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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교재 300권 집필 1000만권 판매 이만하면 기네스 기록감이죠?

국내 최다 피아노교재 저자 남주희

▲ photo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어린이 바이엘’ ‘어린이 피아노 반주완성’ ‘달콤한 재즈 소곡집’ 등 직접 쓰거나 편곡한 피아노 교재가 300권이다. 팔린 책 은 무려 1000만여권. 피아노교재 베스트셀러 저자 남주희 원장(44·남주희실용음악학원)이 써가고 있는 대기록이다. 우리나라 총 가구수가 1700만이니 남 원장의 교재가 한 집 걸러 한 권씩은 있는 셈이다. 
   
   남 원장의 이야기를 들은 것은 대중음악 쪽에서 활동하고 있는 후배를 통해서였다. ‘300권’이라는 숫자에 귀가 솔깃해졌다. 인터넷 검색창에 ‘남주희’라는 이름을 치고 기사 검색을 해봤다. 기사는 한 건도 찾을 수 없었다. 대신 “피아노 교재 쓴 남주희가 누구예요?” “남주희의 피아노 교재는 뭐가 다른가요?” 같은 질문이 줄줄이 올라왔다. 이 정도 교재를 냈으면 독보적 존재인데 한번도 언론에 노출되지 않았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인터뷰 요청을 하자 남 원장은 “저녁엔 바빠서 안되고 낮에만 시간을 낼 수 있다”면서 선선히 시간약속을 했다. 만나자마자 “왜 언론에 한번도 안 나왔느냐”고 물었다. 남 원장은 “이쪽에선 ‘남주희’하면 다 알아주는데 그동안 한번도 인터뷰하자는 요청이 없더라”면서 웃었다. 
   
   책을 그렇게 많이 냈으니 나이도 꽤 들었겠거니 했는데 의외로 젊었다. 남 원장이 처음 피아노책을 낸 것은 대학교 1학년 때로 열아홉 살이었다고 한다. 그후 25년이니 평균 매달 한 권씩의 피아노 교재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남 원장은 어떻게 피아노 교재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그의 책에는 어떤 특별한 것이 들어있을까? 
   
   
   대학 1학년 때 첫 피아노책 펴내
   
   남 원장은 이화여대 작곡과 출신이다. 어릴 때부터 가요·팝송 등 대중음악을 좋아했다. 피아노를 계속 쳤지만 전공으로 하기는 싫었다. 당시엔 실용음악과가 없었던 탓에 작곡과를 들어갔다. 그런데 클래식 위주의 강의가 너무 재미없었다. 적성에 안 맞았다. 수업 시간에 강의는 안 듣고 가요나 팝송책만 들여다봤다. 
   
   틈만 나면 피아노에 앉아 모차르트 대신 그룹 ‘들국화’ 노래나 엘튼 존 노래를 연주했다. 그러다 사람들이 쉽게 피아노로 연주할 수 있는 대중음악 교본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유행하던 가요·팝송들을 가지고 피아노 연주용 악보를 만들었다. 책 한 권 분량의 악보를 들고 무작정 세광음악출판사를 찾아갔다. 내 성격이 원래 좀 도전적이다.” 그때가 1985년, 남 원장이 열아홉 살이었다. 남 원장은 “출판사에서 처음엔 어이없이 나를 쳐다보다 악보를 보고 놀라더라. 대중음악용 피아노 연주책이 없던 시절이었다. ‘남지하’라는 가명으로 책이 나왔다. 출판사 측에서 나이가 너무 어리니까 이름이라도 어른스럽게 바꿔보자고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파퓰러 피아노 반주법’이 남 원장의 첫 번째 책이다. 그때부터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남지하’라는 이름으로 10권의 피아노 교재가 나왔다. 그때 펴낸 책은 히트를 치지는 못했다.
   
   1990년에 결혼을 했다. 군의관이던 남편을 따라 진해로 내려갔다. 가만 앉아있지 못하는 성격 탓에 개인 레슨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곧잘 따라하던 아이들이 금방 싫증을 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재미있게 배울 수 있을까’, 1년여의 고민 끝에 ‘동화 바이엘’이란 책을 만들었다. ‘바이엘’의 멜로디에 ‘아기돼지 삼형제’ ‘헨젤과 그레텔’ 같은 동화를 접목한 것이다. ‘헨젤과 그레텔 울고 있네, 숲 속을 헤매며 울고 있네, 통통하게 살찌워서 잡아먹어야지, 겁에 질려 벌벌 떠는 그레텔, 마녀는 불속에 빠~져 죽었네.’ 단순한 멜로디에 동화 가사를 붙이고 삽화도 그려 넣었다. 아이들이 훨씬 흥미있어했다. 남 원장은 “동화 바이엘이 제대로 된 피아노 교재의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어린이 피아노 반주완성’ 100만권 팔려 
   
   서울로 올라온 후 1995년에 도봉구 창동에서 피아노 음악학원을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면서 기초 교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느꼈다. 수십 년 이어온 똑같은 교재, 낡고 기계적인 교습법이 오히려 아이들을 피아노로부터, 음악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는 생각을 했다.” 남 원장은 그때부터 피아노 학원용 교재와 학원 운영법에 본격적으로 매달렸다. 
   
“피아노를 3~4년 배우고도 테크닉 중심으로 손가락 연습만 하는 탓에 노래 한 곡 제대로 연주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테크닉보다 재미있게 반주를 가르치는 것이 훨씬 실용적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으로 남 원장은 반주법을 기초부터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을 만들었다. 세광음악출판사로 들고 갔지만 반응은 시큰둥했다. 남 원장은 “세광출판사에서는 대학 1학년 때부터 봐오던 터라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몰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악보를 들고 다른 음악전문 출판사인 ‘삼호뮤직’을 찾아갔다. 바이엘 중반 수준이면 따라할 수 있는 5권짜리 ‘어린이 피아노 반주완성’은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4년 동안 100만부가 넘게 팔렸다. 전국에 있는 피아노 학원은 6만여곳이다. 학원들이 앞다퉈 남 원장의 교재를 사용했다. 당시 10여개의 음악전문출판사 중 6~7위권이던 ‘삼호뮤직’은 남 원장의 책 덕분에 단숨에 2위로 치고올라갔다. 남 원장은 “그 책 덕분에 피아노 학원들도 호황을 누렸다. 피아노 배우는 것이 재미있으니 당연히 학생들도 늘었다. 다른 출판사에서 ‘짝퉁 남주희 책’이 나오기도 했다. 책이 한창 팔릴 때는 인세로 한 달에 2000만~3000만원이 통장에 꽂혔다”고 말했다. 
   
   
   “쉽게, 재미있게, 빨리 배울 수 있는 교재를”
   
   피아노 교재 시장에서 ‘남주희’라는 이름 석자는 보증수표가 됐다. 주변에서 “아예 출판사를 하나 차리지 그러느냐”는 이야기를 했다. 2002년 ‘건반세상’이라는 출판사를 만들고 사장이 됐다. “1년여 동안 쉴 새 없이 피아노 교재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책을 만드는 것과 경영은 전혀 달랐다. 출판사와 피아노학원 사이에 지사가 있어서 유통을 담당하는데 후발 주자로 그 틈을 뚫기가 쉽지 않았다. 다른 출판사의 견제도 심했다.” 1년 만에 두 손을 들었다. 세광음악출판사 측에서 부채와 그 동안 만든 교재 등 모든 것을 떠안는 조건으로 인수했다. 남 원장은 그때 ‘세광’ 측에 받은 도움을 잊지 않고 있다고 했다. “다른 출판사에서 책을 내자고 찾아오기도 하지만 세광 측과의 의리를 지키고 싶다. 그때 이후로 계속해서 세광에서 책을 내고 있다.” 
   
   피아노 학원은 계속했다. 아이들과 부딪쳐봐야 어떤 교재가 필요하고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해외 여행을 가거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외국 피아노 교재도 사서 모았다. 지금까지 모은 피아노 관련 책이 4000권을 넘는다. 
   
   남 원장은 자신이 모은 자료와 학원 운영을 통해 얻은 노하우를 기꺼이 공개했다. ‘바이엘-하농-체르니’로 이어지는 지루한 과정만 반복하고 있는 동네 피아노 학원들이 안타깝기도 했다. 남 원장은 인터넷에 ‘Namtok’이란 사이트를 만들고 전국의 피아노 학원장들이 자료를 다운받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했다. 지금은 남 원장이 관리를 안 하고 있지만 이 홈페이지는 한때 사이트 인기순위 2위에 오르기도 했다. 인터넷을 통해서뿐 아니라 피아노 교육 노하우를 전파하기 위해 강의도 다녔다. 남 원장은 전국 피아노 학원장들에게 인기 강사다. 매주 토요일마다 강의를 다닌 것이 20년이 넘었다. 
   
   남 원장이 생각하는 피아노 교육은 어떤 것일까? “동네 피아노 학원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시대에 맞게 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는 배울 것이 많지 않았다. 피아노가 전부였다. 지금은 유혹이 너무 많다. 아이돌 그룹, 댄스 등 자극적인 음악들이 넘치는 세상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클래식은 지루한 음악이 돼버렸다. 대부분 학원 오는 아이들이 엄마 손에 끌려 마지못해 다닌다. 1~2년 다니다 그만둔다. 이유는 간단하다. 재미없으니까.”
   
   
   “학생만 바라보는 피아노 학원 시대는 갔다” 
   
   남 원장은 “음악은 쉽게, 빠르게, 재미있게 배워야 한다”면서 “이젠 어린이 중심의 피아노 학원 문화를 아저씨도 할머니도 쉽고 빠르게 배울 수 있는 실용음악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2006년 목동에서 실용음악학원을 열었다. ‘남녀노소 환영!’을 내걸고 기러기 아빠들을 위한 밴드교실, 치매 예방을 위한 실버클래스를 만들었다. 거리에서 헤매는 아이들을 음악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힙합교실, 청소년 밴드교실도 만들었다. 공부에 지친 아이들을 위해 스트레스 해소 주말 드럼반을 만들었다. 2년 만에 수강생 수가 1000명이 됐다. 피아노·드럼·색소폰·보컬·오카리나 등 강사진도 100명에 이른다. 웬만한 음악대학을 뛰어넘는 규모다. 지난해부터는 학원 프랜차이즈 사업도 시작했다. 1년 사이에 분점이 8곳으로 늘었다. 학원의 커리큘럼은 최단시간 내에 원하는 연주를 하게 만드는 것에 맞춰져 있다. 남 원장은 “피아노를 한 번도 안 쳐본 성인이 곡을 연주하려면 1년 정도, 어렸을 때 바이엘 정도는 뗐다면 3개월이면 웬만한 곡은 연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남 원장은 “모든 사람들이 음악을 즐기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남 원장의 꿈은 ‘남주희 음악연구소’에서 구체화되고 있다. 지난해에 연구소를 만들고 뜻을 같이하는 전문가들을 영입했다. 피아노뿐만 아니라 다양한 악기를 위한 ‘쉽고 재미있는’ 실용음악 교재를 펴낼 계획이다. 남 원장은 “지금까지 내가 만들어낸 책보다 훨씬 많은 책이 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돈도 많이 벌었겠다”고 묻자 남 원장은 “그렇지도 않다. 광고하고 시설투자하고 돈 들어갈 곳이 의외로 많다”면서 엄살이다. 
   
   인터뷰 중에도 남 원장의 전화는 계속 울려댔다. 목동 본점과 3개 직영점에다 계속 늘어나는 분점 관리, 입시상담, 강의, 교재 연구까지 남 원장의 하루는 ‘Vivace(아주 빠르게)’에 맞춰져 있다.


Posted by 돈오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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