PC방 가고 싶거나 그런 것도 없다고 한다. 예전보다 마음이 많이 편해진 것이 가장 나아진 점이라고 말했다.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민수 엄마였다. 민수 엄마 역시 감정이 풍부하고 감수성이 강한 분이지만 자란온 배경과 지금의 상황, 부모로서의 의무감 등에 가려져 있었다. 아이의 부정적인 부분을 이야기하는 게 현저히 줄었고, 부끄러운 사건이나 경험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했다. 아이에 대해서도 수용적 자세를 가지려고 무척 노력한 끝에 아이도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아이의 독서력이 현저하게 향상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제 민수는 나래를 펼 수 있는 출발선에는 설 수 있었다.
왜냐하면 자신을 인정해주고 잘하는 점을 크게 칭찬해주고 경청을 해주는 엄마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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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큰 일은 언어와 마음
언어를 다루고 마음을 다루는 일은 어렵고 두렵다. 마치 보이지 않는 큰 칼을 들고 있는 것과 같다. 말로 사람을 죽이는 경우는 너무나 많다. 최진실 등 연예인들의 자살은 댓글이 일으킨 살인과 같다. 최근에는 미국에서 TV 토크쇼에서 나온 말 때문에 한 시민이 분신자살을 하는 사건도 있었다.
<!--[if !supportEmptyParas]--> 위 사진은 미국 유명 방송인 낸시 그레이스의 토크쇼(CNN)에서 위스키를 마시고 소파에서 잠을 자다 영아를 사망케 한 사건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퍼포먼스를 벌이는 장면. 이로 인해 당사자가 분신자살했다. 이전에도 이 토크쇼를 본 시청자가 권총자살을 하기도 했다.
언어를 다루는 사람들은 왜 이것이 무서운 일인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말이 가진 성격 자체가 공격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if !supportEmptyParas]--> ‘카드모스 이야기’는 말의 무서움을 잘 표현해준다. 카드모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로, 테베를 건설한 자이면서 페니키아 알파벳을 그리스에 최초로 들여온 자로도 알려져 있다.
동생을 찾으러 가는 도중 아폴론 신으로부터 암소가 눕는 곳에 도시를 세우라는 신탁을 받고 테베를 세우게 된다는 이야기다. ‘용의 이빨’ 이야기는 언어와 관련돼 있다. 카드모스는 부하이 제물을 바칠 때 쓸 물을 길러 갔다가 샘물을 지키던 용에게 살해당하자 그 용을 죽이고 아테나 여신의 지시에 따라 용의 이빨을 땅에 뿌린다.
그러자 땅에 떨어진 용의 이빨에서 무장한 전사들이 솟아 오른다. 카드모스는 그 전사들에게 돌을 던졌는데 이들은 서로 죽이고 죽는 싸움을 하게 되고 마지막에 다섯 명만이 남게 되었다. 이들 다섯 명이 카드모스를 도와 테베를 세우게 되고 테베 귀족의 조상이 된다.
<!--[if !supportEmptyParas]--> 이 신화가 만들어진 시기는 배우기 쉬운 알파벳과 가볍고 값싸며 들고 다니기 편리한 파피루스의 등장으로 인해 권력은 승려 계급에서 군인 계급으로 넘어간 시기다.
영문학자이자 미디어 전문가인 마셜 매클루언(1911 ~ 1980)은 자신의 저서 <미디어의 이해>에서 도시국가들의 몰락과 제국 및 군인 관료층의 발흥 등을 포함한 모든 것들이 카드모스와 용의 이빨에 관한 신화에 함축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용의 이빨’ 신화에서 이빨은 선 모양의 질서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시각적인데, 이는 문자들은 이빨처럼 시각적인 것과 같다.
우리가 쓰는 말 중에는 이빨의 붙잡고 무는 힘과 정확함을 보여주는 표현들이 많이 있다. 특히 글자로 표현된 경우 가공할 만한 위력을 보인다. 독일 나치 시대에 학살을 피하지 못했던 까닭은 전보나 공문을 통해서 전달된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언론의 선동과 조작 때문에 내전이 더욱 격화되었다. 조지 오웰은 <카탈로니아 찬가>라는 자전소설에서 이 실상을 기록했다.
<!--[if !supportEmptyParas]--> 메모리딩 독서놀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2년간 많은 엄마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때마다 무섭고 두렵다. 내가 엄마에게 전한 말은 엄마의 마음을 타고 아이에게 흘러가고 가족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사실상 누군가의 가정에 개입하는 것이다.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굉장히 큰 영향을 받는다. 특히 아이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같다. 무섭고 두렵지 않을 수가 없다.
사랑밖에 답은 없다
6주간 노원의 엄마들을 만나서 집중 강의를 한 시간은 나에게도 소중한 기회가 되었는데, 평소의 방법대로 강의안을 짤 수가 없었다. 엄마들이 궁금하고 아쉬워하는 것을 중심으로 한주 한주 새롭게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을 남김없이 주어야겠다는 생각뿐 없었다.
강의를 할 때마다 녹취록을 정리해서 몇 번이고 들여다보았고, 제출한 과제 역시 꼼꼼히 살피며 반복해서 보았다. 그렇게 필요한 강의를 준비하고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엄마들의 걱정을 한 장의 마인드맵으로 그려서 가져간 두 번째 강의에서부터 엄마들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의에서 엄마들이 아이에게 했으면 하는 것은 두 가지, 바로 ‘칭찬’과 ‘수용’이었다.
내가 몸소 그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엄마들의 과제와 이야기를 들으며 칭찬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헤맸고, 그것은 납득할 만한 칭찬이 되어야 했다. 엄마들도 아이에게 칭찬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수용은 더 어려운 일이었다. 1회 강의를 하는 2시간 동안 반 이상은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경청하고, 녹취록을 들여다보는 반복 과정을 통해서 엄마들에게 어떤 행동을 하라고 지시하기보다는 지금 그 자체를 인정한 상태에서 변화할 수 있는 부분을 천천히 찾아보았다.
엄마들은 일반적인 부모들과 같이 아이에 대해서 아쉬운 점과 부정적인 점을 자주 이야기하였지만, 수용과 칭찬의 훈련을 통해서 아이를 그 자체에서 바라보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 이 부분이 가장 뿌듯하다.
<!--[if !supportEmptyParas]--> ”엄마 출근하지 말고 일주일에 한번 배워오면 좋겠어”
<!--[if !supportEmptyParas]--> 나름대로 강의 평가를 하는데,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강의를 통해서 엄마와 아이들의 생활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확인한다. 아이와 함께 책 읽는 시간이 생겼고, 가까워지게 되었다는 엄마의 말도 좋았지만, 엄마의 입을 통해서 듣는 아이의 반응에 관심이 많았다.
<!--[if !supportEmptyParas]-->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아이에게 직접 편지를 받았을 때였다. 6주 동안 인터넷 카페의 엄마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프로그램에서 한 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또박또박 편지를 써서 보내준 적이 있었다. 아이의 글 안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가장 좋았던 것은 “엄마랑 같이 해서”라는 부분이었다.
<!--[if !supportEmptyParas]--> 이번에 강의를 하면서도 엄마를 통해서 아이의 반응을 들을 수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공부하러 다니는 게 나은 것 같아. 엄마 출근하지 말고 일주일에 한번씩만 가서 공부하고 와.”
강의를 다녀올 때마다 엄마가 재미난 놀잇감을 가져오고, 사랑스럽게 대해서주고 이야기를 많이 들으니 아이 입장에서는 기분 좋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록 긴 시간은 아니지만, 온 신경을 다해서 관찰하고 경청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변화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강의가 끝났을 때 가족의 생활이 전과는 달라져 있었다는 모습을 확인하며 행복했다.
이 프로그램의 주요 전략은 엄마를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아이를 직접 상대하지 않고 엄마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이유는 엄마가 가족의 중심이며, 아이의 실질적인 보호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에 대한 사랑에 있어서 엄마만큼 강력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나의 역할은 조그만 사랑으로 엄마의 큰 사랑을 자극하는 것이다. 엄마는 아이에 대한 사랑과, 아이 교육에 대한 고민이 가득하다. 방법만 조금 알려주면 마음 깊이 끌어안고 바로 실천할 준비가 되어 있다.
아이가 달라지기 위해서는 부모가 달라지는 수밖에 없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기 때문에 아이가 이상행동을 보인다는 것은 부모의 어떤 행동에 대한 반응이거나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부모들은 대개 그것을 ‘원인’으로 오해하고 있다. 실제로 엄마들에게 아이가 실제로 느끼는 모습과 특징을 설명하면서 변화를 자극시켰더니 가족의 생활이 달라지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다. 부모가 달라지지 않았는데 아이가 달라지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그것을 바라는 것은 그야말로 ‘요행’이다.
정말 사람의 일은 사랑밖에 답은 없다.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을 남김없이 주어야 움직인다. 마음이라는 녀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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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치료, 놀이치료, 독서놀이
독서치료는 독서의 힘을 통하여 사람의 심리, 정서, 부정응 문제 해결을 돕고자하는 임상학문이다.
독서치료와 함께 놀이치료, 미술치료는 최근 더욱 각광을 받으며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일종의 응용 심리치료라고 할 수 있다. 이 치료방식의 공통점은 매개물이 있다는 점이다.
독서치료는 책, 미술치료는 그림, 놀이치료는 놀이(또는 장난감)를 이용해 심리치료를 한다. 그리고 ‘놀이’의 성격을 띠고 있는 점도 인상적이다.
치료를 수행하는 치료사와는 달리 치료를 받는 내담자의 입장에서는 노는 것이다. 책 읽으며 놀고, 그림 그리며 노는 모습을 관찰해 치료에 적용한다.
무엇보다 이들의 명백한 공통점은 ‘치료’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치료는 치료의 대상, 즉 환자를 상정한 개념이다.
독서치료 커뮤니티 내부에서도 심리치료의 무거운 느낌을 지우기 위해서 놀이의 성격을 가미하려고 하지만, 치료라는 본질적인 성격은 달라질 수 없다.
독서치료와 독서놀이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심리치료와 심리학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심리학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에 의해 학문으로 정식화된 태생적 배경 때문에 심리치료의 성격이 강했다. 20세기 심리학의 주요한 특징이기도 했다.
하지만 21세기 심리학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며 매우 다양한 영역에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가장 주요한 특징은 치료에서 자유로워지고, 인간의 발견이나 자아실현 같은 비전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미 교육이나 비즈니스, IT 분야 등 사회의 주요 분야는 심리학이 지적 토대가 되고 있다.
심리학자 중에서도 21세기 심리학자라고 평가받는 에이브러햄 매슬로(Abraham Harold Maslow, 1908~1970)는 이런 흐름을 가장 먼저 포착한 사람이었는데, 그가 활동하던 당시 주류를 형성하던 심리학이 병리적 관점을 남용하는 모습을 비판하였다.
나는 고전적 프로이트학파를 비판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 건강한 쪽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인간의 가능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모든 것을 갈색 안경을 끼고 보기 때문이다.
- 매슬로
20세기 중엽 미국 심리학계의 흐름은 크게 프로이트와 융으로 대표되던 정신분석과 파블로프와 왓슨으로 대표되던 행동주의로 나뉘어 있었는데, 정신분석과 행동주의는 인간의 특정 측면을 일방적으로 강조함으로써 인간의 진정한 가치를 축소하고 왜곡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곧 정신분석에서 인간은 성적 충동과 무의식에 사로잡힌 비합리적인 동물로 묘사되었으며 행동주의에서 인간은 환경 자극에 반응하는 동물에 지나지 않았다.
동물심리학과 행동주의는 인간이 결핍욕구에 의해서 움직인다고 주장했다. 프로이트 역시 인간의 충동을 위험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심리학의 맹점은 아픈 사람들의 경험이나 자신들의 욕구 불만 등 심리적으로 좋지 못한 경험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기초 위에서 인간을 바라본다고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아찔한 일이다.
인간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갈색 안경도 아니고 투명 안경도 아니고 선명한 눈으로 직시해야 한다.
도시 창조성 분야의 권위자이자 캐나다 토론토대학 경영대학원 교수인 리처드 플로리다는 대한민국에 ‘창의적 인재’에 속하는 사람이 400만명(전체 근로자의 20%) 밖에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최고 수준인 아일랜드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
세계적 석학이자 미래학자인 자크 아탈리 또한 “한국은 상당히 오랫동안 자력으로 창조적 계급을 키우거나 외부로부터 이들을 받아들이는 데 실패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야말로 창의적 인재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우리의 교육, 심리학과 연관된 중요한 문제다.
우리의 교육시스템은 자아나 인격의 완성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쓸 만한 일꾼을 관리하는 시스템에 가깝기 때문에 프로이트와 파블로프 심리학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독서치료 역시 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독서치료가 ‘치료’에 치우칠 경우 독서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순기능을 해칠 수도 있기에 위험성은 크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마음의 양식인 소중한 책이 가치 있게 쓰이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이러한 심리학적 편견에서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독서놀이가 탄생했다.
독서놀이의 맛
인생을 먼저 살다 간 선조들이나 그보다는 좀 젊은 축인 선배들의 삶의 흔적을 보면 놀다 간 듯한 느낌을 받는다. 천상병 시인이 말년에 쓴 시 귀천(歸天)만 봐도 그렇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천상병 ‘귀천’ 전문
동양의 대스승인 공자 역시 말년에 제자들과 대화를 하면서 가슴에 품은 뜻을 이야기하면서 ‘노는’ 이야기를 한다.
증석이 말했다. “봄이 되면 겨울옷을 간편한 봄옷으로 갈아입고, 농번기가 지나면 어른 대여섯 명과 아이들 예닐곱 명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대에서 바람을 쐬고 흥얼거리며 돌아오겠습니다.”
공자께서 감탄하면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도 점과 함께 하고 싶구나!”
- 논어11-25
어찌 천상병 시인과 공자만 노는 것을 이야기했을까? 한 세상 재미있게 놀다가 가는 것은 우리네 삶의 소박한 꿈이었다.
우리 민족은 놀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어떻게 하다가 공부나 스펙쌓기, 돈 벌어오기 같은 삭막한 환경에서 살아가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몸에 있는 ‘놀이 유전자’는 언제든 놀 준비가 돼 있다고 믿는다.
독서놀이는 책을 가지고 논다고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고, 참여하는 사람은 일생의 벗인 가족이다. 독서놀이를 통해서 마음의 병을 치유하거나 불안이나 스트레스 등을 제거하는 치료의 성격을 분명히 가지고 있으나, 그것은 부분에 불과하다.
치료의 성격이라면 책보다는 오래된 친구들을 만나서 한동안 수다를 떠는 게 더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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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를 다스리는 넋과 정신을 다스리는 넋을 몸에 실어 하나로 하되 서로 헤어지지 않게 할 수 있겠느냐? 숨을 오로지 하여 부드러워지되 젖먹이처럼 할 수 있겠느냐?
- 노자, <도덕경> 10장
어린이의 재발견

“부모형제들에게 총뿌리를 대지 말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경찰의 무차별 발포에 항의하는 서울 수송국민학교 학생들. 4.19 당시에 대대적인 어린이 투쟁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사진출처 :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웅진지식하우스))
3.1운동을 주도한 유관순 누나의 당시 나이는 17세였고, 4.19혁명에서 대활약한 것은 중학생이었다. 심지어 초등학생까지도 적극적으로 투쟁에 나섰다는 역사 기록도 많이 있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님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끝까지 부정선거 데모로 싸우겠습니다. 지금 저의 모든 친구들, 그리고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들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하여 피를 흘립니다. 어머님,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시옵소서. 우리들이 아니면 누가 데모를 하겠습니까.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압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 (4월 19일 시위 중 숨진 한성여중 2학년 진영숙양)
- 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어린이가 그야말로 ‘애 취급’을 받은 것은 최근의 일이다. 우리는 어린이였던 시절이 없었다는 듯이 어린이를 잊어버리진 않았을까? 그야말로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 하는’ 것처럼. 뇌과학의 관점에서 어린이를 보면 그야말로 한 사람의 존재가 만들어지는 다시 올 수 없는 시절이다.
두뇌의 발달은 매우 복잡한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지만 실질적으로 외적 자극을 통해서 생성된 신경 전달 물질와 함께 신경접합부의 증가가 주된 요인이다. 새로운 접합부는 매번 새로운 행위를 습득하거나 중요한 사실을 저장할 때 생겨난다. 새로운 행위를 하지 못했을 때는 생겨나지 않거나 죽어버린다는 뜻이다.
어린이에게 ‘새로운 일’이란 ‘재미있는 일’을 뜻한다. 아이의 눈이 초롱초롱해질 때를 상상하면 될 것 같다. 이렇듯 신경세포가 새로 연결되면 뇌는 크기와 무게 면에서 말 그대로 성장을 하게 된다.
불행하게도 이 신경접합부는 아이가 자랄수록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해서 청소년기가 끝날 무렵에는 절반 정도가 없어진다. 접합하지 못한 뉴런은 그냥 죽어버리고, 이제까지 경험했던 정보들이 주축이 된 남아 있는 연결 부위는 습관적으로 굳어져버린다.
이는 만약 아이가 다른 아이를 무시하는 행위 같은 부정적인 행동을 발달시키면, 초기에 수정하지 않을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교정을 하기가 힘들어진다는 뜻이다.
역사와 철학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도 어린이는 대단히 중요한 존재다. 현대사에서 어린이가 했던 역할도 중요하지만 세기의 지성들이 어린이를 비유한 것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앞서 소개한 노자뿐만 아니라 맹자도 “대인이란 그 어릴 적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이루하 8-12)라고 하여 어린이의 마음을 강조했다. 예수 그리스도 역시 어린이를 강조했다. “만약 너희가 어린이처럼 되지 않는다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지 자신을 낮추어 이 어린이처럼 되는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가장 위대하다.”라고 말했다.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는 “천재란 마음껏 되찾은 어린 시절에 지나지 않는데, 이는 스스로를 표현하기 위해 이제 튼튼한 기관과 제멋대로 축적된 재료들을 모두 정리해 주는 분석적 정신을 갖춘 어린 시절”이라고 말했다.
어린이는 우주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다. 그것을 알맹이에 비유한다면, 알맹이를 담을 그릇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이 이성이다. 즉, 우주적 감수성을 우주적 이성에 담을 수 있느냐 하는 질문에 우리의 미래가 달렸다.
달리 표현하면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 번째 선택은 새로운 인간형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어른들과는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게 되는 인간형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어른들의 사고방식을 시한부로 설정하고 접근하는 방식이다. 이 때는 어린이가 매우 소중한 존재가 된다.
다른 선택은 어른의 복제물로 만드는 것이다. 어른들이 배웠던 가치들을 우리의 어린이들에게 그대로 전수해주는 방식은 한마디로 우주적 감수성을 이성이라는 냉장고에 담는 것처럼 무리한 일이다. 이 때는 어른이 매우 소중한 존재가 된다.
이제까지 우리가 선택한 방식은 후자였다. 이 방식은 싸움이 많아지고, 슬픈 일과 억울한 일이 많아진다. 한 가지 상황만 생각해보면 된다. 세상 사람들이 고통에 시달리고 있고 그 고통이 점점 더 커지고 있을 때, 이것을 지켜보는 사람이 어린이의 심성을 가졌다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든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았을까?
우리 사회도 자본의 그림자가 밀려들면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이것을 바라보는 어른들은 마치 육교에서 동냥하는 사람을 보는 것처럼 싸늘한 눈빛을 보낸다.
어린이를 바라보는 올바른 관점
문명을 통해 수의 역사를 살핀 <숫자의 탄생>을 쓴 조르주 이프라라는 수학자는 아이들이 물어보는 수에 관한 천진난만한 생각들을 무시하지 말고 귀를 기울이면 수학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어린이와 제대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만 하지 않으면 된다. 어린이를 가르치는 대상으로 보던 습관을 버리는 것이다. 어린이를 가르친다는 것은 자신과 똑같은 복제품을 만들겠다는 의미가 어느 정도는 깔려 있다.
우리는 전혀 다른 미래를 앞두고 있다. 기술이나 문화, 지식 등 모든 방면의 차이는 줄어들고 있으며, 이와 함께 어른들이 금과옥조처럼 생각했던 가치와 상식들이 재빠르게 폐기되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 아이에게 어떤 가치나 원칙들을 강요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지금 당신이 소중하게 지키는 가치가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될지 물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철학자들이 하는 농담 중에서 “샤르트르가 만일 아이를 낳았다면 세계 철학사가 달라졌을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어른의 눈으로 바라본 실존주의라는 철학에 생명과 아이의 눈을 접목시켰다면 철학의 색깔이 어떻게 펼쳐졌을까 하는 물음이다.
첫째 민준이를 낳을 즈음 노자를 집중적으로 반복해서 읽었다. 이전에도 노자를 몇 번 읽었지만 아이와 함께 깊이 읽고 싶었다. 만물이 태어나고 자라는 모든 이치는 어린아이를 닮아 있다는 메시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 속에서 나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내가 어머니들을 만나서 아이에 대한 독서지도 교육을 시작한 지 만2년째 되는데, 이 역시 민준이를 낳고 나서 달라진 인생의 일 부분이다. 단지 관념적인 사유와 아이의 탄생이라는 사건 때문에 생각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여러 해 동안 초․중․고등학교 아이들과 만나며 논술지도를 했던 경험과 수년 동안의 시민단체 활동과 기업가로서의 활동, 그 동안 만난 많은 사람들에게 받은 영향 등을 종합해서 내린 결론이자 실천이다.
故이오덕 선생은 “그 천진난만함과 완전한 것에 이를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아이들이 끊임없이 태어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무서운 것으로 되어 버릴까?”라고 말했다.
우리가 어리석은 역사를 반복하는 까닭은 어른의 시선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어른의 시선이란 편가르기, 한계 정하기, 관습에 복종하기 따위다.
만약 우리가 어린이를 관찰하고 어린이의 말에 귀기울이는 능력을 갖게 된다면 지금 우리가 생생히 목격하고 있는 “무지의 윤회”를 끊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메모리딩 독서놀이 프로그램에 부여한 문제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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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과 책 한권, 그리고 아이들의 마음만 덜렁
어른들은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함께 있고 싶어서 그러는 건데
언제나 혼자이고 외로운 우리들을 따뜻하게 감싸 주세요
- 동요 <어른들은 몰라요> 노랫말
두 살, 네 살배기 아들들을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동요를 자주 듣게 되는데, 아주 익숙한 동요이지만 노랫말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특히 <어른들은 몰라요>의 노랫말은 가슴이 아프기까지 하다. 아이와 부모를 보면 ‘동상이몽도 이런 동상이몽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독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아이들의 생각을 엿볼 기회가 많았는데, 그 때도 이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메모 리딩’ 프로그램은 일종의 독서 놀이인 셈인데, 아이를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지금까지의 교육은 다분히 부모가 주인공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감정이입을 하기 위해 애썼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도윤이’라는 친구(만5세)에게 편지를 한 장 받았는데 대부분의 어린이가 가지고 있는 마음이 표현되어 있었다. (그림 2-1참조)
특히 “구몬은 나 혼자 해야 하는데 이건 엄마랑 같이 해서 정말 즐거웠어요”라는 부분을 읽을 때는 기쁘기도 하고 가슴 아프기도 했다.
내 조카의 독서록이 생각났다. 얼마 전 조카의 집에 갔을 때 조카의 책상 위에 독서록이 놓여 있었는데, 엄마는 독서록 작성을 했는지 계속 확인을 했다. 이 일을 떠올리면서 독서록을 작성하는 조카에게 감정이입을 해보았다. 아래는 조카의 입장이 되어 써본 글이다.
이번에는 <강아지똥>을 읽게 되었다. 동화를 읽는 것은 재밌지만 독서록을 쓸 생각을 하니까 답답하다. 솔직히 아직도 독서록을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친구들의 독서록을 봐도 그저 그렇다. 독서록의 빈칸을 혼자서 채워야 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막막하다.
메모리딩 프로그램을 하면서 아이의 독서교육할 때의 고민을 써달라고 엄마들에게 요청했는데, 대부분은 “우리 아이가 책 읽기도 좋아하고 글밥도 제법 생겼는데, 독서력이 높아졌는지는 잘 모르겠어요”였다.
독서에 재미를 붙여서 책을 놓지 않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의미’가 있는지 걱정하는 것이다. 부모들은 대개 재미와 의미를 구분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많았다. 부모님들의 이런 생각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부모님 자체가 빠져 있거나 깊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동화는 원래 ‘가족 독서용’
동화의 고향인 독일 이야기를 해보자. 동화의 원조 격으로 추앙받는 것은 그림 형제(독일의 형제 작가, 언어학자. 형은 야콥(Jacob Ludwig Carl Grimm, 1785-1863) 동생은 빌헬름(Wilhelm Carl Grimm, 1786-1859))가 편찬한 <그림 동화책>이다.
그림 형제는 독일이 자랑하는 언어학자이자 사전편찬자였다. 형제는 독일의 정체성을 오롯이 모아내기 위해서 흘러 다니는 옛 이야기를 집대성해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동화 모음>을 편찬하였고, 아울러 독일어 사전을 편찬했다.
작품집에는 200여 개의 동화가 소개되었는데, 제목과 같이 어린이만을 위한 작품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읽는 것이 ’동화’의 진면모다. 때문에 독일에서는 ’동화읽기 방법론’이 크게 발달돼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제목에 담겨 있는 ‘가정’이라는 단어다. 동화책이 우리나라에 ‘번안’되어 소개될 때는 바로 ‘가정’이라는 개념이 사라져 버렸다.
그림 동화에는 인간사의 거의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다.꿈과 성공, 성장, 사랑도 있지만 배신, 질투, 살인 등 어두운 부분도 많이 있다. 동화책을 읽는 연령대의 아이들도 인생과 세상의 ‘맨얼굴’을 어느 정도는 알 필요가 있다는 취지이다.
이 이야기가 바다 건너 우리나라에 오면서 맨얼굴이 사라지고, 어른들이 보여 주고 싶은 모습만 남게 되었다. 바꿔 말하면 우리나라에 소개된 동화는 어린이의 것이 아니라 ‘어른의 것’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예컨대 ‘백설공주’가 어떤 식으로 왜곡되었는지 살펴보자. 원래 제목은 <슈네비츠현(Sneewittchen)>인데, 여기서 Snee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 witt는 하얗다는 뜻, chen은 자그마하다는 뜻으로 이루어진 옛 독일어다. “하얀 눈 아이”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즉, ‘백설’은 틀리지 않지만, ‘공주’는 전혀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 소개될 때 왜 <백설공주>로 이름이 바뀌었는지 조사해 보았다. <하얀 눈 아이(Sneewittchen)>는 일본어로 <시라 유끼 히메>(白雪姫, しらゆきひめ)라고 하는데, 시라는 ’희다’ 유끼는 ’눈’, 히메는 ’공주’를 뜻한다. 이것을 놓고 보면 동화의 원래 취지와도 상당히 멀어졌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는 지식과 문화에 있어서는 아직도 일본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뇌 과학과 아동심리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현대의 뇌 과학과 아동심리 연구의 결과물들을 보면 당시 그림 동화가 얼마나 과학에 기초한 올바른 관점이었는지 알 수 있다.
아동심리학자이자 언어학자인 앤 덴스모어 박사와 하버드대학교 신경학자이자 소아과 의사인 마거릿 바우만 박사는 수십 년에 걸친 연구 결과와 다양한 치료 사례를 통해 연구한 결과보고서인 하버드대학교 성장발달 연구 프로젝트 보고서 <사회성 발달 보고서>(지식채널)를 보면 아이의 연령별 성장 상태가 기록되어 있다.
연구에 따르면 한 돌만 지나도 아이들은 이미 분노, 슬픔, 즐거움, 두려움, 흥미, 놀라움 등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생의 두 번째 해에는 죄책감, 부끄러움, 난처함, 자부심 등을 드러내는 것이 가능해진다. 걸음마 단계의 아이는 자신의 감정과 상황적인 맥락을 연결시킬 수 있게 된다.즉,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지 알게 되어 그 행복감을 모방하기도 한다.
만 세 살이나 다섯 살의 사이의 아이는 우정을 형성하고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운다.
만 네 살이 되면 다른 아이의 감정을 알아차리기 시작하고, 자신도 같은 정서로 반응할 수 있다. 하지만 과민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대신 또래 친구의 정서 상태에 적응함으로써 관계를 맺어간다.
- <사회성 발달보고서>, 71면
이것은 아이를 직접 키우지 않거나, 키우더라도 가까이 두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지 않으면 좀처럼 알기 어려운 사실이다. 이런 과학적 연구 결과에 따라 메모 리딩 프로그램은 만5세에서부터 적용하고 있다. 만5세는 한마디로 ‘알 만한 것은 알 나이’인데 어른들은 너무 어리게만 바라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종합하면 아이들에게 독서교육을 시키는 부모의 바른 자세를 알 수 있다. 아이가 읽는 책에 대해서 부모가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함께’ 읽는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보물선>이라는 이야기처럼 아이는 주인공인 ‘배’, 부모는 배를 띄우는 ‘바다’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부모의 적극적 개입은 아이의 독서력을 망치는 주범이 될 수 있다는 점은 교육자와 아동심리 전문가들이 줄곧 경고하고 있다.
바다처럼 넓은 품으로 아이를 끌어안기 위해서는 부모가 아이보다 더 책을 많이 읽고, 아이가 하는 말에 온 신경을 집중해서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다음 이야기에서 다룰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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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들이 아이를 바꿔서 가르친 까닭
우리나라의 부모들은 육아에 매우 관심이 많았다. 성현들의 문집을 읽어도 아이의 교육에 무척 신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친히 자식을 가르치지 않고 교자(交子)라는 독특한 육아를 했는데, 이 전통은 <맹자>(孟子)라는 책에 보인다.
맹자는(孟子, 기원전 372년?~기원전 289년?)는 공자의 사상을 이어 발전시킨 유학자인데, 중국을 돌아다니며 유교의 사상인 왕도 정치(인(仁)과 의(義)를 기반으로 한 유교의 이상정치)를 설파하다가 여의치 않자 만년에 같은 이름의 책 <맹자>를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맹자가 저술된 것은 맹자의 생애 말년부터 사후에 이르기까지 제자들에 의해서 수정이 이루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금으로부터 2,400년 정도 전에 쓰여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육아에 대한 고민이 2천여 년 전부터 깊이 있게 다루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육아의 고민이 담겨 있는 구절을 옮기면 아래와 같다.
공손추(맹자의 제자)가 물었다. “‘군자는 자기 자식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하던데 무슨 뜻인가요?”
맹자가 말했다.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사람은 반드시 정도로 해야 하는데, 정도로 해서 실행이 되지 않으면 화를 내게 된다. 화를 내면 도리어 마음을 다치게 된다.
아이는 ‘아버지가 나를 정도로 가르친다고 하지만, 아버지도 때로는 바르게 실천하지 못할 때가 있는걸 뭐.’ 하면서 아버지와 자식이 서로 헐뜯거나 마음이 상하게 된다. 이것은 무척 안 좋은 일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자식을 바꿔서 가르쳤는데,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책망하지 않았다. 책망을 하게 된다면 서로 멀어지고, 서로 멀어지는 것만큼 불행한 일은 없다.”
- 맹자, 이루 상 18장
연애를 통해 결혼에 골인한 부부가 있다고 하자. 연애할 때는 그렇게 예뻐 보였던 배우자가 결혼을 하고 나니 그렇게 싫어 보일 수가 없다.
왜 그럴까? 연애할 때와는 달리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면서 좋은 모습 안 좋은 모습을 모두 보게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쓸데없는 지출을 하지 않는 사람은 알고 보니 구두쇠였다거나, 꼼꼼한 사람이 알고 보니 결벽증이 있다거나, 자유분방한 사람이 알고 보니 자기 관리와 정리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연애할 때는 정보의 일부만 서로에게 보여주기 때문에 좋은 점만 보게 되지만, 결혼해 같이 살면서 정보의 나머지 부분을 다 보면 자연스럽게 싫은 점을 더 많이 보게 된다. 이렇게 해서 마음이 상한다. 만약 부부가 서로 떨어져 있거나 주말부부로 살아간다면 상대방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생기기 쉬운 것도 이 때문이다.
이것은 정보의 노출, 그리고 정보의 차단과 관련이 있다. 2천여 년 전의 부모들은 바로 이 점을 고민했다.
남의 아이는 그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울 수 없는데, 우리 자식은 왠지 못나 보이고 답답하고 걱정이 앞서는 것도 아이에 대한 단점 정보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이가 부모님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너무 많이 안다는 것이 소통을 차단하는 경우가 있는데, 부모와 자식이 꼭 이와 같다.
부모님들께 강의를 하거나 일대일 첨삭을 할 때 아이가 글을 쓴 것만 보고 어떻게 아이의 성격과 특징을 정확하게 집어내느냐고 질문하시는 엄마들이 많다. 아이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게 엄마이므로, 엄마가 대개 아이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 나는 오히려 아이와 일면식이 없는 상태에서 아이의 말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엄마가 못 본 것을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아이가 쓴 글 등 한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엄마보다 아이의 글에 더 귀를 기울이고 반복해서 보기 때문에 엄마가 못 잡을 것을 잡을 때가 많은 것이다.
오랫동안 시간을 보냈다고 해서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모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자식을 바꿔서 교육시킨 까닭은 스승의 가르침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친구인 스승님에게 정해진 시간에만 가르침을 받고 생활을 함께 하지 않기 때문에 정보가 차단된 상태에서 가르침만 받게 된다.
이것은 부모에게도 무척 효과가 있다. 스승의 가르침을 예로 들면서 자식에게 이야기하면 자식이 많은 정보의 양으로 인해서 자식이 부모에게 섭섭한 마음을 가질 가능성을 차단하는 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2천여 년 전에 아버지들이 했던 육아 고민을 이야기한 까닭은 지금의 부모들에게도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서로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서로 이해하고 재미있게 활동하면서 배울 수 있는 방식은 바로 ‘놀이’다.
놀이의 신비한 힘
사람이 태어나면 오랜 시간 동안 생리 작용(먹고, 자고, 배설하고)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놀이를 하며 보낸다. 삶 자체가 놀이인 시간은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되는데, 초등학교 저학년 때도 대부분의 시간은 놀이를 한다.
놀이는 아이들의 언어이고, 숨쉬기와 같다. 아직 언어능력이 발달되지 않은 6~9세 아동들은 주로 놀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마음을 표현한다. 즉 부모는 적절한 놀이대화를 통해 아이의 심리와 생각, 감정을 읽어내고 어루만져줄 수 있다.
놀이가 아동의 인지적, 육체적, 사회적, 정서적 발달에 기여하기 때문에 특히 두뇌발달에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아이는 놀이를 하면서 상상력, 손재간, 그리고 육체적, 인지적, 감성적 능력을 키우고 개발할 뿐 아니라 창의력도 개발할 수 있다.
놀이는 이런 효과 이외에도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 놀이를 좋아하고, 심한 경우 놀이에 빠져드는 것도 바로 이런 신비한 힘 때문이다. 놀이는 정해진 룰에 따라 목표를 성취하는 과정이다. 놀이를 하는 동안 아이들은 서로 소통하고 팀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려고 한다.
아이들이 축구를 할 때 선 밖으로 볼이 넘어가면 공을 상대편에게 준다. 농구를 할 때도 룰을 어기거나 선 밖으로 공을 내보내면 상대편으로 공을 준다. 이것은 게임이 가지고 있는 룰이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친구가 자신의 볼이 선 밖으로 넘어갔는데 볼을 양보하지 않고 고집을 부리면 어떻게 될까? 놀이에서 배제될 것이다. 아무리 힘센 아이라도 룰을 어기는 일은 감히 하지 못한다.
놀이,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다가가는 방법
요새 부모들의 큰 걱정은 바로 게임과 스마트폰이다. 아이들이 게임에 빠져서 하루 종일 하는가 하면, 스마트폰에 빠져서 공부도 안 한다고 성화다. 이런 부모님들에게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 중 하나는 게임에 대해 지레 겁을 먹는다는 점이다.
어쩌면 아이와 소통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될지도 모르는데, 무조건 배척하기 때문에 아이와 갈등은 더욱 심해진다.
독서놀이는 실제 게임에 빠졌던 경험과 부모님들과 함께 고민하고 실제 해봤던 사례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아이들에게 ‘놀이’는 일종의 언어와 같다. 부모님이 놀이라는 형식을 익힐 수 있다면 아이와 훨씬 좋은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 책을 싫어하는 아이들은 대개 ‘읽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책을 ‘꼭 읽어야 할 것’으로만 봐야 할까? 책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재미있게 놀 수 있다.
예컨대 게임 아이템을 이용해서 반의 수학시험을 끌어올린 지혜로운 선생님의 방법을 살펴보자.
선생님 : 얘들아, 너희가 게임을 잘 하기 위해 아이템을 모으지? 수학의 단위도 아이템을 모아야 더 큰 단위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단다. 너희는 ㎡는 잘 알 거야. 그런데 다음 레벨인 a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 아이템 100개를 모아야 해. a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 아이템 몇 개를 모아야 한다고?
아이들 : 100개요.
선생님 : 좋아. 다음에 a에서 그 다음 단계인 ㏊로 올라가기 위해서 또 아이템 100개를 모아야 해. 이해되니?
아이들 : 네.
선생님 : 몇 개라고?
아이들 : 또 100개요.
선생님 : 그래서 1a=100㎡ 이렇게 쓸 수 있어. 그러면 2a=( )㎡에서 ( ) 안에 들어갈 아이템의 개수는?
아이들 : 200개요.
선생님 : 좋아. 이번에는 좀 어려우니까 잘 생각해야 해. 그럼 ㎡에서 ㏊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개의 아이템을 모아야 할까? 200개일까? 10,000개일까?
아이들 : 10,000개요.
- 『엄마가 함께 하는 독서치료』(푸른책들, 2009)
놀이를 하는 동안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된다
앞서 소개했던 2천여 년 전의 육아와 놀이를 연결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비록 상대가 부모님이라고 하더라도 놀이를 할 때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엄마 아빠가 아니라 팀원으로서 가족을 대한다. 놀이와 게임에는 풀어야 할 문제가 있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협력을 해야 하는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팀원은 애착을 갖게 된다. 놀이를 하는 과정에서 서로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서로 이해를 하게 된다. 특히 놀이의 과정 속에서 평소에 자신의 걱정이나 고민, 생각의 변화를 알아낼 수 있다.
앞서 조상들은 자식을 바꿔 가르치면서 ‘정보의 차단’ 효과를 봤는데, 아이와 놀이를 하는 부모는 일종의 ‘전혀 다른 정보’ 효과를 누리게 된 셈이다. 뿐만 아니라 교자(交子)의 경우 가족이 함께 하지 못한다는 문제점이 있었지만, 놀이에서는 부모와 아이가 함께 하기 때문에 더욱 효과적인 탐구를 할 수 있다.
독서놀이를 함께 했던 부모들은 평소에는 알지 못했던 아이의 잠재력과 능력을 볼 수 있었고, 아이가 평소에 하던 고민들을 더욱 가까이서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부모가 조금만 뒷받침을 해주면 어느새 놀이를 주도하며 숨겨졌던 역량을 마음껏 뽐내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이런 효과를 볼 수 있었던 것은 단지 ‘놀이’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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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은 자녀 때문에 고민이 많다. 특히 자녀의 학습에 관해서 고민이 많아 보인다. 하지만 엄마들의 진짜 고민은 자녀가 책을 통해서 세상을 이해하고 인성을 길렀으면 하는 점이다.
공부는 그 다음이었다. 조금 소박하게 말하자면 ‘책을 사랑하는 아이’로 자라났으면, 조금 더 욕심을 부린다면 ‘책을 제대로 읽는 방법’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부모님들과 공부를 할 때는 항상 첫 시간에 부모님들의 고민을 차분히 들어 본다. 대개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를 둔 부모님들이 많았는데, 절실한 고민들을 가지고 있었다. 엄마들의 고민들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마인드맵으로 그렸고(그림), 이를 바탕으로 소개를 한다.

노원에 사는 10여명의 엄마들과 함께 자녀 독서생활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나온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린 마인드맵. 맨 위에 적은 원 안의 번호는 아래 어머니 자녀가 한 말이다. 번호를 맞춰보면 된다
최OO 어머니는 두 돌, 여섯 살, 아홉 살 아이를 두고 있다. 여섯 살, 아홉 살 아이는 책을 좋아하는데 책을 잘 읽고 있는지 어쩐지 잘 모르겠다는 게 최대의 고민이다.
큰 아이는 눈 뜨면 책 읽고 하루 종일 책 읽고 쌓아 놓기는 하지만 내성적이어서 “재밌었어?” 물어보면 “응, 재밌었어.”라고 싱겁게 대답하고 만다.
반면 둘째 애는 잘 모르지만 이야기를 열심히 한다. 어느 날 아이가 엄마와 길을 가다가 “바오밥 나무를 다 잘라버릴 거야!”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왜?” 하고 물었더니 “바오밥 나무가 지구를 다 삼켜버리면 어떡해?”라고 말했다고 한다. <어린왕자>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는데, 이 일을 겪으면서 어머니는 아이가 읽는 책을 같이 읽어야 대화가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지만 잘 읽고 있는지는 모르겠고 괜히 독서량만 많은 것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초등학교 1학년(딸)하고 6살(아들)을 키우는 박OO 어머니의 큰딸은 책을 즐겨 읽는다. 새로운 책을 읽기를 좋아하지만 두 세 번 본 책들은 더 이상 안 보는 게 걱정이다.
책을 골라주는 게 고민인데, 아무래도 학교나 출판사에서 제공되는 권장도서 목록에 의존하게 된다. 직접 책을 고르고 선택해주기는 여러 여건이 되지 않고 입소문이 나거나 검증된 책 중심으로 골라 주고, 혹시 원하지 않는 책이 없는지 확인하고 나서 읽힌다.
아이가 새로운 책을 좋아해서 책을 골라주고 2~3일 정도 관심도가 떨어질 것 같으면 책을 바꿔주는 식인데, 아이가 책은 좋아하는데 표현은 많이 하지 않아서 아쉽다. 다만, 독서를 좋아해서 지적 능력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은 받는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독서프로그램을 하는 데 아이가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 점도 걱정이다. 어머니 역시 스트레스를 덜 주려고 과제 부담 외에 따로 부담은 주지 않는 편인데, 요새는 그래도 재미 있다고 이야기해서 그나마 안심이 된다.
윤OO 어머니의 4학년 아이 역시 한 번 본 거는 다시 안 본다. 어머니가 책에 대해서 물어보면 ‘이거 알아’가 대답의 거의 전부다. 2~3학년이 읽는 책이 꽤 돼서 ‘이거 봤니’ 하면 봤다고 하고 또 책 내용을 문제로 내면 맞히기도 한다. 읽은 책에 대해서 다시 손을 안 대고 읽은 책에다 일명 ‘테이프 붙이기’를 한다. 책을 즐겨 보거나 하지는 않는 것 같다.
독서 편식이 심한 아이
6학년, 1학년 형제를 둔 손OO 어머니는 아이가 ‘엄마 나 이 책 사줘, 읽고 싶어’ 라고 이야기를 주로 하는 것이 아니고, 학교 숙제 때문에 읽어야 하는 책만 읽는다고 한다. 그 외에는 만화책을 많이 읽는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도 처음에는 좋은 책만 많이 읽기를 바라다가, 그래도 만화책이라도 뭔 책이든 많이 보면 되지 하면서 내버려 두게 된다. 권장도서 같은 경우는 두 시간 정도 읽으면 한권 다 읽는데, 독서 속도나 이해력이 떨어지는 것 같지 않지만 글쓰기의 내용과 깊이는 좀 부족한 것 같다.
이OO 어머니의 2학년 아들은 하루에 평균 한 시간 정도 독서를 하는데 편식을 해서 과학책만 읽는다. 위인전기나 동화를 읽으라고 하면 엄마가 시키니까 읽는 정도이고, 학교에서 독후감을 써서 제출하라는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참 헤맨다. 과학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학책 같은 경우는 10번도 더 보고 활용과 이해를 잘 한다. 작은 책자를 만들어서 글도 쓰고 잘 한다.
조OO 어머니의 2학년 아이는 그림 동화책을 너무 좋아했다. 2학년이니까 글밥이 좀 많은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추천해주고 했는데 아직은 시원치 않다. 일반적인 어린이들처럼 놀 거 다 놀고 먹을 거 다 먹고 나서 책은 맨 마지막에 읽는다.
책을 읽고 싶은 욕구는 굉장히 강하다. 나 이 책 읽어야 돼 하면서 하루에 10권 읽겠다는 목표를 정하고 읽는다. 지금은 학교에서 빌린 책, 재밌는 책(만화책) 등을 좋아한다. 조커라는 책을 빌려와서 저녁마다 읽어주고 있는 편이다.
윤OO 어머니의 6학년 남자 아이는 책을 반복해서 본다. <맹꽁이 서당> 만화책인데, 몇 년 동안 스무 번도 넘게 봤을 거다. 계속 그것만 본다. 다른 책 역시 재밌다고 생각하면 반복해서 보는 스타일이다. 요즘에는 학교 도서관에서 100권 읽기를 하는데, 불이 붙어서 매일 한권씩 읽으면서 도장 받는 재미에 읽는다.
책을 대하는 방식에서 엄마도 아이도 어색해
아이의 독서습관에 대한 여러 가지 고민 중에서 ‘독서 편식’과 ‘한번 읽고 다시 안 읽기’가 공통적인 고민이었다. 대부분의 가족이 그렇겠지만, 책을 ‘읽는 것’으로만 보기 때문에 좀처럼 접근 방법을 알기 어렵다. 만약 책이 읽어야 할 무엇이 아니라 읽고 싶게 만드는 무엇이라면? 아마 부모님과 아이도 책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한 번 읽고 다시 책을 쳐다보지 않는 아이는 호기심으로 책을 찾는 경우일 확률이 높다. 매번 새로운 책을 보면서 새로운 자극을 받지만, 자극이 끝나는 순간 다른 자극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책의 진짜 매력은 여러 번 보면서 내용을 음미하는 데 있다. 아이들 역시 어떤 것의 의미를 깊이 알면 알아갈수록 흥미를 느끼기 마련이다. “참된 이치를 깨달았을 때 느끼는 황홀한 기쁨”을 법열(法悅)이라고 하는데, 아이도 얼마든지 깨우치는 기쁨을 느낀다.
내게도 35개월난 아들 민준이가 있는데, 밖에 나가면 아이와 함께 개미를 관찰한다. 처음에는 뭔가 움직이는 게 신기해서 쳐다봤지만, 개미의 움직임이나 모습들을 자주 보면서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된다. 얼마 전 서로 개미집을 관찰할 때는 개미가 흙덩어리를 들고 들락날락하는 모습을 함께 지켜봤다. 그런데 개미를 자세히 보니 개미집 안의 흙덩이를 들고 밖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아이는 이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그리고 아파트 화단에서 봤던 개미는 자기 몸보다 훨씬 큰 먹이를 들고 먼 거리를 이동하고 있었다. 아이에게 이 개미를 보여주자 아이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부모님들은 아이와 함께 적극적인 독서활동을 하기 어려웠고, 책을 손수 골라주고 정성껏 함께 읽어주기도 어려웠다. 바쁜 현대 생활에서 아이의 독서생활을 정성스럽게 챙긴다는 게 쉽지는 않지만, 조금만 신경을 써서 관찰하거나 ‘함께 읽기’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먼저 아이에게 책이란 무엇인지 주의 깊게 살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예컨대 나의 17개월 난 아기 민서에게 책은 ‘먹을 거’다. 염소처럼 책을 뜯어먹기 일쑤다. 형 민준이는 요새 책을 좀 읽는 편이지만 얼마 까지 민준이에게 책은 ‘네모난 장난감’이었다.
내가 바라보는 책과 아이가 바라보는 책은 다르다는 사실을 안다면 아이의 독서 고민을 어느 정도 해결할 힌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부모와 아이가 책으로 놀 수 있는 ‘독서놀이’를 소개하려고 한다. 책을 ‘읽을 것’에서 ‘놀 것’으로 바꾼다면 아이와 부모에게도 참 재미있는 독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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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을 완전히 다시 겪는 기분이다”
- 조지 오웰
조지 오웰의 작품을 무척 사랑한다. 우리에게는 <1984>, <동물농장>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언론의 말장난과 스페인 내전을 다룬 <칼탈로니아 찬가>라는 자전소설과 <위건 부두를 떠나며> 같은 에세이까지 챙겨 읽었다.
그 중에서도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를 참 좋아하는데, 그 책에 1946년경 촬영된 한 장의 사진이 인상적이었다. 오웰은 어린 아들을 남겨놓고 부인과 사별하게 되는데, 입양한 아들을 포기할 것이라던 주위의 예상과 달리 헌신적으로 아이를 돌본다. 그리고 남긴 말 한마디는 오웰의 헌신적인 육아를 잘 설명해준다.
메모리딩 강의를 하면서 아이에게 읽은 책의 내용에 대해서 캐묻는 한 어머니의 경험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직접적으로 묻기보다는 제3자에게 대화하듯이 궁금한 감정을 표현하라는 주문에 대해서 어머니는 약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교육 방침이 오래 전부터 그랬고 지금도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변하는 게 가능한가요?”라고 물었다.
우리의 부모님들은 전쟁의 비참함을 겪으면서도 헌신적으로 돌보셨다. “내 자식은 나처럼 살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살림은 빠듯하고 아이들한테 들어가는 돈을 감당하려면 쉬지 않고 일해야 했다.
그래서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엄마의 엄마로부터 받아야 할 관심을 받지 못한 아이는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이렇게 말한다. “내 자식은 나처럼 살지 말았으면.” 메모리딩 강의에서 질문을 한 엄마의 걱정스런 눈빛에서 나는 이런 신호를 읽었다.
엄마의 세심한 관찰과 어루만져주는 손길, 그리고 세상에 대한 자상한 설명을 듣지 못한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서투르다.
심리치료사인 스캇 펙 박사는 대다수의 어른들은 심리적으로는 죽을 때까지 아이로 남아 있다고 한다.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건 일대 도약이 필요한데, 그런 위험을 감수하기 위해서는 결핍된 욕구들을 채워 넣어야 하고 안전에 대한 보장이 되어 있어야 한다. 이것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부모 밖에 없다.
매슬로의 욕구 단계 이론으로 보면 엄마의 엄마들은 아이들의 생존 욕구와 안전 욕구 등 초기 단계의 욕구를 책임지는 임무를 맡았다. 그리고 지금의 엄마들은 사회적 욕구나 자아 실현 욕구 같은 고차원적인 욕구를 책임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 시대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기회
아이는 나에게 찾아온 소중한 손님이다. 그런데 왜 찾아왔을까? 소중한 손님은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러 왔을까?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이런 궁금증이 생겼다.
이런 저런 책을 읽고 아이와 부대끼면서 얻은 결론은 “자기 치유의 기회”이다. 조지 오웰이 어린 시절을 다시 겪는 기분이 들었다고 했을 때 나는 그의 헌신적인 육아가 엄마의 엄마들이 보였던 헌신과는 다른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육아를 직접 해보면서 나는 아이에게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부끄러운 나의 모습이었다.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면 나에게 물려 받은 습성들 때문에 고통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덜컥 겁이 났다.
내 아이가 화가 나서 짜증을 낼 때, 마음에 상처를 받아 눈물을 흘릴 때, 두려운 상황을 피하려 뒷걸음질 쳤을 때, 동생을 밀치거나 때릴 때 나는 어떻게 아이의 마음은 어루만져주어야 하는지 모른 채 당황한다.
그런 행동은 ‘잘못된 것’이라고 똑같이 꾸중을 하거나 형으로부터 동생의 장난감을 빼앗아 돌려주는 따위의 행동을 하기 일쑤였다. 어릴 적의 나는 내 마음을 몰랐고, 지금도 역시 아이의 마음을 모른다.
아이를 키우면서 강하게 든 의문은 ‘내가 과연 심리적으로 건강한가’였다. 아이와 만나는 일상적인 상황에서 나의 서투른 행동이 아이에게 상처가 되고 안 좋은 감정이 생기게 하는 느낌이 자꾸 든다. 심리학 책을 열심히 읽으며 육아에 정성을 쏟은 까닭이다.
그런데 엄마들을 만났을 때 비슷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심리적으로 건강하지 못함. 팔이 다치거나 다리를 삐끗한 것과 달리 마음의 병은 쉽게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이 마음에 병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른 채로 세월을 살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자기 치유’였다.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독서놀이를 하면서 부모님은 유년의 모습을 보면서 치유를 하고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회복한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왜냐하면 교육은 반드시 심리적으로 건강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치유의 방법, 사랑
자기치유의 답이 멀리 있는 게 아니다. 35개월 된 아들 민준이에게 처음으로 고백을 들었다. 주말에 사무실에 출근하는 아빠를 보며 울음을 터뜨리더니 “아빠랑 놀고 싶은데 아빠는 밖에 나가버려”라고 말한다.
마음이 아팠다. 얼마나 아빠랑 놀고 싶었는데 표현을 못하고 마음속에 담아 두었을까? 이런 신호를 보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키즈 카페에 놀러 갔을 때 다시는 못 올 것처럼 정신 없이 노는 모습도 그렇고, 아빠가 늦게 오면 달려오면서 맞는 모습도 눈물 겨웠지만 아빠와 함께 하고 싶고 놀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뒤늦게 민준이의 마음을 알았지만 조금만 관찰하고 말을 걸면 아이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경청하기 연습이 필요한 시간이다. 심리학자들은 몰입과 경청을 주문한다.
만약 아이와 놀아주면서 반쯤 정신을 팔려 있거나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 아이는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성격이 될 위험성이 크다고 한다. 특히 유치원이나 초등학생 저학년의 경우 더욱 주의 깊게 경청해 주길 원한다.
물론 현실이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어떻게 할지 방법을 몰라서 쩔쩔 매는 경우도 많다.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을 하루 아침에 바꾸는 것이 힘들다는 것도 안다.
아이는 부모가 가까이 머물러주기를 간절히 바라는데, 부모는 아이가 무엇을 하는지 관찰하고 그들의 세상으로 들어가고 싶어 애를 태운다.
이 때 오랜 친구와의 대화를 생각해 보자. 10년 만에 만난 친구이지만 어제 만난 사람처럼 마음의 위로가 되고 어릴 적의 추억들이 한꺼번에 생각난다. 마치 구름 위를 뛰노는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다.
이 때 필요한 건 그저 짧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서 눈을 마주치고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이다. 아이와의 독서놀이도 이런 원리로 얼마든지 재미있게 할 수 있다.
메모리딩 강의를 듣는 한 엄마의 말처럼 돈 들여서 비싼 보드게임 사거나 주말에 미어터지는 에버랜드 같은 곳에서 시간을 빼앗기는 게 아니라 책과 함께 할 시간만으로 할 수 있는 독서놀이 활동으로 가족의 이야기꽃을 피우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아동전문가와 심리치료사들이 한결 같이 하는 말은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학교에 가서 친구를 사귀는 십대가 되면 부모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자체가 줄어든다. 만약 이 시간 안에 아이와 연대를 맺어 놓지 않으면 아이와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줄어든다.
아이들의 변화되는 모습을 보면 실감이 난다. 태어나서 처음 만나고 자신에 대해서 모든 것을 책임져 주는 부모는 아이들에게 부모란 세상의 전부다.
아이들은 다른 부모가 자신의 부모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 부모가 하는 방식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엄마와 아빠가 싸움을 할 때는 하늘이 흔들리는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한다.
부모가 지시를 하면 처음에는 반항을 하다가 체념해서 고분고분하게 행동한다. 그러면서 마음속에 울분을 감추어 두고 있다. 이 보이지 않는 상처가 무서운 것이다. 십대가 되기까지는 대개 부모가 아이를 다루는 자신만의 방법을 알게 되고 효과도 본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가 문제다. 계속해서 성숙하고 달라지는 아이의 요구에 적응하지도, 아이에게 영향을 주기도 어려워진다. 결국 좋은 부모로서의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아이를 강압적으로 키우는 부모의 경우느 더 심하다. 어렸을 때는 아이가 공격적인 행동을 하더라도 힘으로 제압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청소년이 되면 부모보다 체격조건이 커지고 힘도 세지게 돼 부모가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이 때 계속 힘으로 제압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한다면 청소년이 된 아이가 도리어 부모를 힘으로 이기려 하거나 최악의 경우 부모를 구타하는 등의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고등학교 다닐 때 한 친구를 알게 되었는데, 1학년 때부터 친해져서 집에도 놀러가는 사이가 되었다. 2년이 지나고 고3 때 다시 친구 집에 놀러 갔었는데, 친구가 자기 방에서 담배를 뻑뻑 피고 듣기 민망할 정도로 부모 욕을 입에 달았다.
참 황당해서 다시는 그 친구를 보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친구만의 잘못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욕망(욕구불만)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잠시 흐르지 못하게 할 수는 있지만 결국 제방이 터지고 자기 갈 길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지금은 아이와 놀아주고 책을 읽어주느라 정신이 없고 때로는 지치기도 하지만, 아이와 마음껏 놀 수 있는 지금의 시간이 머지않아 그리워질 것이다. 기형도 시인의 시처럼
내 유년시절 바람이 문풍지를
더듬던 동지 밤이면
어머니는 내 머리를 무릎 위에 뉘이고
무딘 칼끝으로 시퍼런 무를 깎아 주시곤 했다.
어머니 무서워요 저 울음소리,
어머니 조차 무서워요
애야 그것은 네속에서 울리는 소리란다
네가 크면 너는 이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소리로 울어야 한다
ㅡ 기형도 시 <바람의 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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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의 힘
선생님께 칭찬을 들으니 학창시절로 돌아간듯해요 뿌듯하고 기쁨니다.ㅎㅎ
- 메모리딩 참여부모
메모리딩 독서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부모님들이 가장 만족감을 표시한 부분은 바로 매 단계의 말미에 있는 ‘칭찬하기’ 란이다. 부모님들은 처음에는 어떤 칭찬을 해야 할지 몰라서 형식적인 칭찬을 했지만, 칭찬 거리가 없나 하고 아이들을 관찰하는 동안 칭찬력이 쑥쑥 자라났다.
부모님들이 제출한 활동지를 첨삭하면서 칭찬을 하고, 부모님의 칭찬에 대해서 또 칭찬한다. 칭찬을 들은 부모님들은 행복해하며 신나게 독서활동을 하고 아이에게 좋은 칭찬을 많이 해준다.
노원의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면서 참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두 딸의 어머니가 집에서 아이들과 방에 누워서 내가 마련해준 ‘칭찬놀이’ 종이를 앞에 놓고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초등학교 2학년인 큰 딸은 “엄마는 바느질 잘하고, 아빠는 가죽을 잘 만들고, 나는 오카리나를 잘 불고, 동생은 귀엽다.”고 썼다. 엄마는 큰 딸에 대해서 “우리 딸은 마음이 따뜻하다, 얼굴이 예쁘다, 오카리나를 좋아하고 잘 분다, 책을 즐겨 읽고 좋아 한다”고 칭찬했다. 칭찬을 많이 받은 큰 딸은 댓글란에 “많이 칭찬해줘서 고마워”라고 썼다.
감동적인 이야기는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다. 큰 딸은 “이제까지 많은 사람들이 예쁘다고 이야기했지만 아침에 거울을 볼 때마다 그렇게 못생겨 보일 수가 없었어. 그런데 오늘 아침에 거울을 봤더니 예쁜 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스쳐 지나가면서 참 예쁘다고 한 얘기는 가슴에 와 닿지 않았지만, ‘칭찬놀이’를 함께 하면서 정식으로 칭찬한 게 아이에게 강한 자신감을 심어 주었기 때문이다.
칭찬으로 효과를 본 사람과 효과를 보지 못한 사람의 차이점이 뭘까? 다르게 표현하면, 나는 항상 아이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데 아이들이 칭찬을 듣고도 별로 기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바로 칭찬의 성격에 달려 있다. 과장되지 않은 칭찬, 형식적이지 않은 칭찬, 관찰과 관심을 바탕으로 한 칭찬, 아이가 듣고 싶은 칭찬, 적절한 시점에 있는 칭찬, 부족한 것을 돌아보게 하는 칭찬은 효과 만점의 칭찬이다.
같은 교육을 받는 한 어머니는 “짧은 시간에 열심히 해줘서 고마워”라는 칭찬을 했지만 아이가 별로 반응이 없었다고 말했다. 칭찬을 잘못 쓰면 자녀 교육을 망칠 수도 있다. 미국의 맹목적인 낙관주의를 고발한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긍정의 배신>(부키)에는 칭찬 중독에 빠진 아이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부모에게 칭찬을 듣기 위해서 엉뚱한 짓을 하기도 하고 병적으로 매달리기도 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칭찬은 아이에게 동기를 유발하는 강력한 에너지로 작용하지만, 과장되거나 습관적으로 칭찬하면 오히려 심각한 부작용이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칭찬하기인지도 모른다.
공감 칭찬, 파스칼 칭찬
“아이의 언어로 정확하게 표현한 것 같아요. 이런 표현은 아이가 부모님의 메시지를 정확히 받아들이게 합니다.” (칭찬 사례)
누군가 열심히 노력해서 상을 받는다면 정말 보람되고 기쁠 것이다. 하지만 별로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큰 상을 받는다면 기분이 어떨까? 상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칭찬도 마찬가지다. 칭찬을 하기 위해서는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 있어야 한다. 잘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 칭찬을 하는 것은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내가 주로 사용하는 칭찬법은 일명 ‘발견의 칭찬’이다. 막연하게 했던 일에 대해서 콕 집어서 발견해주고, 이 점을 칭찬하면 아이들과 부모님은 그 점을 잘 기억해뒀다가 더 잘 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림1>은 <책 먹는 여우>라는 책을 부지런히 읽은 부모님이 책의 문체와 거의 비슷한 방식으로 표현한 글이다. 아이의 언어로 이야기하려는 노력이 무척 훌륭하게 보여서 그 점을 칭찬했더니, 아이의 언어로 이야기하려고 계속 노력했다.
▲ <그림1> “여우 아저씨는 책이 맛있어서 먹고 지식도 얻기 위해 먹는데, 책 중에는 좋은 책도 있고 읽어도 도움이 되지 않는 책도 있어. 좋은 책은 여우 아저씨처럼 작가가되게 하지만 도움이 안 되는 책은 여우아저씨처럼 털의 윤기도 빠지고 소화도 안 돼서 화장실을 가야 해.” (메모리딩 사례)
칭찬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 격려하고 채워나가도록 독려하는 부분이다. 남의 부족한 부분이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는 것은 몹시 조심스러운 일이다. 누구나 잘못을 하고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잘못을 지적하는 것 자체가 주제넘은 일이 될 수도 있고, 특히 자녀 교육에 있어서 이런 지적은 자칫 아이의 자존감을 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여기서 소개할 칭찬 방법은 일명 ‘파스칼 칭찬법’이라고 이름 지은 방식이다. 파스칼이 쓴 유고 <팡세> 일부분을 소개한다.
남을 효과적으로 훈계하고 그의 잘못을 지적해 주려 한다면, 그가 사물을 어떤 측면에서 보고 있는가를 관찰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사물은 보통 그 측면에서는 올바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올바른 점을 인정하면서 그의 잘못된 다른 측면을 지적해 주어야 한다. 인간은 이것으로 만족을 느낀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다만 모든 측면에서 보는 것을 게을리 했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 파스칼 <팡세> 일부
<그림2>의 독서활동을 보면서 아이다운 궁금증이 튀어나온 게 참 반가웠다. 아이 엄마도 이것저것 챙겨주면서 아이의 궁금증을 해결해주려고 노력한 모습이 맘에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책의 내용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이었다. 차분하게 칭찬을 하면서 하고 싶은 말을 뒷부분에 넣었다.
시은이를 위해서 이것저것 챙기는 모습에 감동 받았습니다. 질문도 하나하나 재미있구요. OOOO 님은 시은이의 생각을 열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데는 참으로 훌륭한 재능을 보여주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책의 내용에 대해서 시은이와 함께 탐구해 들어가는 부분을 조금 더 채워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메모리딩 첨삭 사례)
뭔가를 지적하는 칭찬은 항상 긴장된다. 다행히 첨삭을 받은 엄마는 “따뜻한 말씀 감사합니다. 짚어주신 부분은 잘 유념하고 평소에 책 읽기 할 때도 상기시켜 가며 활용할 수 있도록 할게요.”라고 댓글을 달아주었다.
부모님들은 무척 진지하게 참여하는데,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는다. 어떤 부모님은 따로 정리노트를 마련하고 어떤 부분에서 칭찬을 받았고, 지적을 받았는지를 정리하고 다음 회차에 이런 내용이 제대로 반영되었는지 점검을 한다. 그리고 다음 활동에서 반영하려고 노력한다. 아이도 부모님도 나도 뭔가 ‘굉장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메모리딩 프로그램은 한 가족에게 개입하는 일이고, 나의 한마디에 영향을 받는다. 이야기를 나누는 한순간 한순간이 긴장되지 않을 수 없다. 경청과 발견, 관심과 애정은 긴장과 오해를 녹여 준다. 아이와 부모가 쓴 독서활동지를 여러 번 반복해서 바라보면서 특징들을 살펴보고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할 지 오래 고민하는 편이다.
이런 정성은 대개 부모에게 옮겨지고, 자연스레 아이에게 이어진다. 고래를 춤추게 하는 칭찬을 퍼뜨리는 것이 바로 자녀 독서 교육 활동의 비밀 미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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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왕자님, 공주님으로 만드는 방법
“처음 범이 글을 읽었을 때는 엄마, 아빠의 생각에 대한 기범이 덧글이 이해가 안 되었어. 그런데 계속 읽으면 읽을수록 범이의 생각이 마음에 확! 와 닿는구나!”
- 메모리딩 참여 부모님
우리 아이는 말 잘 듣고 착하고 얌전한가? 아니면 말썽부리는 장난꾸러기에 고집쟁이인가? 아이들을 왕자님, 공주님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크게 존중한다는 의미로 보인다. 아이들의 자존감이 커지고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이야기하고 의사를 명확히 전달하는 아이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어디서 이런 자신감이 생기는 걸까? 바로 부모다.
부부에 관한 농담 중에서 “아내를 여왕으로 만들어주면, 남편은 왕 대접을 받는다”는 말이 있다. 순서가 거꾸로 되면 안 된다. 아이들을 왕자님, 공주님으로 만들고 싶다면 부모님은 기꺼이 하인, 신하 노릇을 해야 한다.
하인은 왕자의 말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귀를 쫑긋 새우고 경청한다. 왕자가 쓴 글을 몇 번이고 반복하면서 그 뜻을 파악하고, 정확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왕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신하라면 왕자보다 몇 배에서 몇십 배 더 많이 책을 살펴보아야 한다.
메모리딩에 참여하는 가족의 아이들은 만5세~7세, 그러니까 유치원 막바지에서 초등학교 2학년 정도다. 이때는 독서력과 사고력의 기본 틀이 만들어지는 나이이기 때문에 무척 중요하다. 아이들이 사교육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학창 시절이기도 하다. 이 짧은 시간 동안 부모가 충분히 사랑하고 관심을 가져준다면 앞으로 펼쳐질 아이의 인생이 달라진다.
사교육과 공교육, 그리고 가정교육
한국교육개발원이 2008년 보고한 논문(“학습부진 아이들의 학업태도 및 학습부진 지도수업의 조절효과 검증”)을 보면 학습부진 학생일지라도 부모의 적극적인 학습지원활동이 있다면, 성적에 관계없이 긍정적인 학업태도를 형성할 수 있다고 한다.
필자는 3년간 사교육계에 있으면서 초등, 중등, 고등학생들을 다 접해 보았다. 우리들의 아이들은 길게는 초등6년, 중고등학교 6년 총 12년 동안 사교육을 받는다. 참으로 충격적인 사실은 초등학생의 논술과 중학생, 고등학생의 논술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었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사용하는 단어의 종류만 달라졌을 뿐 글 자체는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마치 12년 동안 아이의 뇌가 정지한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아이들의 쓴 논술문이 거의 비슷했다. 글자의 위치만 다를 뿐 기본적인 요약의 내용과 자신의 생각 표현이 같았다. 이는 자신의 생각이 나타나지 않고, 의존적인 학습 태도가 몸에 배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앞에서 말한 왕자님, 공주님, 즉 활달하고 리더십이 뛰어나고 자신의 생각이 분명한 아이는 사교육을 받더라도 이를 잘 활용할 줄 안다. 자존감이 있는 아이는 자신의 생각으로 문제를 해결하다가 모르는 것은 물어본다. 하지만 자존감 없는 아이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조차도 확인을 하려고 한다. 이 두 사고방식의 차이는 나중에 엄청나게 커진다.
사람으로 따지면 가장 소중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그리고 가족이 그 다음으로 중요하다. 성장의 필요조건이 여기 다 갖춰져 있다. 학교나 학원은 앞의 것에 비하면 사소하다.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아이의 학습능력과 사고력의 성장을 거들 뿐이지 기본 골격을 만들어줄 수 없다. 기본 골격이 없는 채로 집을 나서면 철근 없는 콘크리트처럼 굳건한 집을 세울 수 없게 된다. 이 문제의 심각성을 부모들이 알아야 한다. 이 세상에서 부모밖에 해줄 수 없는 것은 부모가 채워줘야 한다.
왕자님 만들기 프로젝트
만5세의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고 많은 말을 하지만 자신의 감정과 이야기의 내용에 대해서 파악이 잘 안 된다. 부모는 아이와 함께 한 권의 책을 정해서 깊이 있게 읽되, 아이와의 대화를 통해 아이의 생각과 감정의 상태 등을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아이들이 자신의 속 깊은 생각을 전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앞서 소개한 기범이의 사례처럼 엄마와 도서관에 다니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살펴보고 기범이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은 아이의 자존감을 한껏 높여줄 수 있다. 부모님이 자신의 깊은 마음을 이해하고 건드려주기 때문이다. 표현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감정과 생각은 어떤 계기를 통해서 나오는데, 아이가 평소에 생각하던 것일 수도 있고 무의식적으로 느낀 것일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을 잘 찾아내면 아이는 자신의 감정에 대한 이해가 풍부해지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책에서 구수한 냄새가 나는 줄 몰랐는데, 이 부분에 나와서 좋았어요. (아이)
엄마랑 직접 이 책 냄새를 맡아 보니 정말 구수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지? 아마 여우 아저씨도 이 냄새를 좋아하나보다. (엄마)
아이는 마치 시인과 같아서 생각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거나 거두절미해서 좀처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 부모님이 아이의 생각을 다른 언어로 표현하거나, 풍부한 언어를 넣고 자세한 상황을 넣어서 그려 보여주면 아이의 언어력과 사고력이 확장된다. 특히 부모가 아이의 생각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서로 공감을 하게 되므로 자존감 또한 높아진다.
몇일 전 수학문제를 풀며 하정이가 했던 말이구나. “연필에서 생각이 줄줄 흘러나오네.” 너무 쉬워하며 했던 표현인줄 알았는데 책에서 나온 구절을 인용하다니… 정말 놀랍다.
- 메모리디 참여 부모
아이가 했던 말을 기억해내 이를 칭찬의 소재로 삼으면 아이는 뿌듯함을 느끼며 자기가 하는 말에 대해서 들여다보게 된다. 특히 위의 사례는 아이가 책에서 읽었던 내용 중 마음에 드는 구절을 일상생활 속에서 활용한 것이다. 아이가 책에서 읽었던 내용과 일상에서 사용한 사실을 알아낼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명밖에 없다. 아이와 오랜 시간 동안 생활하는 엄마이다. 엄마의 관찰과 발견을 통해 아이는 책에서 읽었던 내용을 자꾸 반복해서 생각하면서 일상생활 속에서 써먹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이 과정은 모두 전두엽이 활성화되는 효과를 준다. 전두엽은 학습능력, 판단력, 기획력 등 종합적인 사고를 담당하는데, 이 부분이 자극되면 학습능력이 길러진다.
보보는 관장님에게 “저는 왜 슬픔을 느끼지 못하죠?”라고 했나요? (아이)
책에서 살펴본 것처럼 보보가 <인어공주>라는 책을 읽어주었을 때 링링과 친구들은 눈물을 글썽였지만, 보보는 슬프지 않아서 하윤이처럼 궁금해서 물어 본 것이지요 (엄마)
아이와 대화를 하다 보면 함께 읽던 책의 내용을 잊을 때가 있다. 아이들은 책에서 읽은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궁금하면 무조건 질문하는 습관이 있는데, 책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주면 다음부터는 책을 꼼꼼히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 불필요한 질문은 하지 않고, 꼭 필요한 질문만 하게 되므로 학습의 효율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부모와의 독서활동은 아이에게는 일종의 놀이인 셈인데, 이 과정을 통해서 아이는 학교나 학원에서 배운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기능의 대부분을 익히게 된다. 앞의 과정이 그릇이라면, 뒤의 과정은 열매가 되는 셈이다. 내 아이가 집을 나설 때 공주님 왕자님의 모습일지, 하인이나 하녀의 모습일지 선택하는 것은 부모의 온전한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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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다섯 살 메모리딩
메모리딩은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인 1998년부터 제가 개인적으로 하던 독서 방법입니다. 가장 나은 독서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해가면서 다듬었고, 별다른 이름도 없었죠. 전공이 국문학과 철학이다 보니 한국문학, 동서양 고전문학, 서양철학, 동양철학 등을 이 방법으로 읽었습니다. 2011년 우연찮게 인천 서구도서관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독서 강좌인 “행복한 독서클럽”을 맡으면서 ‘메모리딩’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메모리딩은 책과 나의 마음이 강력하게 섞이는 인터랙티브한 독서 방법입니다. 두뇌발달에 무척 도움이 되기 때문에 독서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습니다. 행복한 독서클럽 강의의 수강생들은 대개 초중등학교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었습니다. 엄마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의 독서교육에 대한 생각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2003년부터 4년 동안 대치동과 반포동 일대에서 논술강사를 하면서 초등, 중등, 고등학생 친구들을 많이 만나 강의와 첨삭, 프로그램 개발을 했습니다. 이 때 받은 충격이 아직도 기억에 납니다. 고등학생들의 논술지를 첨삭하면서 90% 이상이 글자 순서만 바뀌었을 뿐 같은 내용의 답안지를 냈다는 것이 충격이었고, 고등학생과 중학생, 초등학생의 글쓰기 수준이 거의 다르지 않다는 점입니다. 다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쓰는 단어의 수가 많아졌을 뿐입니다. 이것은 아이들이 독서하는 방법은 물론, 성찰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책을 읽고 성찰을 하면 어떤 사람이든 다른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거의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큰 문제가 있습니다. 이 아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부모님입니다. 아이들이 성찰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은 부모들도 역시 성찰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 후로 6년 동안 언론시민운동을 하면서 사회의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보았습니다. 정치인, 언론인, 교수, 기업인, 직장인, 주부 등등. 우리가 언론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사회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분들이나 시민들은 경직된 사고를 가지고 있어서 토론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생각이 다른 사람을 적대적으로 바라보는 문화가 팽배합니다.
30여년 동안 살아온 시간과 만난 아이들, 그리고 시민운동 활동을 종합하자 무엇이 문제였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어릴 적 잘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은 유년 시절에 사고의 거의 모든 것이 결정되기 때문에 그 시간을 잃어버리면 되돌리기가 참으로 어렵다고 합니다.
스티브 잡스 뺨치는 아이로 키우는 방법
스티브 잡스는 입양아 출신의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냈지만 입양 부모의 사랑과 헌신으로 인류에 도움이 되는 물건을 만들었고 성공적인 삶을 살다 갔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왜 스티브 잡스나 마크 주커버그 같은 사람들이 태어나지 않을까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은데 우리나라에도 얼마든지 그런 사람들이 태어날 수 있고, 이미 태어났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개인의 삶이나 사회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학습과 경험입니다. 우리의 사회구조가 우리나라의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의 창의력과 잠재력을 말살하는 방식으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메모리딩은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메모리딩 프로그램은 아이가 학교 생활을 하고 대학에 갈 때까지 필요한 기본적인 학습능력을 독서라는 방식 안에 반영했습니다. 물론 대학 입학 이후에도 사회생활을 하는 데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능력들입니다.
가장 근간이 되는 것은 ‘주관’입니다. 자기에서부터 출발하고 자신의 생각이 무엇인지 표현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지금도 대다수의 아이들은 주입식 교육에 끌려가고 있습니다.
초딩들 학원 뺑뺑이 돌리지 마세요. 아이 망치는, 인성 적성 이런 거 다 집어지우고 성적 망하게 하는 주범입니다. 초딩 때부터 기초를 잡아야 한다구요? 공부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구요? 학원 뺑뺑이 돌려봐야 기초도 안 잡히고, 공부하는 습관도 안 듭니다. 그저 시험 문제 푸는 요령, 답 외우기만 배워올 뿐입니다.
어느 고교 논술강사의 글
메모리딩은 ‘나’에서 시작하고 여기에 충실합니다. 아이들은 “엄마(또는 선생님), 이제 뭐하면 돼요?”라고 반응하기 쉬운데, 아동심리학자들과 유아교육전문가들은 이 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넌 뭘하고 싶은데?”라고 묻는 것이라고 합니다. 1단계 메모노트에 이런 취지를 담았습니다.
아이의 학습 중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은 바로 요약능력입니다. 요약은 듣기, 경청하기, 정리하기가 담겨 있습니다. 실제로 아이들이 가장 취약한 부분이 바로 요약하기입니다. 요약은 단지 분량을 줄이는 것만이 아니라 텍스트의 내용을 자신이 이해하기 쉽게 재구성하는 기술입니다. 글의 전체 내용을 파악하고 있어야 효과적인 요약이 가능합니다. 내신이나 수능, 논술은 모두 요약능력을 기초로 합니다.
3단계와 4단계는 사회성과 토론능력, 협상 능력을 기르는 방식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구절에 대해서 설명하고, 가족이 좋아하는 구절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남기는 ‘다르게 메모’와 가족이 대표적으로 선택한 구절을 고르는 과정에서 토론화 설득, 협의하는 능력을 키웁니다. 전체 단계에 걸쳐 사회성을 훈련할 수 있도록 안배해 놓았는데, 전문가들에 따르면 사회적인 상호작용을 하면, 인간의 뇌 속에 혼자 있을 때는 발견할 수 없는 특정할 활동 패턴이 생겨난다고 합니다. 가족은 가장 기본적인 사회니까요.
나머지 단계는 질문과 토론입니다. 요약능력과 사회성 등 기본적인 훈련이 되어야 제대로 된 질문과 토론을 할 수 있습니다. 1단계만 빼고 나머지 단계에서는 가족이 힘을 모아야 해결할 수 있을 만큼 메모리딩은 “온 가족이 함께 하는 독서프로그램”입니다.
내 아이를 스티브 뺨치는 창의력 어린이로 키우는 방법은? 심리학과 경제학을 결합한 행동경제학이라는 학문을 창시한 대니얼 카너먼과 인본주의 심리학을 창시해 21세기 심리학자로 불리는 A.매슬로는 창의력은 혈액처럼 온몸을 흐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있다는 주장을 펼치며 ‘창의력을 말살하는 요소’를 찾아내 제거하고, 아이의 마음을 최대한 편안하게 해주는 게 지름길이라고 했습니다. 이 일은 매우 힘들고 위대한 일로, 아이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 부모님만 할 수 있습니다. 가족의 사랑과 관찰, 배려, 발견 속에서 스티브 잡스와 마크 주커버그가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엔 당신의 아이 차례입니다.
아기의 아이는 부모가 늘 가까이 머물러주기를 간절히 바라는데, 부모는 아이가 무엇을 하는지 관찰하고 그들의 세상에 합류하려고 노력해야만 아이가 일상생활에서 안전함을 느끼고 누군가가 자신을 돌봐주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새로운 도전에 훨씬 편안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만 5세(7세)~만 7세(9세)에 맞춰졌는데, 아이가 부모 대신 또래 친구와 어울리게 되면 더 이상 아이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 힘들어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이야기에서는 프로그램 곳곳에 숨어 있는 장치들과 그 효과들을 사례를 통해서 살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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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도서관장이 꿈인 필자는 고루 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진보의 저변을 넓히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아이들’과 ‘유아교육’이라는 키워드로 그 가능성을 모색한다. 필자는 이번 ‘메모 리딩의 힘’ 시리즈에서 “독서를 통한 자녀의 지도”를 통해 창의력 있는 아이, 미래의 시민이 될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하나의 대안을 제시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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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동안 본 엄마, 처음 본 엄마
전엔 몰랐는데 아이가 말할 때 그냥 듣기만 했거든요. 메모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고 아이와 대화할 때 종이에 아이와의 대화 내용을 적어 내려가는 모습을 큰 아이가 보더니 갑자기 급 진지해지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자신의 생각을 엄마가 적는 모습에 적잖이 놀란 듯. 태어나서 처음이니까요. 아이 이야기를 메모하며 듣는 건^^ - 메모 리딩 참여 부모
난생 처음 하는 일은 환희와 놀라움이 있습니다. 아이와 처음으로 만나는 순간의 감정을 떠올려보세요. 아이가 걸음마를 떼고 엄마, 아빠를 똑바로 부르던 때의 순간들. 지금은 어떤가요? 아이의 새로움이 느껴지나요? 아이는 엄마 아빠의 새로운 모습을 보고 있나요? 아주 익숙한 시간들이 겹겹이 쌓이고, 익숙한 선택을 편안하게 느끼면서 서로 무감각해지지는 않았나요? 사랑도 교육도 일도 정치도.
한 4년 전에 아기를 갓 낳은 다음에 난생 처음 엄마를 인터뷰한 적이 있었습니다. 인터뷰어로서 엄마를 인터뷰이로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고, 엄마도 언론에 인터뷰한 것은 아들이 처음이었습니다. 인터뷰 기사는 모 인터넷매체에 게재되었는데 많은 분들이 읽고 감동했고 눈물을 흘렸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인터뷰의 내용은 나 자신이었습니다. 엄마의 입을 통해서 내 이야기를 한 것이지요. 인터뷰한 글도 글이지만, 인터뷰 과정도 놀라웠습니다. 뭔가 기록을 해야겠다고 수첩과 볼펜을 들었을 때 제 자세가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하는 엄마의 자세와 눈빛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1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이지만, 나는 이 느낌을 재현하고 널리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를 인터뷰하는 엄마들
일은 아주 우연한 기회에 시작되었습니다. 독서와 관련된 일을 해서 동양고전과 인문고전, 심리학 쪽을 오래 읽은 나에게 한 유아 교육업체 대표님이 저의 아이디어를 유아 교육 쪽으로 옮겨보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엄마들의 육아 커뮤니티인 네이버 도치맘 카페의 운영자와 출판사인 <김영사> 부모2.0의 담당자를 연결해 주셨습니다. “온가족이 함께 하는 강력한 독서 프로그램 메모 리딩”은 이렇게 태어났습니다.
30명의 엄마들이 참여를 해주셨고, 3개월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12년 1월부터 3월까지 3개월 동안 매주 한 단계씩 6단계의 프로그램과 1:1 첨삭을 소화하느라 모두 정신이 없었습니다. 『책 먹는 여우』, 『책 읽어주는 로봇』, 『책으로 집을 지은 악어』가 기본 교재였는데, 선택한 책을 6단계 동안 반복해서 봐야 하는 무척 특이한 방식이었습니다.
프로그램의 의무사항이라는 명분으로 엄마들에게 무척 무리한 요구를 하였습니다. 첫째, 사골을 우려내듯 한 권을 가지고 프로그램 끝날 때까지 반복해서 읽고 이야기 나눌 것. 둘째, 철저히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대화할 것. 한마디로 아이를 상전처럼 모시라고 요구했습니다.
셋째, 조금이라도 아이를 가르치려고 들지 말고 무슨 말을 하는지 경청하고 아이가 쓴 글을 반복해서 읽고, 아이보다 책을 더 여러 번 읽을 것을 요구했습니다. 넷째,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칭찬거리를 찾아서 칭찬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처음에는 민원이 말도 못하게 많았습니다. 위 요구사항이 반영되지 못하면 1:1 첨삭에서 환기를 시키기도 하고, 따끔하게 싫은 소리도 했습니다.
결과가 어땠을까요? 엄마들은 요구사항의 취지를 완전히 이해했습니다. 누구보다 열렬히 아이의 인터뷰어가 되었고, 아이보다 더 열심히 책을 읽으면서 이야깃거리를 찾아냈고, 단계가 어렵거나 흥미가 부족하면 보완할 수 있는 놀이나 맛보기 프로그램을 가미해 더욱 빛을 내주었습니다. 한 참여 엄마는 “이렇게 글을 옮겨 적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평소에는 지나쳤을 아이의 말을 하나하나 귀담아 듣게 되는 것 같아요.”라며 만족감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엄마도 아이도 답을 알고 있어요
처음엔 상당히 비협조적이었어요^^ 이럴 수밖에 없는 게 동생들이 생기면서 오직 큰 아들만을 위해 엄마가 책을 읽어주며 대화한 적이 거의 없고 자기 혼자 책을 읽고 독후록 작성하고 마무리해 왔기 때문에 같이 하니까 조금 귀찮아 하더라구요. - 메모 리딩 체험 부모
‘엄마와 아이는 좋은 방법을 알고 있다’는 생각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자기가 아는 방법에 대해서 확신이 없었을 뿐 환기를 시켜주자 프로그램 매니저보다 더 놀라운 발견을 보여줘서 저는 배우는 자세로 따라가기만 했습니다.
책을 좋아해서 하루에도 여러 권 읽는데 독서력과 사고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는 의심도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엄마들이 가장 행복해한 것은 바로 ‘가족’을 재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혼자 책 읽고 문제지 풀고, 엄마는 집안일을 하거나 맞벌이를 하고, 아버지는 야근, 외근, 출장에 지쳐 누워 있거나 TV를 보고 있는 가운데 ‘메모 리딩’이라는 미션이 온가족에게 모일 것을 명령한 것입니다. 생활이 바뀌니까 처음에는 불평과 투정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부모의 관심과 사랑, 그리고 존중을 받으면서 점점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아버지는 자신의 논리력과 사고력, 비판 능력을 아이의 육아에 쓸 수 있어서 존재감과 자존감을 얻을 수 있었고, 아빠와 아이가 ‘장난질’하고 티격태격 말다툼하는 모습을 보는 엄마의 눈에 행복이 내려앉았습니다. 바로 메모 리딩이 원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메모 리딩 독서 프로그램은 답을 찾아주는 방법이 아닙니다.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가족이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도록 자극하고 환기를 할 뿐입니다. 아이는 독서의 내용을 다듬어가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을 익히고, 부모님과의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생각의 지평을 넓혀갑니다.
부모님은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평소에 궁금했던 내용을 묻기도 하고 아이의 생각이 얼마나 넓어졌는지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아이가 어떤 점에 특기가 있고, 어떤 점은 부족한지에 대해서도 스스로 느낄 수 있습니다. 원래 자리에 있어야 할 것들이 돌아온 셈입니다.
스스로의 힘을 믿고, 칭찬을 해주세요
메모리딩 프로그램을 글로 연재해서 알리고 싶은 이유는 엄마와 아빠, 아이가 ‘스스로의 힘을 믿고, 서로의 힘을 의지하며’ 직접 헤쳐 나갔으면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모든 문제는 ‘자신감 부족’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부모님은 아이에게 많은 시간을 들여서 함께 해줄 수 없으니까 미안해서 책을 사주고 학원에 보내고, 아이는 이게 맞는지 틀린지 확인할 길도 없고 자신의 생각을 터놓고 이야기할 곳이 없어서 주눅이 든 상황입니다.
그리고 할 일이 쌓여갑니다. 집안일은 엄마를, 회사 일은 아빠를, 학교 일과 학원 일은 아이를 가만 놔두지 않습니다. 사회 전체가 가족을 이산가족처럼 만드는 것도 아닌데, 어쩜 이렇게 얼굴 맞대면서 이야기 나눌 기회가 부족한 것인지.
칭찬이 열쇠였습니다. 칭찬 위주로 첨삭을 하고 칭찬으로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자 부모님들은 점쟁이보듯 신기해하며 지적받은 부분을 반영하며 프로그램의 취지를 따라가려고 애를 썼습니다. 반영이 잘 된 점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반영은 잘 안 되었지만 시도가 좋았던 점도 크게 칭찬했고, 잘하는 엄마보다 부족한 엄마가 나아졌을 때 크게 칭찬을 해줬습니다. 칭찬은 엄마도 무척 오랜만에 들어보는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무척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에게 칭찬 바이러스를 옮겼습니다. 노트 전체가 칭찬으로 가득 찼고, 그것은 실제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행복한 기록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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